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결의 채택후 31년 더 집권…덩샤오핑도 약 10년 더
毛·鄧 역사결의후 장기집권…시진핑 '3연임+알파' 주목
11일 채택된 중국 공산당 '3차 역사결의'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3연임의 이론적, 사상적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역사결의 채택후 오래 집권했던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과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길을 따를 지 주목된다.

1차 역사결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는 마오쩌둥이 당의 리더였던 1945년 4월 20일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6기 7차 전체회의(7중 전회)에서 채택됐다.

결의는 마오쩌둥에 대해 당 중앙 핵심이자 전(全)당의 핵심 지위를 부여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화한 마오쩌둥 사상 체계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당내 라이벌의 좌·우편향의 과오를 지적함으로써 장기집권으로 길을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결의 채택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이었던 마오는 1976년 9월 사망 직전까지 최고지도자 자리를 지켰다.

역사 결의 채택 2개월 후인 1945년 6월 당 중앙위 주석으로 재선됐고 1949년 9월 중앙 인민정부 주석이 된데 이어 1954년 9월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주석으로 등극했다.

2차 역사결의인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는 덩샤오핑이 당의 실질적 최고지도자였던 1981년 6월 27일 열린 공산당 제11기 6중 전회에서 통과됐다.

이 결의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확고히 하는 한편 '10년 대환란'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문혁·1966∼1976)에 대해 "당과 국가, 인민에게 건국이래 가장 엄중한 좌절과 손실을 겪게 했다"고 평가했다.

毛·鄧 역사결의후 장기집권…시진핑 '3연임+알파' 주목
전임자인 마오의 공은 공대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문혁에 대해서는 엄정한 비판을 함으로써 개혁·개방을 막 시작한 당이 좌경 노선으로 되돌아갈 여지를 차단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덩의 권력을 공고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의 채택 당시 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장이었던 덩은 바로 그 다음날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피선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랐고, 평생 국가주석이나 당 총서기 직책은 맡지 않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실질적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있었다.

역사결의 채택후 10년 이상 최고지도자 자리에 더 머문 것이다.

2012년 제18차 당대회에서 집권한 시 주석은 국가주석직 3연임 제한 규정이 2018년 폐지된 가운데 내년 하반기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번 역사결의 내용을 압축한 6중 전회(8∼11일 개최) 공보문이 시 주석의 당 또는 당 중앙 '핵심' 지위를 6차례나 거론하고, 시 주석 주요 국정 어젠다인 '공동부유'와 '전과정 인민민주', '과학기술 자립자강' 등을 언급하는 한편 '시진핑 사상'의 역사적 지위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시 주석 장기집권의 '이유'를 결의에 담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번 역사결의 채택 이후 관측통들 사이에서는 시 주석이 국가주석 3연임으로 총임기를 15년으로 늘리는 것은 확실시되고, 그 이상 얼마나 더 재임할지 지켜 봐야 할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毛·鄧 역사결의후 장기집권…시진핑 '3연임+알파' 주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