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무역분쟁을 넘어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으로 번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 정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듯한 태도가 오히려 한국의 외교 입지를 좁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요소수 대란도 중국의 의도적인 ‘한국 길들이기’라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사안별로 명확한 입장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의 의도적 한국 길들이기?

최중경 한미협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한반도에는 한·미 동맹과 북·중 동맹이라는 두 개의 동맹이 있다”며 “양쪽의 동맹이 충돌하는 가운데 극단적 선택의 상황이 오면 한국이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지는 명약관화”라고 말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때처럼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관계는 관리하는 정도로밖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전략적 모호성은 애초 한국이 펼 수 없는 정책이란 쓴소리도 나왔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건 강대국이나 할 수 있는 전략”이라며 “전략적 모호성에 대한 플랜B조차 없으니 중국에 아쉬운 소리만 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다만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미·중 모두 고도의 전략게임을 하고 우리는 내년에 새 정부가 출범하는 상황에서 조급하게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며 “차기 정부 5년간 대미·대중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당장 무력 충돌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 회장은 “중국은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들이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시점에서 섣불리 미국과 전쟁에 나서긴 어렵다”며 미·중 무력충돌 가능성을 낮게 봤다. 김흥규 소장은 “중국 경제가 전 세계와 상호 의존하는 상황에서 대만 침공은 세계를 상대로 선전포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석했다. 김현욱 교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중국의 정권 붕괴나 민주화 같은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진 않겠다는 게 기본 기조이고, 중국 역시 내년에 당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권 연장이 걸려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요소수 사태는 ‘제2의 사드보복’”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김현욱 교수는 “시 주석이 (내년에) 3연임에 성공하면 대만 무력 통일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당장은 미국과 정면충돌을 피하겠지만 3연임에 성공하면 중국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을 맞는 2027년 전까지 대만 흡수통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어 “미국은 요격 미사일 중심의 미사일방어(MD)에 집중하는 전략에서 벗어나 중거리 공격용 미사일을 한국이나 일본에 배치하려 할 것”이라며 “한국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처럼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회장은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은 북한만을 상대하기 위한 전력이 아니라 동아시아라는 커다란 전구(戰區)의 일부”라며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했다.

최근 요소수 부족 사태가 중국의 경제 보복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 교수는 “요소수 사태는 중국의 보복”이라며 “사드 보복 때처럼 공개적으로 나서지는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한국에 중국의 경제 보복에 대한 우려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며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저지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최 회장도 “요소수 사태는 ‘한국 길들이기’”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현지시간으로 15일 열리는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첫 화상 정상회담에 대해선 일종의 ‘숨 고르기’라고 봤다. 김흥규 소장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중국과 전면 대결하기에는 외교 여력이나 실탄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중국도 굳이 미국과 충돌해 가면서 관계를 악화시키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미·중이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은 갈등 관리가 가능한 선을 찾으려는 노력”이라며 “양국이 강 대 강 대치를 이어온 점을 감안했을 때 상대에 타협하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송영찬/문혜정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