"차 끌고 나가기 겁 나요"…기름값 급등의 숨겨진 이유 [한경우의 케이스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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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기대감에 수요 늘었지만, 석유 공급 회복 더뎌
유럽, 신재생에너지 의존 높였다가 에너지난 위기
과거 새로운 공급 주체 등장 때마다 석유시장 요동
유럽, 신재생에너지 의존 높였다가 에너지난 위기
과거 새로운 공급 주체 등장 때마다 석유시장 요동
기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요즘에는 차 끌고 나가기 겁이 납니다. 기름값이 너무 올라서죠. 지난 12일부터 유류세가 20% 인하된다고 해서 주유를 미뤘던 분들도 많았을 겁니다.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집계된 지난 11일 전국 주유소의 보통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1810.16원으로 작년 5월15일의 1247.58원과 비교하면 45% 넘게 비싸졌습니다. 그만큼 부담이 늘었으니 한시적이라도 기름값 인하는 반갑습니다. 유류세 20% 인하가 적용된 주유소에서는 지난 12일 보통휘발유가 1600원대에 팔렸다고 합니다.
기름값이 너무 올랐다지만, 휘발유를 만드는 원료인 원유 가격의 상승폭에 비하면 작은 편입니다. 1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0.79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작년 5월15일의 가격이 배럴달 29.43달러였으니 상승률로 치면 174.52%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지금의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 가격 강세는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드라이브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 정부는 지구 온난화를 막지 못하면 인류의 생존조차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화석연료에 대해 강한 규제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이로 인해 감염병 확산 사태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송유관 건설 사업인 ‘키스톤 XL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취소했습니다. 이어 자국 내 석유 시추 제한,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등 화석연료 산업을 강하게 규제했습니다. 최근에는 유가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부담스러워지자 셰일오일업계에 증산을 요청하고 있지만, 업계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한 셰일오일업체 대표는 “바이든 정부가 임기 초부터 급진적으로 환경 규제를 도입해 화석 에너지 업계를 초토화시켜 놓고 이제 와서 증산을 요구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군요.
유럽에서는 화석연료를 대신할 것으로 기대됐던 에너지 공급원인 신재생에너지로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올해 북해 지역에 바람이 불지 않으면서 풍력발전 효율이 뚝 떨어졌고, 하필 겨울을 앞둔 시기라 에너지난에 대한 공포가 심화돼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유럽의 천연가스 수요 중 상당 부분을 공급하고 있는 러시아와 관계가 삐걱거린 점도 천연가스 가격의 변동성을 키웠죠.
앞으로의 에너지 가격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어떤 전문가도 정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에너지 가격은 일반적인 상품보다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수급 측면에서도 분석을 통해 어느정도 가늠이 가능한 실제 수요보다 가격 변동에 따른 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수요로부터 받는 영향이 상당합니다.
작년 4월20일에 나타난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가 그 증거예요. 이날 같은해 5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37.63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이 다음날인 작년 4월21일에는 WTI 기준 국제유가가 배럴당 플러스(+) 11.57달러로 회복했습니다.
돈을 받고 석유를 가지라는 마이너스 유가에서 하루만에 48.9달러가 올라 플러스로 전환한 이 사건은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적 수요가 만든 해프닝이었습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고 듣는 국제유가는, 지금 돈을 내면 물건을 나중에 주겠다는 선물 거래에서의 가격입니다. WTI 가격을 이야기 할 때 항상 숫자 앞에 ‘O월 인도분’이라는 말이 붙잖아요. 보통 거래일이 포함된 달의 다음달인데, 21일부터는 두 달 차이가 납니다. 그 다음달을 만기로 하는, 다른 원유 선물이 기준 가격이 되는 겁니다.
만기 때까지 선물을 팔지 못하면 실제 원유를 받아야 합니다. 정유사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시세 차익을 노리고 투기적으로 원유선물을 거래한 금융회사가 원유를 받게 된다면 그걸 쌓아둘 창고 비용이 더 들게 될 겁니다. 더구나 작년 4월20일이면 한창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공포가 극에 달했고, 세계 각국이 봉쇄정책을 펼치던 때라 쌓아둔 석유를 금방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 때였죠.
어쩔 수 없이 과거 석유시장의 큰 변곡점으로부터 힌트를 얻어야겠습니다.
