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사망] '실과 바늘' 노태우 별세 28일 만에 세상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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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동기로 만나 줄곧 '최고통치자-2인자' 관계…'5공 청산' 계기 앙금
2014년 8월 전두환이 병상에 누운 노태우 찾아가 마지막 '만남'
전씨,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당시 빈소는 찾지 못하고 '침묵속 눈물'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지 불과 28일 만이다.
60여년에 걸쳐 평생 떼려야 뗄 수 없는 길고도 질긴 인연을 맺었던 두 전직 대통령이 불과 한 달이 채 안 되는 간격으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노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들은 전 전 대통령은 침묵 속에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건강 문제로 빈소를 찾아 조문하지 못했고, 부인 이순자 여사가 대신 조문했었다. 두 사람은 동료로 출발했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전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아 최고통치자가 됐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전씨는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 후계자'로 지명해 권력의 바통을 넘겨줬다.
그가 지나간 길을 노 전 대통령이 뒤따랐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고교 때부터 시작된다.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대구에 정착해 같은 해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한 살 어린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생으로 다시 만난다.
생도 시절 전씨는 축구부에서, 노 전 대통령은 럭비부에서 활동했다.
전씨는 노 전 대통령이 1959년 김옥숙 여사와 결혼할 때 사회를 봐줄 정도로 노 전 대통령과 돈독한 사이였다.
전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을 지냈고, 이 자리를 노 전 대통령이 이어받았다.
전 전 대통령이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으로 12·12 쿠데타를 주도해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했다.
전씨는 취임 후 노 전 대통령에게 군을 떠나 전두환 정권에 합류할 것을 권고했고,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따랐다.
이후 전씨는 노 전 대통령을 무한 신임하며 그를 13대 대통령으로 사실상 이끌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면서 돈독하던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씨 측이 백담사를 택했다.
전씨는 백담사로 떠나기 전날인 1988년 11월 22일 밤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로 백담사 은둔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전임자의 신변을 안전하게 해주지 못해 부끄럽다.
잠시 고생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면 조속한 시일 내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상으로 회복하겠다"고 달랬다고 한다. 두 사람은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5년 11월 16일과 같은 해 12월 3일 나란히 구속돼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당시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트린 것으로 전해졌다.
또 "나는 땜쟁이(대구공고) 출신이고 노씨는 명문고(경북고) 출신인데도 나보다 뒤처졌던 현실에 대해 불만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노씨 및 부인 김옥숙씨가 대통령과 영부인이 된 뒤 사람이 확 달라져 버린 것을 보고 친구나 동기에게 후임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그들(5공 측 인사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독재자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었다.
그런 인식 차이로 인해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14년 8월13일이었다.
전씨는 갑자기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해 김옥숙 여사에게 "노 전 대통령을 좀 만나러 왔다"고 했다.
전씨는 병상에 누워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라고 했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 전 대통령은 김 여사가 "알아보시면 눈을 깜빡여보시라"고 하자 눈을 깜빡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2014년 8월 전두환이 병상에 누운 노태우 찾아가 마지막 '만남'
전씨,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당시 빈소는 찾지 못하고 '침묵속 눈물'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지 불과 28일 만이다.
60여년에 걸쳐 평생 떼려야 뗄 수 없는 길고도 질긴 인연을 맺었던 두 전직 대통령이 불과 한 달이 채 안 되는 간격으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노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들은 전 전 대통령은 침묵 속에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건강 문제로 빈소를 찾아 조문하지 못했고, 부인 이순자 여사가 대신 조문했었다. 두 사람은 동료로 출발했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전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아 최고통치자가 됐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전씨는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 후계자'로 지명해 권력의 바통을 넘겨줬다.
그가 지나간 길을 노 전 대통령이 뒤따랐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고교 때부터 시작된다.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대구에 정착해 같은 해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한 살 어린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생으로 다시 만난다.
생도 시절 전씨는 축구부에서, 노 전 대통령은 럭비부에서 활동했다.
전씨는 노 전 대통령이 1959년 김옥숙 여사와 결혼할 때 사회를 봐줄 정도로 노 전 대통령과 돈독한 사이였다.
전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을 지냈고, 이 자리를 노 전 대통령이 이어받았다.
전 전 대통령이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으로 12·12 쿠데타를 주도해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했다.
전씨는 취임 후 노 전 대통령에게 군을 떠나 전두환 정권에 합류할 것을 권고했고,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따랐다.
이후 전씨는 노 전 대통령을 무한 신임하며 그를 13대 대통령으로 사실상 이끌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면서 돈독하던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씨 측이 백담사를 택했다.
전씨는 백담사로 떠나기 전날인 1988년 11월 22일 밤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로 백담사 은둔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전임자의 신변을 안전하게 해주지 못해 부끄럽다.
잠시 고생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면 조속한 시일 내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상으로 회복하겠다"고 달랬다고 한다. 두 사람은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5년 11월 16일과 같은 해 12월 3일 나란히 구속돼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당시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트린 것으로 전해졌다.
또 "나는 땜쟁이(대구공고) 출신이고 노씨는 명문고(경북고) 출신인데도 나보다 뒤처졌던 현실에 대해 불만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노씨 및 부인 김옥숙씨가 대통령과 영부인이 된 뒤 사람이 확 달라져 버린 것을 보고 친구나 동기에게 후임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그들(5공 측 인사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독재자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었다.
그런 인식 차이로 인해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14년 8월13일이었다.
전씨는 갑자기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해 김옥숙 여사에게 "노 전 대통령을 좀 만나러 왔다"고 했다.
전씨는 병상에 누워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라고 했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 전 대통령은 김 여사가 "알아보시면 눈을 깜빡여보시라"고 하자 눈을 깜빡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