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문학관에선 손바닥에도 시가 흐른다 [고두현의 문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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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투어 (2) 충청·영호남
옥천, '향수' 속 실개천이 흐르고
'홍시' 등 음악·영상에 시낭송도
공주엔 나태주 시인 풀꽃문학관
남원 혼불문학관엔 130㎝ 편지
경주 불국사 앞 동리목월문학관
남해 유배·김만중문학관도 명소
고두현 논설위원
옥천, '향수' 속 실개천이 흐르고
'홍시' 등 음악·영상에 시낭송도
공주엔 나태주 시인 풀꽃문학관
남원 혼불문학관엔 130㎝ 편지
경주 불국사 앞 동리목월문학관
남해 유배·김만중문학관도 명소
고두현 논설위원
‘향수’로 유명한 정지용 시인은 어린이를 위한 동시도 많이 썼다. ‘얼굴 하나야/손바닥 둘로/폭 가리지만,//보고 싶은 마음/호수만 하니/눈 감을밖에’라는 ‘호수 1’ 등 40편에 가까운 동시를 남겼다.
그의 고향 충북 옥천군 하계리에 있는 정지용문학관에서는 이런 시를 손으로도 느낄 수 있다. 전시실 중앙에 서서 손을 펴 앞으로 내밀면 ‘우리 오빠 오시걸랑/맛뵐라구 남겨 뒀다/후락 딱딱/훠이 훠이!’(‘홍시’ 부분) 같은 시구가 손바닥 위로 스크린처럼 흐른다.
성우가 낭송하는 시를 음악과 영상으로 즐기는 ‘영상시화’, 뮤직비디오로 제작한 가곡 ‘향수’를 감상하는 ‘향수 영상’도 눈길을 끈다. 1935년에 나온 《정지용 시집》 초판본과 “시도 청춘에 병 되기 쉬운 것이 아닐 수도 없을까 하오니”라고 조지훈 시인에게 쓴 편지 또한 흥미롭다. 시인의 밀랍인형이 앉아 있는 벤치 양옆에서는 기념 촬영을 즐길 수 있다.
문학관 옆에 초가로 된 생가가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던 곳이다. 안방에는 둥근 테 안경을 쓴 시인의 초상화와 동시 ‘할아버지’가 걸려 있다. 마당가 감나무에 달린 까치밥이 ‘오빠 오시걸랑/ 맛뵐라구’ 남겨둔 홍시처럼 정겹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충남 공주시 반죽동에는 공주풀꽃문학관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는 ‘풀꽃’의 나태주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곳이다. 옛 일본식 가옥을 공주시가 사들여 문학관으로 단장했다. 나태주 시인은 “문학관에 산 사람 이름을 붙이지 않으니 ‘풀꽃’을 넣자”고 했다. 오래된 목조 가옥이 키 큰 나무와 풀꽃 사이에 고즈넉이 앉아 있다.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는 ‘금강’과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문학관이 있다. 전시관에서 시인의 육필 원고와 아내 인병선 시인에게 쓴 편지, 교무수첩 등의 유품을 관람할 수 있다. 옥상정원에서 내려다보면 푸른색 기와지붕의 생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북 고창군 부안면 옛 봉암초 선운분교에선 미당시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가을마다 ‘국화 옆에서’를 읊조리며 찾아오는 사람으로 붐빈다. 쌀쌀한 날씨에도 문학관 앞 비석에 새겨진 시 ‘동천’을 음미하는 표정들이 진지하다. 전시실에는 남농 허건으로부터 받은 부채와 생전에 가까이했던 파이프,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이 가득하다. 전북 전주와 남원에는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기념하는 문학관이 두 곳이나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최명희문학관과 남원 노봉마을의 혼불문학관 모두 명소가 됐다. 혼불문학관에는 생전에 화가 김병종 전 서울대 교수에게 보낸 길이 130㎝, 폭 20㎝의 긴 편지가 보관돼 있다. ‘사과 냄새가 시고 향기롭게 그러나 서글프게 섞여 있는 11월의 햇발을 받고 앉아’로 시작하는 서간문이 한 편의 시처럼 정갈하다.