우선 이번 국제유가 급등 이전에 WTI가 마지막으로 배럴당 80달러 이상을 기록했던 2014년 10월로 가보죠. 주로 중동 산유국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이제 막 채산성을 확보한 미국의 셰일오일 업계를 고사시키기 위해 공격적으로 석유를 증산하며 가격 하락을 유도하기 시작하던 때죠. 이로 인해 2014년 7월30일 배럴당 100.27달러였던 WTI는 2015년 1월29일 44.53달러로 반토막 이하로 떨어지고, 이로부터 1년여 뒤인 2016년2월11일에는 26.11달러를 기록합니다. 결국 증산 기조를 포기한 OPEC은 러시아를 비롯한 비회원 산유국들과 감산 공조를 통한 유가 부양에 나섭니다. 하지만 2017년말까지 WTI는 배럴당 60달러선을 돌파하지 못합니다. 가격이 오를 법하면 미국의 셰일오일업계가 증산해 공급을 늘린 탓이었죠. 당시 셰일오일업계는 “지구 온난화는 사기”라고 외치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지원도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석유시장에 새로 유입된 공급 주체가 미국의 셰일오일업체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2010년대 초까지 세계 경제 성장은 신흥국들이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유전을 가진 개발도상국들의 국영 석유회사들이 석유시장의 주요 공급자로 나섰던 겁니다. 한국 조선사들에 해양플랜트를 발주하면서 이름이 알려진 브라질의 패트로브라스, 말레이시아의 패트로나스, 러시아의 가즈프롬 등을 떠올리면 됩니다.
대략 2000~2020년에 걸친 고유가-저유가 사이클에선 새로운 석유 공급 주체의 등장으로 인한 다툼이 국제유가 하락을 촉발했지만, 1970~1990년대의 사이클에선 반대였습니다. 이 시기에 새로 등장한 석유 공급 주체가 OPEC입니다. 아무리 1970년대라도 중동이 무슨 신흥 산유국이냐는 분도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훨씬 이전부터 중동에서는 석유가 생산됐죠. 문제는 누가 생산했느냐는 겁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주로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전 세계 유전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스탠더드오일의 독점에 대항해 반독점법이 생겼고 이로 인해 이 회사는 34개 회사로 쪼개졌지만, 미국의 석유산업을 장악했던 존 록펠러의 후손들답게 개발도상국들에 약간의 돈만 쥐어주고 그 지역 유전을 차지해 석유 판매 수익을 챙겼습니다.
당시 가장 많은 석유가 생산되던 중동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이슬람 국가인 중동 산유국들은 이스라엘과 갈등이 잦았습니다. 안 그래도 석유 관련 이익을 너무 많이 가져가 얄미운 미국이 이스라엘까지 들자 폭발하죠. 이에 1973년 OPEC은 석유 황제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셰이크 야마니’를 협상 선수로 내세워 회원국들의 석유 생산량 10% 일괄 감산 및 매달 5%의 추가 감산, 석유 공시 가격을 3달러에서 5.12달러로 인상, 석유 수출 중단 등의 조치를 단행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1차 오일쇼크입니다. 이를 계기로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후 OPEC는 석유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3년여만에 1차 오일쇼크를 주도한 야마니와 미국은 손을 잡게 됩니다. 사우디는 스탠더드오일 뉴저지·캘리포니아·뉴욕과 텍사코가 보유한 아람코 지분을 넘겨받고, 자국에 대한 미국의 보호를 얻어내죠. 대신 미국은 중동의 석유를 거래할 때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하는 ‘패트로 달러’를 받아냅니다. 패트로 달러를 계기로 미국은 1971년 금태환제도 철폐 이후 흔들렸던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을 되찾았죠.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실물인 석유 가격은 오르게 되는데, 이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있어야 하니 다시 달러 가치가 회복되는 메커니즘을 만든 거죠. 미국과의 밀월관계 속에 사우디는 적극적으로 증산하며 석유 가격을 안정시킵니다. 석유 가격이 떨어져도 판매량이 늘어나니 사우디의 지갑도 두툼해졌습니다.
