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고통스러운 '아사리판 시장'
외국인 이탈·금리 상승·인플레에
숫자·분석이 무의미해진 시장
기업 계획만 발표해도 투자 몰려
'어떻게 투자해야 하나' 고민될 땐
다양한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펀드매니저 A씨는 요즘 시장을 ‘몹시 난잡하고 무질서하게 엉망인 상태’를 가리키는 아사리판이라고 했다. 개인투자자의 쏠림 현상이 극심하고 변동성이 워낙 커서다.
시쳇말로 ‘되는 놈만 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A씨의 지적이다. 그는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인한 게임주의 급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지난달 말 게임회사 위메이드가 블록체인 기반 게임 서비스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게임주가 급등했다. 10월 초 9만원대였던 위메이드 주가는 지난 3일 장중 19만9100원을 찍었다.
A씨는 “‘이용자가 게임하면서 돈도 번다’는 게 핵심인데 이 분야를 아는 사람은 그런 방식이 게임회사가 자기 발목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럼에도 게임주가 급등한 것은 무언가 ‘그림’을 그리는 듯하면 시세가 몰리는 시장 분위기 탓”이라고 주장했다.
숫자(실적)나 펀더멘털 분석이 아니라 ‘꿈’을 좇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얘기다. 지지부진한 시장에서 다행히 이런 대박주로 수익을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투자자는 소수다. 다수는 보유한 종목의 주가가 흘러내려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면서 “아무리 싸면 뭐해. 아무도 안 사는데” “실적이 좋으면 뭐해. 관심 없는 섹터인데” 같은 넋두리만 늘어놓는다.
시장이 무질서하게 보이는 이유는 시장의 힘이 없어서라는 진단이다. 우선 외국인 매도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코스트 푸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아 외국인으로선 매력적이지 않다.
3분기 실적이 아무리 잘 나와도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그 실적이 과연 유지될지에 대해 의문이 많은 것도 수급을 위축시킨다. 게다가 ‘금리까지 뛰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더해져 시장이 힘을 잃었다.
투자자는 이런 상황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할까. 일각에서 경기가 ‘L자’를 그릴 것이란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예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투자자로선 지금이 제일 고통스러운 때다.
현 상황을 진단해 보면, 테이퍼링(자산 매입축소)이나 금리 이슈는 악재로서 뉴스는 아니다. 가장 큰 우려는 인플레이션이다.
A씨는 “유가의 방향성이 중요하다”며 “모든 상품 가격은 추세를 그리는데 유가가 안정화되는 그림이 나와줘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으로선 그런 그림을 예상할 수 없어 불안한데 미국이 전략 비축유를 내놓든지, 석유수출국기구(OPEC) 증산을 유도하든지 호재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가가 빠지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란 생각으로 안도 랠리가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론 원자재 가격 상승이 그런 원자재가 안 들어가는 종목에 매수세를 집중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소프트웨어, 게임, 콘텐츠, 미디어 등 원자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종목이 뛰는 이유가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이란 얘기다.
‘꿈’을 좇는 분위기에 가담할지, 원자재가 필요 없는 종목을 사야 할지, 역발상으로 많이 빠진 우량주를 담아야 할지 투자자는 고민이다. 방법은 포트폴리오다. 허황된 꿈처럼 느껴져 내키지 않더라도 그런 종목을 일부 사고, 우량주도 담아서 포트폴리오를 정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세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우선 개별주 순환매는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순환매 흐름을 잘 따라다니면 될 것 같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음으로 특정 종목 비중을 너무 높이지 말아야 한다. 현금 비중을 높이는 것은 적절하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빨리 인정해야 한다. 고집보다 유연함이 요구된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