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사람들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각각 어떤 의도를 가지게 마련이다. 경영자나 정치인의 경우에는 말이나 글에서 어떤 의도가 특히 더 두드러진다.

경영자가 직원들의 결혼기념일에 집으로 꽃바구니를 보내며 작은 메모지를 끼워 넣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자상한 사람이라는 점을 알리려는 의도가 조금은 있었으리라.

정치인들이 선거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악수를 나누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소탈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의도 없는 글이나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영자나 정치인 혹은 일반인의 글이나 말에서 의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글쓴이나 화자의 의도와 달리 주장하는 내용이 완전히 헛다리를 짚거나 삼천포로 빠지게 된다.

필자나 화자는 글감이나 말감을 어떻게 요리해 무슨 메시지를 담아낼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데,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면서 사례나 미사여구만 나열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려면 서술적 맥락과 의미화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서술적 맥락이 글의 소재를 나열하고 기술하는 것이라면, 의미화 맥락이란 서술한 사실에 어떤 의미를 담아내는 과정이다.

코나드화장품의 플로브(Flobu) 마스카라 광고에서는 표현의 소재를 나열하는 서술적 맥락을 넘어, 서술한 사실에 의미를 담아내는 의미화 맥락에 성공했다.

코나드(Konad)는 코리아 네일아트 디자인(Korea Nail Art Design)의 두문자를 따서 2002년에 창립된 우리나라의 네일아트 전문 기업이다. 세계 120여 나라에 진출해있으며, ‘플로브’는 코나드의 방수 마스카라 브랜드이다.

광고회사 그레이(Grey)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사의 광고 창작자들은 “그가 결혼했다”, “나는 임신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같은 시리즈 광고를 통해 물에 지워지지 않는 마스카라의 특성을 흥미롭게 의미화하는데 주력했다.

플로브 마스카라의 광고 ‘그의 결혼’ 편(2011)을 보면 “그가 결혼했다(He’s married)”는 헤드라인이 지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배치돼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항상 봐오던 서체가 아니다. 헤드라인의 글씨가 물에 번져 잘못 인쇄된 것 같다. 그가 결혼했다는 내용과 연결해 생각해보니 사귀던 남자 혹은 짝사랑하던 남자의 결혼 소식을 듣고 그녀가 눈물을 쏟아냈음을 알 수 있다.

광고 아래쪽을 보니 마스카라 사진을 배치했고 그 옆에 “감정 제어(emotion proof)”라는 슬로건을 붙였다. 즉, 이 광고에서는 방수 마스카라의 특성을 알리기 위해 서체를 번지게 표현해 강렬한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플로브 마스카라의 광고 ‘그의 결혼’ 편 (2011)
플로브 마스카라의 광고 ‘그의 결혼’ 편 (2011)
이어지는 ‘그와의 이별’ 편(2011)에서는 “우리는 헤어졌다(We broke up)”라는 헤드라인을 썼다.

헤드라인을 “우리는 깨졌다”로 번역할 수도 있겠다. 앞서의 광고와 마찬가지로 지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헤드라인을 크게 배치했다.

물에 번져 잘못 인쇄된 것처럼 헤드라인의 글씨체도 똑같이 번지게 처리했다. 사귀던 남자와 이별하고 나서 한 여성이 닭똥 같은 눈물을 광고에 흘리고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지가 광고 표현의 소재를 나열하고 기술하는 서술적 맥락이라면, 마스카라가 방수가 되니까 감정이 복받칠 때도 여성들이 안심할 수 있다며 “감정 제어”라고 슬로건을 쓴 것은 서술한 사실에 소비자 혜택을 담아내는 의미화 맥락이다.
플로브 마스카라의 광고 ‘그와의 이별’ 편 (2011)
플로브 마스카라의 광고 ‘그와의 이별’ 편 (2011)
두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의미화(Meaning making)이다. 의미화란 표현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 주장을 구체적으로 되살려 손에 잡히도록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이 쓴 글을 읽거나 말을 듣고 나서, 아하 그런 뜻이었구나 하며 느끼게 만드는 것이 의미화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글이나 말에 서술적 맥락만 있고 의미화 맥락이 없거나 일관된 줄기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어떤 알맹이도 없는 맹탕 글이나 맹탕 말이 되기 쉽다.

누군가가 쓴 글을 읽거나 연설을 듣다보면 소개하는 소재는 참신한데도 전하고자 하는 핵심 의도와 어긋나고 동떨어진 경우가 있다.

뜻밖에도 경영자나 정치인의 말과 글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력이 부족했거나 공 들이지 않은 탓에 의미화에 도달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쓰거나 연설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자신의 글이나 말의 의미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반드시 짚어보고 따져봐야 한다.

글을 읽은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지, 말을 듣는 청자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주제인지, 사전에 검토해본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사진 찍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모든 전경을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 글 쓰는 작가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소재를 글감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항상 좋은 것을 고르고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경영자나 정치인 그리고 우리 일반인들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전하려는 메시지와 감응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서 서술하고, 이를 의미화 맥락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말이나 글을 접하는 상대방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의미)”(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마지막 부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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