반면 이란은 달랐습니다. 계속해서 감산을 주장했던 거죠. 결국 이란이 1978년 단독으로 석유수출을 중단하면서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납니다. 이란은 사우디처럼 많은 걸 챙기지는 못했습니다. 서방이 필요한 석유를 공급해줄 사우디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후에도 이란은 툭하면 감산에 나섰고, 사우디는 증산 기조를 이어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2014년 이후 OPEC+가 감산하면 미국의 셰일오일업체들이 증산해 이익을 챙겨가던 모습과도 비교됩니다. 결국 사우디는 이란을 제치고 OPEC의 맹주로 올라서게 됩니다.
다만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쉽게 퇴출당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석유관련 산업이 사양산업 아니냐고 묻자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오지에 가면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느냐”며 “그들에게 옷을 입히게 될 때까지 석유화학 산업은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기능성 옷을 만드는 원단인 폴리에스터가 석유화학제품 중 하나입니다.
십수년 전에는 전 세계의 석유가 조만간 고갈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던 기억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이야기가 사라졌죠. 새로운 유전도 계속 발견됐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전에는 채산성이 없다고 판단해 캐내지 않았던 석유도 수익을 남기고 뽑아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은 국내 증시에서 주도 테마의 자리를 메타버스에 내줬지만,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터진 뒤 상당 기간 동안 ‘친환경’이 우리 증시의 주도 테마였습니다. 최근 증시에서 “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NFT)과 스치기만 주가가 뛴다”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올해 초까지는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수소’가 그랬습니다.
전임 대통령의 ‘기후변화 사기론’을 뒤집기 위해 셰일오일업계를 때렸다가 이제 와서 싸늘한 대접을 받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섣불리 신재생에너지 의존도를 높였다가 가스 가격 급등에 시름하는 유럽, 임기 초 적극적으로 탈원전을 추진했다가 세계 각국이 다시 원전산업에 주목하자 머쓱해진 우리 정부 등과 같은 실수를 투자자들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집계된 지난 11일 전국 주유소의 보통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1810.16원으로 작년 5월15일의 1247.58원과 비교하면 45% 넘게 비싸졌습니다. 그만큼 부담이 늘었으니 한시적이라도 기름값 인하는 반갑습니다. 유류세 20% 인하가 적용된 주유소에서는 지난 12일 보통휘발유가 1600원대에 팔렸다고 합니다.
기름값이 너무 올랐다지만, 휘발유를 만드는 원료인 원유 가격의 상승폭에 비하면 작은 편입니다. 1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0.79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작년 5월15일의 가격이 배럴달 29.43달러였으니 상승률로 치면 174.52%입니다.
너무 오른 기름값…'탄소중립'이 불러온 국제유가 폭등
이러한 기름값 고공행진은 우리 생활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까지만 하더라도 화석연료가 퇴출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의아합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몇 달 전만 해도 세계 각국에서 ‘탄소 중립’을 외친 영향으로 주식 시장은 수소,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으니 말이죠.아이러니하게 지금의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 가격 강세는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드라이브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 정부는 지구 온난화를 막지 못하면 인류의 생존조차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화석연료에 대해 강한 규제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이로 인해 감염병 확산 사태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송유관 건설 사업인 ‘키스톤 XL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취소했습니다. 이어 자국 내 석유 시추 제한,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등 화석연료 산업을 강하게 규제했습니다. 최근에는 유가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부담스러워지자 셰일오일업계에 증산을 요청하고 있지만, 업계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한 셰일오일업체 대표는 “바이든 정부가 임기 초부터 급진적으로 환경 규제를 도입해 화석 에너지 업계를 초토화시켜 놓고 이제 와서 증산을 요구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군요.
유럽에서는 화석연료를 대신할 것으로 기대됐던 에너지 공급원인 신재생에너지로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올해 북해 지역에 바람이 불지 않으면서 풍력발전 효율이 뚝 떨어졌고, 하필 겨울을 앞둔 시기라 에너지난에 대한 공포가 심화돼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유럽의 천연가스 수요 중 상당 부분을 공급하고 있는 러시아와 관계가 삐걱거린 점도 천연가스 가격의 변동성을 키웠죠.
앞으로의 에너지 가격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어떤 전문가도 정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에너지 가격은 일반적인 상품보다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수급 측면에서도 분석을 통해 어느정도 가늠이 가능한 실제 수요보다 가격 변동에 따른 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수요로부터 받는 영향이 상당합니다.
작년 4월20일에 나타난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가 그 증거예요. 이날 같은해 5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37.63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이 다음날인 작년 4월21일에는 WTI 기준 국제유가가 배럴당 플러스(+) 11.57달러로 회복했습니다.
