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올레길과 둘레길
길을 만드는 것은 발이다.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운 길을 연다. 길의 옛말 ‘긿’도 걸음에서 유래했으니, 모든 길은 발길의 준말이다. 옛날부터 동굴에서 물을 마시러 다니고, 사냥감과 목초지를 찾아 나섰던 길이 다 그렇다. 길 위에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본다.

제주에 올레길이 생긴 건 2007년이다. ‘올레’는 ‘집에서 거리까지 나가는 작은 길’(제주어)이다. 이 길은 번듯한 포장대로가 아니라 아기자기한 소로로 제주 해안을 잇는다. 느리고 여유롭게 ‘놀멍 쉬멍’(‘놀면서 쉬면서’의 제주어) 걷는 26개 코스가 425.3㎞나 조성돼 있다.

올레에서 시작된 걷기 바람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명산 주변을 도는 지리산둘레길과 치악산둘레길, 소백산자락길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해안을 따라 걷는 부산갈맷길과 포항 호미반도둘레길, 섬을 한 바퀴 도는 남해바래길도 인기다. 지역별로 인천둘레길, 강릉바우길 등 특색있는 걷기 코스가 많다.

더 크게는 국토 전체를 ‘U’자로 도는 코리아 둘레길이 생겼다. 부산에서 강원 고성까지 걷는 동해안의 ‘해파랑길’은 2016년에 열렸다. 오륙도 해맞이공원과 고성 통일전망대를 잇는 750㎞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보며 파도소리 벗삼아 걷는 이 길은 50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지난해에는 부산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는 남해안의 ‘남파랑길’이 완성됐다. 남녘의 쪽빛 바다와 함께 걷는 90개 코스, 1470㎞의 긴 여로다. 이 가운데 11개 코스는 남해바래길과 동행한다. 바래길 231㎞는 가천다랭이마을, 금산 보리암, 물미해안 등 관광 명소를 품고 있다.

내년 3월에 해남~강화의 ‘서해랑길’이 열리고, 12월 강화~강원 고성의 ‘DMZ 평화의 길’이 이어지면 코리아 둘레길의 총연장은 4500㎞로 늘어난다. 서울~부산 거리의 10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5.7배다. 어제는 경기도 외곽 2000리(860㎞)를 연결한 경기 둘레길까지 개통됐다. 그야말로 ‘걷는 대한민국’ 시대가 열렸다.

이 길을 걸으며 누군가는 코로나 사태의 아픔을 치유하고, 누군가는 재기의 꿈을 꿀 것이다. 길은 길에 맞닿아 있고, 언젠가는 귀로로 이어질 것이므로 그 여정에 희망의 씨앗을 채워 오는 것도 잊지 말 일이다. 내가 지나온 발자국이 뒷사람에게 길이 되는 이치 또한 이와 닮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