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권 조인 회장은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먹거리에는 연습이 없다”며 “식품은 정직이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우 기자
한재권 조인 회장은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먹거리에는 연습이 없다”며 “식품은 정직이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우 기자
‘조인은 몰라도 조인 계란을 안 먹어본 사람은 없다.’

조인은 국내 1위 계란 생산·유통회사다. 연간 유통 계란은 9억4000만 개, 주요 고객사는 쿠팡 이마트 마켓컬리 등 대형 유통사들이다.

한재권 회장(70)은 1979년 빈손으로 양계장 사업에 뛰어들어 조인을 국내 1위 계란 유통회사로 키워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일을 배웠지만 죽어라 일해도 삶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스무 살 때 무작정 상경해 양계장에 취직했다. 꼬박 10년을 양계장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 낮엔 닭똥을 치우고, 밤엔 부화장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등불 삼아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10년간 모은 1000만원으로 1979년 서울 내곡동에 작은 양계장을 차렸다.

신선 계란부터 출하하는 ‘후입선출’ 전략

지난달 경기 용인시 신갈동에 있는 조인 용인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전국 농장에서 공급받은 계란을 선별·포장하고 있다.   조인 제공
지난달 경기 용인시 신갈동에 있는 조인 용인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전국 농장에서 공급받은 계란을 선별·포장하고 있다. 조인 제공
조인은 현재 전국 30여 개 계약 농장과 20여 개 자체 농장에서 납품받은 계란을 이마트와 쿠팡 등에 공급한다.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이라 소비자들에게 인지도는 낮지만, 조인의 계란을 한 번이라도 먹어보지 않은 소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 강남 주부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마켓컬리의 자체상표(PB) 계란 ‘컬리스 동물복지 유정란’도 조인이 공급하는 계란이다. 조인이 식품업계의 ‘숨은 강자’로 통하는 이유다.

조인의 무기는 신선함이다. “좋은 계란은 신선한 계란”이라는 게 한 회장의 오랜 지론이다. 지난 40여 년간 전국 농장에서 조달한 계란을 가장 빨리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한 회장이 찾은 방법은 ‘후입선출’. 농가에서 나중에 들어온 계란부터 먼저 유통하는 것이다.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선입선출’과 반대되는 전략이다. 한 회장은 “닭이 자라는 환경도 중요하지만 맛있는 계란은 무엇보다 신선해야 한다”며 “가장 신선한 달걀을 소비자 식탁으로 먼저 보내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조인이 후입선출 전략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체계화된 통합 물류시스템 덕분이다. 전국 농장에서 들어온 계란은 물류센터로 모여 가장 신선한 계란부터 유통된다. 그 과정에서 3일 이상 물류센터에 머문 계란은 구운 계란, 반숙란 등을 만드는 난가공 공장으로 보낸다. 한 회장은 “후입선출은 생산과 물류, 가공 등 계란과 관련한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체계화했을 때 가능한 전략”이라며 “비용이 더 들어가고,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소비자에게 가장 신선한 계란을 공급하기 위해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금 잘 지급하는 회사”로 신용 쌓아

계란王의 '신선한' 고집 … "갓 낳은 달걀부터 식탁으로 보내라"
후입선출처럼 기존 시장의 문법을 파괴하는 한 회장의 전략은 책 속에서 나왔다. 한 회장은 업계에서 유명한 독서광이다. 가난 때문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마친 한을 책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풀었다. 자동차 뒷자리에 책을 쌓아놓고 틈 날 때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바쁠 때도 한 달에 10권은 기본으로 탐독한다. 한 회장은 “1000권이 넘는 책을 읽으니 세상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며 “단순한 전략을 넘어 기업의 철학을 마련하고 어떤 회사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끝없이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한 회장이 책 속에서 찾은 경영 전략은 신용이다. 그는 조인을 “한국에서 가장 돈 잘 주는 회사”라고 자평했다. 계약 농가 등 거래처에 주는 납품 대금을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터넷뱅킹이 대중화되기 전 조인 재무팀 직원들은 매달 대금 지급 날이면 꼭두새벽부터 출근했다. 은행이 문을 열자마자 돈을 찾아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서였다. 한 회장은 “좋은 물건을 공급받으려면 무엇보다 대금을 잘 지급해야 한다”며 “외환위기와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등 위기를 수없이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두터운 신용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계란 회사 넘어 종합식품회사로

한 회장은 계란 회사를 넘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가정간편식(HMR)과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종합식품회사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개인 맞춤형 영양식이다. 조인은 계란 전문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농산물 생산·유통과 장어양식 사업도 하고 있다. 농·축·수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경험을 발판으로 좋은 원재료를 공급받아 건강한 식품을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매출 규모는 2025년까지 7000억원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조인은 지난해 유례없는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전년 대비 8.9% 늘어난 382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40념 넘게 지켜온 ‘정직’은 그가 회사를 운영하는 핵심 가치다. 한 회장은 “먹거리에는 연습이 없다”며 “정직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