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예상했지만…무모한 도전 빛났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식약처 품목허가까지 단 1년
임상 환자 확보 '하늘의 별 따기'
기우성 부회장, 루마니아 오가며
진두지휘해 렉키로나 성공 이끌어
"韓 국가대표 심정으로 버텼다"
임상 환자 확보 '하늘의 별 따기'
기우성 부회장, 루마니아 오가며
진두지휘해 렉키로나 성공 이끌어
"韓 국가대표 심정으로 버텼다"
셀트리온이 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을 선언한 것은 작년 2월이었다. ‘난다 긴다’ 하는 세계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이 일제히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모두 “셀트리온은 들러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신약을 개발해본 경험이 없는 데다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자금력도 달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셀트리온이 이런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의 선입견을 깨뜨리는 데는 1년이면 충분했다. 올 2월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조건부 품목허가를 받아낸 것. 기우성 셀트리온 부회장(사진)은 “작년 초 개발에 착수할 때만 해도 국내에는 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 가이드라인조차 없었다”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전 세계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경쟁에서 한국 국가대표가 된 만큼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렉키로나 개발 과정은 어느 한순간도 쉽지 않았다. 모든 개발 과정을 셀트리온이 새로 그려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빨리 개발을 완료해달라”는 정부의 요청도 부담이었다.
임상 환자를 확보하는 것부터 난항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를 병원이 아니라 생활치료센터로 보낸 탓에 임상 조건에 맞는 대상자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했다. 임상 환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약·바이오 ‘변방’인 한국 기업이 만든 약을 맞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기 부회장은 “빈 손으로 시작해 20년 만에 한국 대표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한 셀트리온의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했다. 임상 환자 확보를 위해 임직원이 직접 발로 뛴 것. 기 부회장도 해외 임상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루마니아행(行)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모아 임상 2상에서 327명, 3상에서 1315명에게 렉키로나를 맞혔다.
유럽의약품청(EMA)의 허가를 받는 것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EMA의 눈높이가 워낙 높은 데다 셀트리온이 신약으로 허가신청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은 올 2월부터 국내에서 투여한 2만여 명의 치료 데이터를 분석해 EMA에 제출하는 등 총력전을 폈다. 렉키로나 개발을 주도한 권기성 연구개발본부장은 “신약 하나쯤은 미국·유럽에 깃발을 꽂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입사했는데 결국 신약으로 승인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셀트리온이 국내 항체치료제 개발에 의미있는 이정표를 세웠다”며 “개별 기업의 영광뿐 아니라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이 거둔 쾌거”라고 말했다.
한재영/오상헌 기자 jyhan@hankyung.com
셀트리온이 이런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의 선입견을 깨뜨리는 데는 1년이면 충분했다. 올 2월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조건부 품목허가를 받아낸 것. 기우성 셀트리온 부회장(사진)은 “작년 초 개발에 착수할 때만 해도 국내에는 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 가이드라인조차 없었다”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전 세계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경쟁에서 한국 국가대표가 된 만큼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렉키로나 개발 과정은 어느 한순간도 쉽지 않았다. 모든 개발 과정을 셀트리온이 새로 그려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빨리 개발을 완료해달라”는 정부의 요청도 부담이었다.
임상 환자를 확보하는 것부터 난항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를 병원이 아니라 생활치료센터로 보낸 탓에 임상 조건에 맞는 대상자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했다. 임상 환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약·바이오 ‘변방’인 한국 기업이 만든 약을 맞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기 부회장은 “빈 손으로 시작해 20년 만에 한국 대표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한 셀트리온의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했다. 임상 환자 확보를 위해 임직원이 직접 발로 뛴 것. 기 부회장도 해외 임상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루마니아행(行)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모아 임상 2상에서 327명, 3상에서 1315명에게 렉키로나를 맞혔다.
유럽의약품청(EMA)의 허가를 받는 것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EMA의 눈높이가 워낙 높은 데다 셀트리온이 신약으로 허가신청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은 올 2월부터 국내에서 투여한 2만여 명의 치료 데이터를 분석해 EMA에 제출하는 등 총력전을 폈다. 렉키로나 개발을 주도한 권기성 연구개발본부장은 “신약 하나쯤은 미국·유럽에 깃발을 꽂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입사했는데 결국 신약으로 승인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셀트리온이 국내 항체치료제 개발에 의미있는 이정표를 세웠다”며 “개별 기업의 영광뿐 아니라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이 거둔 쾌거”라고 말했다.
한재영/오상헌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