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CB) 발행이 부쩍 증가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주가가 오르면 CB 전환가액을 의무적으로 올려야 하고 매수선택권(콜옵션) 발행한도도 지분율 이내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발행조건이 불리해 지기 전에 서둘러 자금을 조달하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1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들어 지난 16일까지 상장사가 발행한 CB는 총 9043억원어치다. 전년 동기(3049억원) 대비 약 3배 늘었다. 12월이 가까워질 수록 CB 발행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9월엔 3590억원어치의 CB가 발행됐고, 10월에도 5422억원어치 CB가 발행됐다. 특히 콜옵션이 붙은 전환사채가 부쩍 늘었다. 이달 발행된 27건의 CB 중 19건(70%)에 콜옵션이 붙어있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발행된 CB 중에서는 46%만 콜옵션이 붙은 것과 대조적이다.

CB는 만기까지 약속된 이자를 받다가 만기가 오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주식 전환 권리를 주는 대신 이자가 낮은 편이다. 채권을 발행하자니 신용등급이 낮거나, 대출을 받자니 금리가 높을 때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최근 유동성이 풍부하다보니 금리가 0%인 CB 발행도 적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 콜옵션까지 붙으면 투자자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거의 없다. 콜옵션은 발행사가 만기 전에 투자자로부터 CB를 다시 사들일 수 있는 권리로, 콜옵션이 행사되면 만기 때 주식으로 바꿔 시세차익도 올리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발행회사 입장에선 지분희석을 최대한 제한시키면서 거의 공짜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렇듯 발행회사에 유리한 조건의 CB 발행이 급증한 건 다음달 시행될 금융위원회 개정안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상장사 최대주주에게 부여된 CB 콜옵션 발행한도가 지분율 이내로 제한되고 주가가 오르면 전환가액(리픽싱)도 의무적으로 상향조정해야한다. CB가 기존 주주가치 희석을 야기하고 불공정 거래에 악용된다는 지적에 따른 개정이다. 기업들이 발행조건이 안좋아지기 전에 서둘러 CB를 발행해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다만 시장에선 다음달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당장 시장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한 사모펀드 대표는 "다음달 금융위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시장에 유동성이 대규모로 풀려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장 CB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유동성이 축소되는 국면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