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하반신 마비에 곧 죽는다니…" 아빠의 마지막 부탁 [김수현의 보험떠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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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해 발생 직후 사망 사례
보험금 중복 지급 불가 원칙
일시적 장해 아닐 경우에만, 장해·사망보험금 중복 지급
사망으로의 진행 단계 여부 중요
보험금 중복 지급 불가 원칙
일시적 장해 아닐 경우에만, 장해·사망보험금 중복 지급
사망으로의 진행 단계 여부 중요
40대 가장 김모씨에게 불행이 찾아온 건 한순 간이었습니다. 3년 전 일에 치여 두 아들에 소홀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김씨는 단풍 구경을 가자는 아내의 말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아이들에게 형형색색의 나뭇잎을 가까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평소에 하지 않던 등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산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내가 싼 김밥을 먹던 김씨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또다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에게 쓰겠노라고 다짐했죠.살면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일련의 사건으로 세상을 등지는 순간을 떠올려보기도 하죠. 그날을 마주할 때 가슴 한 켠에 먹먹한 감정이 자리하는 것은 세상에 남아있을 가족이란 존재 때문일 겁니다. 김씨가 온몸에 염증이 퍼지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남아있을 가족을 위해 사망보험금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행동이라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김씨의 다짐은 그날로 물거품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아이들을 챙기며 산에서 내려오던 김씨는 순간 발을 헛디뎠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기울면서 추락했습니다. 바로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수술 결과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게 됐습니다. 이후 김씨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30대를 온전히 바쳤던 회사를 그만두고, 휠체어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는 상황에 김씨는 매일 밤 괴로움에 몸부림쳤습니다. 그로부터 3년.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두 아들이 건강히 자라는 모습을 위안 삼으면서 소소한 행복을 얻기도 했다는 김씨는 이제 허탈한 마음만 남았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일주일 전 열이 나고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으로 병원에 실려 온 김씨가 패혈증 진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신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 예후가 좋지 않다는 의사의 말에 김씨는 남겨진 아이들과 아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합니다. 뒤이어 자신이 죽을 때 가족이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눈 앞을 가렸습니다. 지난 3년간 김씨가 A손해보험사의 상해보험으로 장해보험금을 받아온 만큼 사망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결국 김씨는 자신의 친누나에게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이 중복 지급될 수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3년간 장해보험금을 타온 김씨는 사망보험금 중복 지급 대상자가 될 수 있을까요. 결과부터 말하자면 가능합니다.현재 손해보험사의 상해보험에서는 직간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을지라도, 장해가 사망으로 가는 일시적 상태로 보기 어려운 상태라면 각각의 보험금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장해 정도가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도 질병 및 상해가 사망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이라 판단되면 장해보험금을 별도로 받을 수 없고 사망보험금만 지급됩니다. 식물인간 판정으로 사망의 진행 단계를 거치는 일시적 장해 상태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는 질병·상해 표준약관 장해분류표 총칙에 따른 장해의 정의에 따른 조치입니다. 장해는 상해, 질병에 대해 치유된 후 신체에 남아있는 영구적인 정신 및 육체의 훼손 상태, 기능상실 상태를 뜻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질병과 부상에 대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장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환자에게 나타난 질병 또는 상해가 장해로 판단될 수 있는지, 사망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의 중복 지급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정의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장해와 사망 간 관계를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장해의 정의에서 제시된 '영구적'이란 단어는 치유 시 장래 회복의 가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정신적, 육체적 훼손 상태라는 것이 의학적으로 명확히 증명된 경우죠. '치유된 후'란 단어는 치료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증상이 고정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뇌사 판정을 받고 호흡 기능과 심장 박동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서 인공심박동기 등 장치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는 뇌사 상태가 장해의 판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단, 뇌사 판정을 받지 않고 식물인간 상태인 경우는 각 신체 부위별 판정 기준에 따라 장해 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판례를 통해 증명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대법원 2008년 6월 26일 선고 2008다13968 판결에는 "보험약관에서 장해를 재해로 인한 상해 또는 질병에 대해 충분한 치료를 하였으나 완전히 회복하지 않고 증상이 고정돼 신체에 남아있는 영구적인 정신 또는 육체의 훼손 상태라고 규정하고 있는 경우, 사망으로의 진행단계에서 거치게 되는 일시적 장해 상태는 위와 같은 보험 약관상의 '장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사망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장해가 나타나는 경우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의 중복 지급 여부에 대해 의학적 판단에 따르고 있다. 국내 손해보험사에서는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례에서 장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의 중복 지급을 허용하고 있다"며 "단, 재해 안심보험을 비롯한 생명보험사 상품의 경우 약관 문구에 따라 추가적인 예외 사항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