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러시아에서 직접 천연가스를 끌어오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의 가동 승인을 보류했다. 독일 영토 내에서 가스관을 운영하는 기업은 독일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자국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천연가스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올겨울 유럽의 에너지 대란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천연가스 확보에 비상 걸린 유럽

獨, 러 가스관 승인 보류…유럽 '난방대란' 온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 연방네트워크청(FNA)은 이날 “노르트스트림-2 운영사가 독일 법에 따른 요구 사항을 갖추지 못했다”며 승인 보류 결정을 내렸다. 독일에서 가스관을 운영하는 기업은 독일 영토 내에 기반을 둬야 하는데 노르트스트림-2 보유 컨소시엄은 스위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 정부의 승인을 받으려면 독일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주요 자산과 인력을 해당 자회사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컨소시엄 측은 “독일 정부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다. 다만 자회사 설립에 얼마의 기간이 걸릴지, 언제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WSJ는 노르트스트림-2 가동 승인이 적어도 수개월 미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FNA의 승인을 받더라도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유럽 집행위원회의 추가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노르트스트림-2는 발트해 해저를 가로지르는 1230㎞ 길이의 가스관이다. 사업 비용으로 100억유로(약 13조원)가 들어갔다. 이 가스관을 가동하면 독일에 대한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량이 기존의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은 지난 9월 완공됐다. 하지만 러시아와 유럽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승인이 미뤄지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일부 유럽 국가와 EU의 안보동맹인 미국은 이 가스관을 가동하면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가 커질 것으로 보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독일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EU에서 천연가스 거래 가격은 급등했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이날 유럽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18.3% 오른 메가와트시(㎿h)당 94.6유로를 기록했다. 이미 유럽에선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을 앞두고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았다.

유가 상승세 꺾이나

한편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국제 유가는 원유 공급이 증가하고 있다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분석이 발표되면서 소폭 하락했다. 17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날보다 약 1.0% 내린 배럴당 79.96달러에 거래됐다.

IEA는 이날 월간 정례 보고서를 통해 “국제 원유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며 “유가 상승세의 끝이 보인다”고 진단했다. 또 “여전히 국제 원유 시장은 공급이 빠듯하지만 유가 상승세가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의 증산을 강하게 부추기고 있다”며 유가 흐름이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올해 남은 기간 원유 생산량이 하루 150만 배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IEA의 관측이다.

유가가 상승하면서 증산을 머뭇거리던 미국 원유 생산업체들도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달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세계 생산 증가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미국의 증산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증산 계획과 맞물려 공급량이 늘면 유가 상승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IEA는 예상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