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집권 10년] ③ '혹시 다를까' 기대 무색…제자리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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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고강도 도발에 南도 강경대응…'최후의 보루' 개성공단마저 문닫아
문재인 정부 연이은 남북·북미회담에 '훈풍'…하노이 노딜 이후 내리막
비핵화없인 남북관계 진전 한계 확인…北핵능력·여론악화 등 더 어려워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10년간 남북관계는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며 냉·온탕을 오갔다.
남측이 아무리 애를 써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 없이는 남북관계 진전에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국제감각을 갖춘 젊은 지도자라는 일각의 기대가 무색하게 집권 초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등 잇단 도발을 감행했고, 당시 보수정부였던 남측도 개성공단 폐쇄 등 강경 대응하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성사되는 유례없는 훈풍 속에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북핵 시설 및 제재 완화에 대한 이견으로 결렬되면서 다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정부는 종전선언을 '입구' 삼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관계 반전의 계기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약 1년 2개월 만인 2013년 2월에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당시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이 보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박 당시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한은 하루빨리 핵을 내려놓고 평화와 공동발전의 길로 나오길 바란다"고 촉구했지만, 북한은 핵 문제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거는 이상 아무 진전을 볼 수 없을 것이라며 맞섰다.
이후 남북은 상당 기간 갈등과 화해 분위기가 엇갈리는 긴장상태를 지속했다.
이산가족 상봉(2014년 2월·2015년 10월)과 이희호 여사 방북(2015년 8월)처럼 관계 개선의 기대감이 커질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북한 무인기 사건(2014년 3월),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 및 서부전선 포격 도발(2015년 8월), 각종 미사일 시험발사 등 크고 작은 악재들에 발이 묶였다.
그러다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 이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남측이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맞서면서 남북관계의 무게추는 대립으로 급격히 쏠렸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이번에는 반드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체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야 한다"(2016년 3월)고 강조했지만,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해 9월 5차 핵실험을 진행했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전략적 도발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나 북한 붕괴론에 기대 '비핵화를 통한 평화'를 강조한 박근혜 정부와 달리 '평화를 통한 비핵화' 기조를 바탕으로 북한과 끊임없이 대화의 기회를 모색했다.
북한은 2017년 11월 말 ICBM급 '화성-15형'을 쏘아 올린 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더니, 이듬해 1월 1일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갑자기 화해 모드로 나왔다.
한 해에만 세 차례(4·5·9월)의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과 평양에서 개최되고 그사이에 첫 북미정상회담(6월)까지 성사되면서 한반도에는 남북 화해의 봄기운이 완연했다.
하지만 2019년 2월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북미관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남북관계도 맞물려 위축됐다.
물론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비핵화 협상이 공전하자 인도적 협력이나 개별관광 등 대북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에서라도 북한과 협력하려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비본질적인 문제'라며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북한이 '근본문제'라며 요구한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같은 사안에 손을 댈 수도 없어 남북관계는 좀처럼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마지막 카드'로 종전선언을 제안했지만,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종전선언은 나쁘지 않다"(김여정 당 부부장 담화)면서도 적대정책 철회가 먼저라며 자신들의 탄도미사일 발사만 문제 삼는 '이중잣대' 철회 등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대북결의로 금지된 것으로, 이를 용인하라는 요구는 한미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이다.
문제는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10년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찾기 더 힘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김정은의 북한은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지난 10년의 경험을 통해 많이 사그라든 데다, 북한의 핵 능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커져 협상을 통한 비핵화가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감도 커지고 있다.
대북 여론도 북한의 일방적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의 여파로 크게 악화해 새 정부가 움직일 공간이 넉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연이은 남북·북미회담에 '훈풍'…하노이 노딜 이후 내리막
비핵화없인 남북관계 진전 한계 확인…北핵능력·여론악화 등 더 어려워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10년간 남북관계는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며 냉·온탕을 오갔다.
남측이 아무리 애를 써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 없이는 남북관계 진전에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국제감각을 갖춘 젊은 지도자라는 일각의 기대가 무색하게 집권 초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등 잇단 도발을 감행했고, 당시 보수정부였던 남측도 개성공단 폐쇄 등 강경 대응하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성사되는 유례없는 훈풍 속에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북핵 시설 및 제재 완화에 대한 이견으로 결렬되면서 다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정부는 종전선언을 '입구' 삼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관계 반전의 계기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약 1년 2개월 만인 2013년 2월에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당시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이 보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박 당시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한은 하루빨리 핵을 내려놓고 평화와 공동발전의 길로 나오길 바란다"고 촉구했지만, 북한은 핵 문제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거는 이상 아무 진전을 볼 수 없을 것이라며 맞섰다.
이후 남북은 상당 기간 갈등과 화해 분위기가 엇갈리는 긴장상태를 지속했다.
이산가족 상봉(2014년 2월·2015년 10월)과 이희호 여사 방북(2015년 8월)처럼 관계 개선의 기대감이 커질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북한 무인기 사건(2014년 3월),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 및 서부전선 포격 도발(2015년 8월), 각종 미사일 시험발사 등 크고 작은 악재들에 발이 묶였다.
그러다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 이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남측이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맞서면서 남북관계의 무게추는 대립으로 급격히 쏠렸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이번에는 반드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체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야 한다"(2016년 3월)고 강조했지만,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해 9월 5차 핵실험을 진행했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전략적 도발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나 북한 붕괴론에 기대 '비핵화를 통한 평화'를 강조한 박근혜 정부와 달리 '평화를 통한 비핵화' 기조를 바탕으로 북한과 끊임없이 대화의 기회를 모색했다.
북한은 2017년 11월 말 ICBM급 '화성-15형'을 쏘아 올린 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더니, 이듬해 1월 1일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갑자기 화해 모드로 나왔다.
한 해에만 세 차례(4·5·9월)의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과 평양에서 개최되고 그사이에 첫 북미정상회담(6월)까지 성사되면서 한반도에는 남북 화해의 봄기운이 완연했다.
하지만 2019년 2월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북미관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남북관계도 맞물려 위축됐다.
물론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비핵화 협상이 공전하자 인도적 협력이나 개별관광 등 대북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에서라도 북한과 협력하려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비본질적인 문제'라며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북한이 '근본문제'라며 요구한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같은 사안에 손을 댈 수도 없어 남북관계는 좀처럼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마지막 카드'로 종전선언을 제안했지만,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종전선언은 나쁘지 않다"(김여정 당 부부장 담화)면서도 적대정책 철회가 먼저라며 자신들의 탄도미사일 발사만 문제 삼는 '이중잣대' 철회 등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대북결의로 금지된 것으로, 이를 용인하라는 요구는 한미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이다.
문제는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10년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찾기 더 힘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김정은의 북한은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지난 10년의 경험을 통해 많이 사그라든 데다, 북한의 핵 능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커져 협상을 통한 비핵화가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감도 커지고 있다.
대북 여론도 북한의 일방적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의 여파로 크게 악화해 새 정부가 움직일 공간이 넉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