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나 허츠 지음 / 홍정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 492쪽│2만2000원
무인 계산대·비대면 배달 앱 늘며
점점 세상과 단절되는 현대인들
SNS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 분출
'좋아요' '팔로' 등 광적으로 집착
공동체에 소속되길 갈망하는 마음
포퓰리즘·전체주의에 악용되기도
《고립의 시대》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세계적으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외로움의 위기’ 원인을 파헤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한 책이다.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꼽히는 저자가 오늘날 만연한 고독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밀도 있게 분석했다.
전 세계인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의사를 주고받는 소위 ‘초연결 사회’를 위협하는 복병은 고독이라는 감정이다. ‘고립됐다’는 상실감은 개인의 심리 차원 문제를 넘어서 국가·사회의 존립과 경제 발전마저 위협하는 수준으로 커졌다.
현대사회에서 고립감은 빠르게 세를 늘리고 있다. 미국에선 밀레니얼 세대 5명 중 1명꼴로 친구가 단 1명도 없다. 영국에선 18~34세 5명 중 3명, 10~15세의 아동과 청소년의 절반이 자주 또는 이따금 외로움을 느낀다. 기성세대 중에서도 주변 사람은 믿을 수 없고, 정부는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 회사일은 자신과 관계없는 단절된 존재일 뿐이다.
이처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소외를 일상화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무인 계산대가 늘었고,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도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 웹사이트와 앱은 폭증했다. 요가 수업도 앱으로 참가하고, 거실에서 생방송 예배를 본다. 커다란 스크린을 두드려 햄버거를 주문하고, 판매사원 대신 고객서비스 챗봇에 말을 거는 것도 일상이 됐다. 불과 몇 발짝 거리의 직장 동료에게도 말을 걸기보다는 메신저로 대화하는 게 더는 낯설지 않다.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골은 더욱 깊어졌다. 현대인은 하루평균 221회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시간으론 3시간15분에 달한다. 전 세계 성인의 3분의 1이 아침에 눈을 뜬 지 5분 이내에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각종 소셜미디어는 현대인을 ‘좋아요’와 ‘팔로’ 같은 사회적 인정을 맹렬히 좇는 불안하고 유아적인 존재로 전락시켰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SNS 앞에서 찌들고, 초라한 진짜 모습은 감춘다. 포토샵으로 꾸미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필터링된 자신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진정한 자아와 근본적으로 단절된다.
타인과 분리되면서 현대인은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다른 사람에게 언제든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뀌었다. ‘외로운 늑대’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빨리 반응한다. 고통받는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혹시 모를 위협이 나에게 닥치진 않을지 불안하게 주변을 응시하는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틈을 가장 먼저 파고든 것은 포퓰리즘 정치, 전체주의의 마수다. 포퓰리스트들은 문화적 차이, 전통 같은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이 속한 국가와 사회가 이민자나 다른 민족, 종교의 습격을 받는 처지인 양 묘사했다. 법치와 자유언론 등 합법적이고 관용적인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제도는 이상적 공동체를 위협하는 ‘악당’처럼 묘사됐다.
전체주의적 사고는 외로운 사람들, 더 큰 공동체에 소속되길 갈망하는 이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며 세를 넓혔다. 대규모 집회를 통해 참가자가 유대감을 느끼도록 했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전통적인 가족상의 복원을 미끼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깊이 뿌리내린 고립감은 돈벌이의 소재도 됐다. 인공지능(AI) 비서에게 애착을 느끼거나, 섹스로봇을 동반자나 친구로 여기는 사람마저 등장했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무생물, 가상의 대상에 친절이나 배려 같은 인간적 특징을 부여했다. 앱을 통해 우정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도 주문하는 시대가 됐다. 사람의 온기를 찾기 힘든 매장에 유행처럼 ‘타운’ ‘거리’ ‘광장’ ‘마켓’ 같은 푸근한 명칭이 붙었다.
책은 현대인에게 외로움이 심화하는 원인이 국가와 기업, 개인, 기술발전 등 다방면에 자리잡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실감나게 보여준다. 과거 마르크스주의가 천착했던 ‘소외’의 문제를 현대적이고 새로운 시선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다만 “우리가 덜 외롭고 서로 더 연결되고자 한다면 정치·경제·사회적 변화가 필요하고 개인도 날마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도덕 교과서와 같은 뻔한 해법을 제시한 건 아쉽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