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형 프랜차이즈 후라이드 치킨. /한경DB
국내 한 대형 프랜차이즈 후라이드 치킨. /한경DB
"한국의 육계·치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맛이 없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최근 연달아 "한국 치킨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닭으로 튀겨지고 있어 맛없고 비싸다"고 말해 파장이 일었다. 그러나 관련 업계는 황 씨의 언급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23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한 해(2019년 기준)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15.76㎏. 마리로 치면 10마리에 달한다. 13㎏ 안팎인 소고기를 뛰어넘는다. 치킨은 배달음식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1인1닭' '치느님'(치킨+하느님) 등의 용어가 쓰이는데 과연 황 씨의 말처럼 전 세계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KFC·파파이스도 소형 닭 사용

황 씨는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국 육계가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작고 그래서 맛이 없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가 말해도 김정은이 말해도 객관적 사실"이라며 국산 닭이 맛 없다고 되풀이 강조했다.

앞서 그는 이달 8일에도 글을 올려 "치킨으로 요리되는 닭은 육계다. 이 육계는 전 세계가 그 품종이 동일하다"며 "전 세계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1.5kg 소형으로 키운다. 외국은 3kg 내외로 키운다"고 했다.

정부 기관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황 씨는 "3kg 내외 닭이 1.5kg 닭에 비해 맛있고 고기 무게당 싸다는 것은 한국 정부기관인 농촌진흥청이 확인해주고 있다"면서 "한국 외 전 세계의 나라에서 3kg 내외의 닭으로 치킨을 잘도 튀겨서 먹고 있다"고 덧붙였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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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씨의 주장처럼 소형 육계는 국내에서만 이용하고 있을까.

업계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일례로 미국 유명 프랜차이즈 KFC와 파파이스는 약 1.5~2kg 내외 육계를 사용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치킨이나 통닭용으로 쓰이는 닭은 체중이 1.2∼1.5kg 나가는 것들임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없다.

이 닭을 도축하고 가공(피와 털, 머리 등 제거, 세척, 절단 등의 작업) 단계를 거치면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가 주로 쓰는 10호(1㎏ 내외) 닭이 된다. 미국에서도 '통닭 한 마리'를 온전히 제공하는 메뉴에 대해선 큰 닭보단 '작은 닭'을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한 대형 프랜차이즈 업계 임원은 "크기가 큰 닭은 식감이 쫄깃하지만 질기다는 인식도 있다"며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하는 10~30대들이 주로 선호하는 치킨이나 통닭 메뉴는 소형 육계를 요리해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kg짜리 대형 육계를 주로 이용하는 곳은 닭가슴살이나 닭봉과 같은 '부분육' 시장이나 소시지나 통조림 등의 '가공육' 업체다. 대형 닭을 생산하면 가슴살 등 부분육 생산량이 많아져 병아리 도입 비용이 낮아지면서 경영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어서다. 국내에서도 최근 닭고기 가슴살이 다이어트 식품으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부분육 업계를 중심으로 대형 닭 생산 요구도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 닭은 작고 맛없다'가 정부 입장이라고?

황 씨는 "3kg 내외의 닭이 1.5kg 닭에 비해 맛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농촌진흥청이 발간한 농업경영관리 길잡이 '육계경영관리' 책자라고 했다. 황 씨에 따르면 이 책에선 "감칠맛 나는 핵산물질 이노신산 함량이 일반 닭에 비해 대형 닭이 많다. 이외에도 쫄깃함을 느끼게 하는 전단력, 소비자가 좋아하는 황색소 등이 일반 닭에 비해 대형 닭이 많다"고 소개했다.

이를 근거로 황 씨는 "'한국 닭은 작고 맛없다' 이것은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다만 이 책자가 나온 당시 농촌진흥청은 미국·브라질산 다리, 날개 등 부분육 수입이 늘자 국내에서 직접 가슴육 등 부분육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대형 닭 공급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책의 일부 내용은 대형 육계 생산을 독려하기 위한 일종의 캠페인인 셈이다.

반례도 있다. 앞서 농촌진흥청은 닭 크기와 맛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2012년 농촌진흥청 산하기관인 국립축산과학원이 펴낸 '사육일력이 육계의 가슴 및 다리살의 아미노산·지방산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황 씨 주장과 합치되는 결과도 있지만 배치되는 내용 역시 있다.

이 논문은 "식육에서 아미노산은 육제품의 향미를 좋게 하고, 육 표면을 보기 좋은 갈색으로 변화시키는 역할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기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아미노산뿐 아니라 핵산물질, 유기산, 당, 젓산 등도 관여하게 된다"며 "(가슴육의 경우) 필수 아미노산으로 분류되는 메티오닌은 사육 일령이 늘수록 높은 함량을 나타내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류신은 사육 일령이 경과할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냈다"고 썼다.

다리살의 경우 맛과 관련이 있는 글루탐산은 도리어 사육 기간이 길어질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종합적으로 보면 황 씨의 주장이 정부기관의 여러 연구 결과 중 자신의 주장에 부합하는 일부 사례를 취사선택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조리법 따라 적절한 크기 선택하면 돼"

실험실에서 증명한 논문의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느끼는 치킨의 맛은 "요리법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짚었다. 한국육계협회 관계자는 "부분육으로 쓰이는 대형 육계를 많이 생산하면 수출량이 늘어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서도 "육계 크기에 따른 맛의 차이는 워낙 개인차가 커 단정지어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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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건국대 식품유통경제학과 겸임교수도 "실제 미국 등 외국에서도 큰 닭은 부드럽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면서 "실험실에서 생닭을 먹는 것도 아닌데 닭고기 성분에 따른 맛 차이가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겠나. 조리법에 따라 적절한 크기의 닭을 선택하는 게 적당하다"고 말했다.

황 씨가 주장한 "양념치킨은 '양념 맛'일 뿐"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전문적 지식을 지닌 이들도 맛만 보고 치킨 사이즈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양념을 한 치킨이 인기를 얻었다면 그게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았던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다만 국내 치킨 시장에서 황 씨가 언급한 양념 통닭보다는 양념 없이 굽고 튀기는 식의 후라이드 치킨의 판매 비중이 높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의 경우 후라이드 치킨 수요가 70%를 넘는다.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들도 비슷한 판매 비중을 보인다고 업계는 전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