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제8부는 지난달 19일 사망한 근로자의 자녀 A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유족급여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고인은 2017년 8월 경기도 화성 공사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넘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치료 중 2020년 1월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고인에게는 재혼하고 30년을 함께 산 부인 B가 있었다.
B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신청했고 공단은 보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그런데 고인의 전처 자식인 A는 “B가 아닌 나에게 유족보상일시금을 지급해 달라”며 그 근거로 “B는 사망 당시 고인과 생계를 같이 하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는 “B는 사고 이후 제대로 치료를 돕지 않아 결국 내가 직접 2018년 6월 고인을 요양병원으로 전원시키고 사망할 때까지 치료와 간병을 전담했다”며 “B는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았지만 (나는) 장례를 지내고 비용도 부담했으며, 고인은 요양원에 전원한 이후 주민등록상으로도 나와 세대를 함께 했다”고 강조했다.
A는 공단이 자신의 청구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산재보험법은 유족보상연금 수급자 순위에서 배우자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고 자녀를 그 다음으로 두고 있다. 다만 근로자와 ‘생계를 같이 한’ 배우자가 아니라면, 근로자와 생계를 함께한 자녀가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고인과 B는 결혼 이후에도 기초생활 수급자로 선정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오면서 고인의 근로소득으로 생활을 함께 꾸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사고 이후에도 B는 기초생활급여와 간병비 등으로 함께 생활을 해왔다.
반면 A는 고인과 자신의 모친이 이혼한 이후 30년 이상 고인과 거의 연락을 주고 받지 않다가, 사고 소식 이후 B의 동의를 얻어 고인을 요양병원으로 이송해 간호한 바 있다. 이후 고인을 자신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이전했다.
결국 쟁점은 B를 고인과 ‘생계를 같이 한’ 배우자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A는 B가 주민등록상 주소지도 달라 ‘생계를 같이 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자신이 주민등록상 생계를 같이 한 유족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은 공단과 B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는 30년 이상 고인의 법률상 배우자였고 사고 전까지 근로소득과 기초생활 급여로 생계를 함께 유지했다”며 “사고 이후에도 고인의 휴업급여와 간병비로 의료비를 지출하고 남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A가 요양원으로 전원시키기 전까지) 직접 간병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생계를 함께 한 유족’이란 주민등록표상 세대를 같이 한 유족으로 한정하는 게 아니라 근로자의 소득으로 생계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유지한 경우를 포함한다”며 “사망 당시 고인과 주민등록지가 달랐다는 사정만으로 B가 ‘생계를 같이한 유족’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법원은 또 “산재보험법상 유족급여는 근로자 사망 당시 그가 부양하던 유족의 생활보장을 목적으로 한다”며 “B는 30년 이상 망인과 생계를 같이하면서 망인의 소득과 급여로 생계를 유지해 왔지만, A는 30년 이상 고인과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A는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고인의 주민등록상 주거지를 자신의 주거지로 옮기고 실제로는 동거하지 않았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B가 A보다 선순위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기업이 유족 보상금을 지급할 때도 우선순위를 두고 유족 간 다툼이 비일비재하다”며 “서류상 주민등록표 등 형식적인 것보다 실제로 고인과 동거를 하면서 생활 공동체를 이뤘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