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 마비 쥐가 걸었다…'춤추는 분자'의 기적
척수 마비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할 연구가 발표됐다. 새뮤얼 스터프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연구팀은 척수 손상으로 잘 걷지 못하는 쥐에게 젤 형태의 신경재생 물질을 주입해 4주 만에 걷게 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초분자 섬유’로 불리는 물질을 이용했다. 초분자 섬유는 단백질 구성성분들이 스스로 자가 조립을 해 만들어진 긴 사슬 형태의 고분자 물질이다. 연구진은 “세포를 둘러싼 세포외기질을 모방해 신경 재생을 자극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세포외기질은 세포의 주변 환경을 구성하는 지지체로, 세포의 성장을 돕는 여러 고분자 물질로 이뤄져 있다.

연구진은 뒷다리가 마비된 쥐 76마리를 두 그룹으로 나눠 절반에게는 초분자 섬유 치료제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위약(소금물)을 투약했다. 투약한 지 4주 후 치료제를 투약한 그룹의 쥐들은 뒷다리를 움직여 걷는 데 성공했지만, 위약을 투여받은 쥐는 걷지 못했다. 연구진은 쥐의 △발목 움직임 △신체 안정성 △발 위치 및 걸음 수 등을 기준으로 보행 능력을 테스트했다. 그 결과, 치료제 투약군은 세 배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연구진은 초분자 섬유가 척수 복구에 필요한 두 가지 신호를 발생시켰다고 분석했다. 하나는 축삭을 재생시키는 신호다. 축삭은 뉴런의 긴 꼬리에 해당하는 부위로 척수와 뇌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축삭이 손상되면 감각을 상실하거나 마비가 올 수 있고, 반대로 이 부위를 재생시키면 신체와 뇌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다.

또 하나는 줄어든 혈관의 재성장을 촉진하는 신호다. 혈관은 신경세포와 조직 복구에 필요한 영양분을 전달하는 ‘도로’ 역할을 한다. 혈관이 복구되면서 축삭을 둘러싼 미엘린 수초도 활발하게 재생됐다. 미엘린 수초는 축삭을 통한 신호전달이 빠르게 일어나도록 돕는다. 척수가 재생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신경세포의 흉터도 감소했다.

연구진은 초분자 섬유가 척수 재생에 큰 효과를 보인 것은 이들의 움직임 때문이라고 밝혔다. 체내에 들어간 초분자 섬유는 마치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데, 이런 움직임이 신경세포 표면의 수용체들과 결합할 확률을 높였던 것. 스터프 교수는 “신경세포의 수용체는 끊임없이 움직인다”며 “초분자 섬유가 함께 움직이며 수용체와 더 자주 결합하고, 결과적으로 재생과 관련된 신호전달을 증가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가 외상에 의한 척수 마비 환자뿐 아니라 뇌졸중, 루게릭병(ALS),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영향으로 움직임이 불편한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초분자 섬유는 체내에서 12주 이내에 생분해되기 때문에 안전성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터프 교수는 “아직까지 척수 재생에 효과가 있는 치료제는 없다”며 “척수 마비 환자들의 치료 옵션을 늘리기 위해 이른 시일 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시험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