경북 지역에도 문학관이 많다. 경주 불국사 앞 동리목월문학관은 커다란 쌍둥이 건물로 이뤄져 있다. 왼쪽 동리문학관에 들어서면 김동리 흉상이 보인다. 뒤편에 ‘동리 문학은 나귀이다. 모든 것이 죽고 난 뒤에 찾아오는 나귀이다’라는 평론가 이어령의 글이 적혀 있다.
오른쪽 목월문학관에는 시인의 흉상이 있고, 그 뒤에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란 시구가 펼쳐져 있다. 한쪽엔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로 시작하는 국민 동시 ‘얼룩송아지’가 걸려 있다. 방문객은 그 앞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내친김에 경북 안동 원천리의 이육사문학관도 가볼 만하다.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을 앞두고 옥사한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다. 그는 첫 수감번호였던 ‘264’를 호로 지었다. 이는 그의 시와 저항의 정신을 상징하는 기호가 됐다. 전시실 끝 난간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왕모산 절벽은 시 ‘절정’의 산실, 오른쪽 윷판데가 있는 산 아래는 ‘광야’의 배경이다. 이웃 영양군에는 조지훈문학관이 있고, 칠곡군엔 구상문학관이 있다.
경남 하동에는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인근에 박경리문학관이 있다. 작가가 사용하던 재봉틀과 국어사전, 돋보기, 만년필, 재떨이, 가죽장갑 등이 전시돼 있다. 박경리기념관은 강원 원주와 고향인 경남 통영 등 전국 세 곳에 있다. 통영에는 유치환 시인을 기리는 청마문학관도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 소사동의 김달진문학관에서는 특별한 나무들을 발견할 수 있다. 350년에 가까운 팽나무 아래를 자세히 보면 큰 두꺼비가 붙어 있는 듯하다. 맞은편 생가 마당에서 100년 넘은 가죽나무와 감나무를 쓰다듬는 이도 보인다.
부산에는 금정구 남산동에 소설가 김정한을 기리는 요산문학관이 있고, 해운대 달맞이언덕에는 개인 문학관인 김성종 추리문학관이 있다. 경남 남해군에 있는 국내 최초·최대 규모의 남해유배문학관과 김만중문학관도 놓치기 아깝다. 남해로 유배된 200여 명의 옛 선비와 그들의 문학을 비롯해 두보, 도스토옙스키 등 세계적인 유배 인물의 자료를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 살다 3년 만에 세상을 떠난 남해 노도는 ‘문학의 섬’으로 조성됐다. 올해 완공된 김만중문학관에 《사씨남정기》 《구운몽》 《서포만필》 등이 전시돼 있다. 언덕 위의 문학공원인 ‘구운몽원’과 ‘사씨남정기원’에는 작품 속 인물상이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
코로나 이후 모처럼의 나들이길에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문학의 향기까지 만끽할 수 있다면 여행의 품격도 그만큼 높아지겠다.
그의 고향 충북 옥천군 하계리에 있는 정지용문학관에서는 이런 시를 손으로도 느낄 수 있다. 전시실 중앙에 서서 손을 펴 앞으로 내밀면 ‘우리 오빠 오시걸랑/맛뵐라구 남겨 뒀다/후락 딱딱/훠이 훠이!’(‘홍시’ 부분) 같은 시구가 손바닥 위로 스크린처럼 흐른다.
성우가 낭송하는 시를 음악과 영상으로 즐기는 ‘영상시화’, 뮤직비디오로 제작한 가곡 ‘향수’를 감상하는 ‘향수 영상’도 눈길을 끈다. 1935년에 나온 《정지용 시집》 초판본과 “시도 청춘에 병 되기 쉬운 것이 아닐 수도 없을까 하오니”라고 조지훈 시인에게 쓴 편지 또한 흥미롭다. 시인의 밀랍인형이 앉아 있는 벤치 양옆에서는 기념 촬영을 즐길 수 있다.