돈을 받고 석유를 가지라는 마이너스 유가에서 하루만에 48.9달러가 올라 플러스로 전환한 이 사건은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적 수요가 만든 해프닝이었습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고 듣는 국제유가는, 지금 돈을 내면 물건을 나중에 주겠다는 선물 거래에서의 가격입니다. WTI 가격을 이야기 할 때 항상 숫자 앞에 ‘O월 인도분’이라는 말이 붙잖아요. 보통 거래일이 포함된 달의 다음달인데, 21일부터는 두 달 차이가 납니다. 그 다음달을 만기로 하는, 다른 원유 선물이 기준 가격이 되는 겁니다.
만기 때까지 선물을 팔지 못하면 실제 원유를 받아야 합니다. 정유사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시세 차익을 노리고 투기적으로 원유선물을 거래한 금융회사가 원유를 받게 된다면 그걸 쌓아둘 창고 비용이 더 들게 될 겁니다. 더구나 작년 4월20일이면 한창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공포가 극에 달했고, 세계 각국이 봉쇄정책을 펼치던 때라 쌓아둔 석유를 금방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 때였죠.
셰일오일 죽이려다 장기 저유가 시대 개막
국제유가의 변동은 투기꾼들의 영역이니 전망을 포기해야 할까요. 그러기에는 국제유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큽니다. 거창하게 경제 걱정까지 나가지 않아도 돼요. 우리는 유류세가 인하된 지난 12일 이후에 주유를 하기 위해 며칠을 기다렸지요.어쩔 수 없이 과거 석유시장의 큰 변곡점으로부터 힌트를 얻어야겠습니다.
우선 이번 국제유가 급등 이전에 WTI가 마지막으로 배럴당 80달러 이상을 기록했던 2014년 10월로 가보죠. 주로 중동 산유국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이제 막 채산성을 확보한 미국의 셰일오일 업계를 고사시키기 위해 공격적으로 석유를 증산하며 가격 하락을 유도하기 시작하던 때죠. 이로 인해 2014년 7월30일 배럴당 100.27달러였던 WTI는 2015년 1월29일 44.53달러로 반토막 이하로 떨어지고, 이로부터 1년여 뒤인 2016년2월11일에는 26.11달러를 기록합니다. 결국 증산 기조를 포기한 OPEC은 러시아를 비롯한 비회원 산유국들과 감산 공조를 통한 유가 부양에 나섭니다. 하지만 2017년말까지 WTI는 배럴당 60달러선을 돌파하지 못합니다. 가격이 오를 법하면 미국의 셰일오일업계가 증산해 공급을 늘린 탓이었죠. 당시 셰일오일업계는 “지구 온난화는 사기”라고 외치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지원도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석유시장에 새로 유입된 공급 주체가 미국의 셰일오일업체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2010년대 초까지 세계 경제 성장은 신흥국들이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유전을 가진 개발도상국들의 국영 석유회사들이 석유시장의 주요 공급자로 나섰던 겁니다. 한국 조선사들에 해양플랜트를 발주하면서 이름이 알려진 브라질의 패트로브라스, 말레이시아의 패트로나스, 러시아의 가즈프롬 등을 떠올리면 됩니다.
OPEC, 오일쇼크 일으켜 석유시장 내 위상 확립해
2000년대의 고유가 시대에 접어들기 전까진 저유가 시대였겠죠. 고등학교 근현대사 시간에 배웠거나, 직접 겪었던 ‘3저(低) 호황’이 기억날 겁니다. 금리, 달러 가치, 유가가 모두 낮았단 말이죠.대략 2000~2020년에 걸친 고유가-저유가 사이클에선 새로운 석유 공급 주체의 등장으로 인한 다툼이 국제유가 하락을 촉발했지만, 1970~1990년대의 사이클에선 반대였습니다. 이 시기에 새로 등장한 석유 공급 주체가 OPEC입니다. 아무리 1970년대라도 중동이 무슨 신흥 산유국이냐는 분도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훨씬 이전부터 중동에서는 석유가 생산됐죠. 문제는 누가 생산했느냐는 겁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주로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전 세계 유전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스탠더드오일의 독점에 대항해 반독점법이 생겼고 이로 인해 이 회사는 34개 회사로 쪼개졌지만, 미국의 석유산업을 장악했던 존 록펠러의 후손들답게 개발도상국들에 약간의 돈만 쥐어주고 그 지역 유전을 차지해 석유 판매 수익을 챙겼습니다.
