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은행권 최고경영자(CEO)의 인사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올해는 예년에 비해 교체 폭이 작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임기 만료를 앞둔 CEO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2022년 3월), 김기홍 JB금융 회장(2022년 3월), 허인 국민은행장(2021년 12월), 권광석 우리은행장(2022년 3월) 등 4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변화보다 안정이 우선이었던 지난해와 달리 연말연초 대선 정국, 일부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리며 금융권 인사가 격랑에 빠져들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 하나, 농협, 기업은행과 BNK·DGB·JB 등 지방금융지주 계열 은행장들은 임기가 최소 내년 말까지 남아 있다. 외국계 은행인 박종복 SC제일은행장(2024년 1월), 구조조정 특명을 수행해야 하는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2023년 10월) 임기도 비교적 많이 남았다.

가장 이목이 쏠리는 건 ‘넥스트 김정태’를 찾아야 하는 하나금융이다. 올초 ‘1년 임기’로 연임한 김정태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김 회장은 최근 한 행사에서 “연임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없습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가장 강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는 하나은행장을 거쳐 현재 그룹 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함영주 부회장이 꼽힌다. 지주 내 다른 부회장이나 관계사 대표들도 후보군으로 거론되지만 CEO로서의 경험과 중량감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김기홍 JB금융 회장 역시 내년 3월에 임기 3년이 만료된다. 김 회장이 JB금융을 본궤도에 올렸다는 평을 받는 만큼 외부 변수만 없다면 연임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다른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임기는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김지완 BNK금융 회장은 2023년 3월까지가 임기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임기는 그해 11월까지다. 올초 연임에 성공한 김태오 DGB금융 회장은 이보다 더 긴 2024년 3월까지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가장 빠르게 결정될 인사는 국민은행 차기 행장 자리다. 허 행장은 2년 임기를 마치고 1년씩 두 차례 연임했으며 연말로 임기 만료된다. 계열사대표자후보추천위원회가 이달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 은행장 4연임은 드문 경우여서 교체될 것이란 관측이 있지만, 허 행장이 임기 중 ‘리딩뱅크’ 자리를 지킨 만큼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2023년까지 파트너십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올해 지주 부회장직을 신설한 KB금융이 잔뼈가 굵은 계열사 CEO들을 위해 부회장 자리를 늘릴 수도 있다.

권 우리은행장 임기도 내년 3월까지다. 권 행장은 이례적으로 1년짜리 임기를 두 차례 받았다. 실적 회복을 이끈 만큼 연임이 온당하다는 시각과 우리금융 민영화 등과 맞물려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시각이 공존한다. 우리금융은 내년 초에나 자회사임원후보추천위를 본격 가동할 전망이다. 차기 주자로 꼽히는 주요 계열사 CEO들과 지주사 부사장, 은행 부행장들도 아직 행보를 아끼는 모양새다.

이번 금융권 인사 시즌에는 ‘외풍’이 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게 나온다. 대선 정국을 맞아 금융지주사 임원의 ‘줄대기’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여야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정치권의 개입이 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대형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임기가 비교적 많이 남았다고는 하나 정치권이 또다시 ‘흔들기’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 야권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지주사 인사에 강하게 개입한 전례가 있다. 여당 일각은 ‘문재인 대통령이 민간 기업의 인사 개입은 않겠다’고 못 박은 이후 금융지주사 회장 권력이 지나치게 세졌다고 여기고 있다. 현재의 ‘대(大)금융지주사 체계’는 국민의 돈(공적 자금)이 투입돼 만들어진 것이며 대형 은행도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정치권 인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은행과 금융의 공적 기능은 중요하지만, 인사 개입이야말로 한국 금융의 경쟁력을 갉아먹은 근본 원인”이라며 “기업이 조직과 주주에 최대한 기여할 사람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훈/빈난새/박진우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