문학관 옆에 초가로 된 생가가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던 곳이다. 안방에는 둥근 테 안경을 쓴 시인의 초상화와 동시 ‘할아버지’가 걸려 있다. 마당가 감나무에 달린 까치밥이 ‘오빠 오시걸랑/ 맛뵐라구’ 남겨둔 홍시처럼 정겹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충남 공주시 반죽동에는 공주풀꽃문학관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는 ‘풀꽃’의 나태주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곳이다. 옛 일본식 가옥을 공주시가 사들여 문학관으로 단장했다. 나태주 시인은 “문학관에 산 사람 이름을 붙이지 않으니 ‘풀꽃’을 넣자”고 했다. 오래된 목조 가옥이 키 큰 나무와 풀꽃 사이에 고즈넉이 앉아 있다.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는 ‘금강’과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문학관이 있다. 전시관에서 시인의 육필 원고와 아내 인병선 시인에게 쓴 편지, 교무수첩 등의 유품을 관람할 수 있다. 옥상정원에서 내려다보면 푸른색 기와지붕의 생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북 고창군 부안면 옛 봉암초 선운분교에선 미당시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가을마다 ‘국화 옆에서’를 읊조리며 찾아오는 사람으로 붐빈다. 쌀쌀한 날씨에도 문학관 앞 비석에 새겨진 시 ‘동천’을 음미하는 표정들이 진지하다. 전시실에는 남농 허건으로부터 받은 부채와 생전에 가까이했던 파이프,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이 가득하다. 전북 전주와 남원에는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기념하는 문학관이 두 곳이나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최명희문학관과 남원 노봉마을의 혼불문학관 모두 명소가 됐다. 혼불문학관에는 생전에 화가 김병종 전 서울대 교수에게 보낸 길이 130㎝, 폭 20㎝의 긴 편지가 보관돼 있다. ‘사과 냄새가 시고 향기롭게 그러나 서글프게 섞여 있는 11월의 햇발을 받고 앉아’로 시작하는 서간문이 한 편의 시처럼 정갈하다.
경북 지역에도 문학관이 많다. 경주 불국사 앞 동리목월문학관은 커다란 쌍둥이 건물로 이뤄져 있다. 왼쪽 동리문학관에 들어서면 김동리 흉상이 보인다. 뒤편에 ‘동리 문학은 나귀이다. 모든 것이 죽고 난 뒤에 찾아오는 나귀이다’라는 평론가 이어령의 글이 적혀 있다.
오른쪽 목월문학관에는 시인의 흉상이 있고, 그 뒤에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란 시구가 펼쳐져 있다. 한쪽엔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로 시작하는 국민 동시 ‘얼룩송아지’가 걸려 있다. 방문객은 그 앞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내친김에 경북 안동 원천리의 이육사문학관도 가볼 만하다.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을 앞두고 옥사한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다. 그는 첫 수감번호였던 ‘264’를 호로 지었다. 이는 그의 시와 저항의 정신을 상징하는 기호가 됐다. 전시실 끝 난간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왕모산 절벽은 시 ‘절정’의 산실, 오른쪽 윷판데가 있는 산 아래는 ‘광야’의 배경이다. 이웃 영양군에는 조지훈문학관이 있고, 칠곡군엔 구상문학관이 있다.
경남 하동에는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인근에 박경리문학관이 있다. 작가가 사용하던 재봉틀과 국어사전, 돋보기, 만년필, 재떨이, 가죽장갑 등이 전시돼 있다. 박경리기념관은 강원 원주와 고향인 경남 통영 등 전국 세 곳에 있다. 통영에는 유치환 시인을 기리는 청마문학관도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 소사동의 김달진문학관에서는 특별한 나무들을 발견할 수 있다. 350년에 가까운 팽나무 아래를 자세히 보면 큰 두꺼비가 붙어 있는 듯하다. 맞은편 생가 마당에서 100년 넘은 가죽나무와 감나무를 쓰다듬는 이도 보인다.
부산에는 금정구 남산동에 소설가 김정한을 기리는 요산문학관이 있고, 해운대 달맞이언덕에는 개인 문학관인 김성종 추리문학관이 있다. 경남 남해군에 있는 국내 최초·최대 규모의 남해유배문학관과 김만중문학관도 놓치기 아깝다. 남해로 유배된 200여 명의 옛 선비와 그들의 문학을 비롯해 두보, 도스토옙스키 등 세계적인 유배 인물의 자료를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 살다 3년 만에 세상을 떠난 남해 노도는 ‘문학의 섬’으로 조성됐다. 올해 완공된 김만중문학관에 《사씨남정기》 《구운몽》 《서포만필》 등이 전시돼 있다. 언덕 위의 문학공원인 ‘구운몽원’과 ‘사씨남정기원’에는 작품 속 인물상이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
코로나 이후 모처럼의 나들이길에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문학의 향기까지 만끽할 수 있다면 여행의 품격도 그만큼 높아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