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어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전격 물러섰다. 철회 이유로 야당과 정부의 반대를 이유로 들었다. 늦었지만 한 달 가까이 벌어졌던 논란이 일단락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후보와 여당이 밀어붙인 전 국민 재난지원금 논란은 여러모로 곱씹어 볼 대목이 많다. 우선 거대 여당이 막무가내로 선거용 예산을 강행하며 국정 전반을 훼손시켜도 이를 통제할 수단이 없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올해 초과세수 19조원을 이 후보의 공약 예산으로 쓰자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초과 세수의 용처를 바꾸자고 했다가 위법 논란에 부딪히자 일부 세목의 납부를 유예시켜 내년 초 집행하자는 꼼수까지 내놨다. 이 역시 위법 논란이 커서 기재부는 끝까지 예산 편성에 난색을 표하며 저항했다. 그러자 여당에서는 ‘국정조사’ ‘기재부 해체’ 등 험악한 말들을 쏟아내며 기재부를 몰아붙였다. 국민 70% 이상이 반대하는 여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여당 후보가 막무가내로 고집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문제는 단순히 예산 편성을 둘러싼 당정 간 힘겨루기 차원에서 볼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삼권분립이 보장돼 있고, 예산편성권은 정부(기재부)에 있다. 그런데도 입법부가 행정부에 대선용 예산 항목으로 짜라고 압박한 것이다. 이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7조2항), 정부의 예산편성권(57조) 등에 위배되고 국가재정법에도 분명히 어긋난다. 올해 이미 100조원 넘는 빚을 낸 나라살림인데 세수가 예상보다 좀 더 들어왔다고 공돈 취급하듯 일단 쓰고 보자는 행태도 납득하기 힘들다.

유감인 것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태도다. 청와대는 이런 편법·위법적 행태가 버젓이 벌어지는데도 “국회에서 논의할 일”이라며 수수방관했다. 이번 사안은 그간 검찰·법무부 갈등이나 측근 구속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행정부 수반이자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당연히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논란을 조기에 정리했어야 했다.

전 국민 지원금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대장동 개발 의혹에 대한 사정당국의 엄정 수사도 그렇고, 대선을 앞둔 중립내각 구성에 대한 요구도 많다. 대통령이 스스로 강조한 ‘정치 중립’ 의지를 이런 사안에 대한 결단으로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