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두 달여 앞두고 정부가 어제 법 해설서를 내놨지만 여전히 모호한 규정으로 기업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대로 시행되면 최악의 ‘기업 재해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해설서가 나온 당일 업종별 주요 20개 기업이 ‘중대재해 예방 산업안전 포럼’을 발족하고 법안 개선 등의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은 그 불안감의 정도를 가늠케 한다.

주지하다시피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 대표 등을 1년 이상 징역형(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강력한 기업 처벌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어떤 기준으로 처벌할지 하나하나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법 해설서는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내놓은 최종 지침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처벌대상부터 안전기준까지 여전히 모호함 투성이다. 핵심 쟁점인 처벌대상부터 그렇다. 최고경영자(CEO) 이외에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를 뒀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규정 없이 ‘CSO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CEO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음’이라고 적시했다. CEO가 책임져야 한다는 건지, 둘 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예산 확보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수준만큼 필요한 예산’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적었다. “알아서 지키라는 것이냐” “이게 해설서냐”는 불만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뿐 아니다. 안전관리담당자의 ‘업무 충실도’ 관련 기준에 대해서는 ‘사업장 사정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이라고 답했다. 기업들이 “그렇다면 인증제라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지만 납득할 만한 답이 없다.

곳곳이 모호한 기준과 규정이다 보니 공무원들의 재량적 해석 여지와 그에 따른 법적 분쟁 소지를 남겨두고 있다. 기업주들이 ‘바람막이’가 돼 줄 전·현직 고용부 관료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하는 것이나 로펌과 노무사들이 관련 특수를 노리고 해당 인력 채용을 서두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보다는 예방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모호한 규정들을 뭉개고 있다. 일각에서는 관료들이 퇴직용 낙하산 자리 마련을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법을 강행하는 것은 재앙을 자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법 시행을 최소 1년 이상 연기하고 법 조항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