당시 가장 많은 석유가 생산되던 중동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이슬람 국가인 중동 산유국들은 이스라엘과 갈등이 잦았습니다. 안 그래도 석유 관련 이익을 너무 많이 가져가 얄미운 미국이 이스라엘까지 들자 폭발하죠. 이에 1973년 OPEC은 석유 황제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셰이크 야마니’를 협상 선수로 내세워 회원국들의 석유 생산량 10% 일괄 감산 및 매달 5%의 추가 감산, 석유 공시 가격을 3달러에서 5.12달러로 인상, 석유 수출 중단 등의 조치를 단행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1차 오일쇼크입니다. 이를 계기로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후 OPEC는 석유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3년여만에 1차 오일쇼크를 주도한 야마니와 미국은 손을 잡게 됩니다. 사우디는 스탠더드오일 뉴저지·캘리포니아·뉴욕과 텍사코가 보유한 아람코 지분을 넘겨받고, 자국에 대한 미국의 보호를 얻어내죠. 대신 미국은 중동의 석유를 거래할 때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하는 ‘패트로 달러’를 받아냅니다. 패트로 달러를 계기로 미국은 1971년 금태환제도 철폐 이후 흔들렸던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을 되찾았죠.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실물인 석유 가격은 오르게 되는데, 이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있어야 하니 다시 달러 가치가 회복되는 메커니즘을 만든 거죠. 미국과의 밀월관계 속에 사우디는 적극적으로 증산하며 석유 가격을 안정시킵니다. 석유 가격이 떨어져도 판매량이 늘어나니 사우디의 지갑도 두툼해졌습니다.
반면 이란은 달랐습니다. 계속해서 감산을 주장했던 거죠. 결국 이란이 1978년 단독으로 석유수출을 중단하면서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납니다. 이란은 사우디처럼 많은 걸 챙기지는 못했습니다. 서방이 필요한 석유를 공급해줄 사우디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후에도 이란은 툭하면 감산에 나섰고, 사우디는 증산 기조를 이어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2014년 이후 OPEC+가 감산하면 미국의 셰일오일업체들이 증산해 이익을 챙겨가던 모습과도 비교됩니다. 결국 사우디는 이란을 제치고 OPEC의 맹주로 올라서게 됩니다.
탈석유는 언제쯤?…“아직 나뭇잎으로 몸 가리는 사람 있어”
이미 ‘탈석유’가 진행되고 있고, 미국도 중동에서 발을 빼고 있는 마당에 석유에 대해 뭘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하냐는 분도 있을 겁니다. 또 앞선 두 번의 고유가-저유가 사이클에서는 ‘새로운 공급 주체의 등장’이 변곡점이었던 반면, 이번 사이클의 변곡점은 기존 공급자와 일부 수요의 퇴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다만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쉽게 퇴출당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석유관련 산업이 사양산업 아니냐고 묻자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오지에 가면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느냐”며 “그들에게 옷을 입히게 될 때까지 석유화학 산업은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기능성 옷을 만드는 원단인 폴리에스터가 석유화학제품 중 하나입니다.
십수년 전에는 전 세계의 석유가 조만간 고갈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던 기억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이야기가 사라졌죠. 새로운 유전도 계속 발견됐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전에는 채산성이 없다고 판단해 캐내지 않았던 석유도 수익을 남기고 뽑아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은 국내 증시에서 주도 테마의 자리를 메타버스에 내줬지만,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터진 뒤 상당 기간 동안 ‘친환경’이 우리 증시의 주도 테마였습니다. 최근 증시에서 “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NFT)과 스치기만 주가가 뛴다”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올해 초까지는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수소’가 그랬습니다.
전임 대통령의 ‘기후변화 사기론’을 뒤집기 위해 셰일오일업계를 때렸다가 이제 와서 싸늘한 대접을 받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섣불리 신재생에너지 의존도를 높였다가 가스 가격 급등에 시름하는 유럽, 임기 초 적극적으로 탈원전을 추진했다가 세계 각국이 다시 원전산업에 주목하자 머쓱해진 우리 정부 등과 같은 실수를 투자자들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