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사망] 33년 전 인제 백담사 칩거 떠나던 그 날과 겹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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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23일 대국민 발표…백담사서 2년 1개월간 은거
전씨 보존 물품, 호화오찬 등 국민 공분에 2019년 12월 철거 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씨가 사망한 23일은 33년 전 전씨 내외가 서울 연희동 자택을 떠나 인제 백담사에서 칩거에 들어간 날이기도 해 묘한 관계라는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전 전 대통령 내외가 친구인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이른바 '5공 청산' 과정에서 등 떠밀리듯 백담사 귀양살이에 나선 것은 1988년 11월 23일이다.
당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연희동 자택을 떠나 은둔 길에 올랐던 전씨 내외는 그날 오후 2시 30분 백담사에 도착했다.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이 정식으로 출가해 민족혼이 깃든 고찰인 백담사는 전씨 내외의 은둔지로 알려지면서 한동안 유명세를 치렀다.
당시 전씨 내외가 백담사에 처음 도착한 모습을 지켜봤던 한 주민은 "연희동을 떠나 숨 가쁘게 달려온 베이지색 그랜저 승용차가 전씨 내외를 절 앞 냇가의 빈터에 내려놓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일주문에 들어섰다"고 회상했다.
전씨 내외가 건넜던 10여m 길이의 외나무다리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화강암을 이용해 길이 80m, 폭 3m의 '수심교'가 건설됐다.
'마음을 닦는다'는 뜻의 수심교는 전씨가 작명한 것으로, 전씨는 화선지에 다리 이름을 써 교각 머리에 새겨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전씨 내외의 백담사 은둔 생활은 1990년 12월 30일 연희동 자택으로 복귀할 때까지 2년 1개월간 이어졌다.
백담사 입구인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약 7㎞, 왕복 14㎞ 거리다.
전 씨 내외는 이 짧은 거리를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정확하게 7백69일간 귀향 생활을 한 셈이다. 특히 전씨는 백담사 은거 기간 중인 1990년 11월 4일 23명이 사망한 인제 군축교 버스 추락사고를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백담사에서의 전 씨 내외 흔적과 인연은 2019년 12월 지워졌다.
이른바 2019년 전씨의 골프장 나들이에 이어 '12·12 호화 오찬'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자 인제 백담사가 30여 년간 보존해온 전씨의 물건 등을 철거한 것이다.
백담사 화엄실에는 전씨 내외가 쓴 물건들이 30년간 보존되다가 철거됐다.
보존됐던 물품은 의류, 목욕용품, 거울, 이불. 화장대, 촛대, 세숫대야 등이다.
지병을 앓아 오던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한편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 동창으로서 학창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으며, 1979년 12·12 사태로 정권을 잡은 뒤 차례로 대통령까지 지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이른바 '5공 청산'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서 귀양살이하게 되면서 둘 사이가 벌어졌다.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 때에는 양측 모두 내란죄 등의 혐의로 나란히 감옥 생활을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전씨 보존 물품, 호화오찬 등 국민 공분에 2019년 12월 철거 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씨가 사망한 23일은 33년 전 전씨 내외가 서울 연희동 자택을 떠나 인제 백담사에서 칩거에 들어간 날이기도 해 묘한 관계라는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전 전 대통령 내외가 친구인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이른바 '5공 청산' 과정에서 등 떠밀리듯 백담사 귀양살이에 나선 것은 1988년 11월 23일이다.
당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연희동 자택을 떠나 은둔 길에 올랐던 전씨 내외는 그날 오후 2시 30분 백담사에 도착했다.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이 정식으로 출가해 민족혼이 깃든 고찰인 백담사는 전씨 내외의 은둔지로 알려지면서 한동안 유명세를 치렀다.
당시 전씨 내외가 백담사에 처음 도착한 모습을 지켜봤던 한 주민은 "연희동을 떠나 숨 가쁘게 달려온 베이지색 그랜저 승용차가 전씨 내외를 절 앞 냇가의 빈터에 내려놓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일주문에 들어섰다"고 회상했다.
전씨 내외가 건넜던 10여m 길이의 외나무다리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화강암을 이용해 길이 80m, 폭 3m의 '수심교'가 건설됐다.
'마음을 닦는다'는 뜻의 수심교는 전씨가 작명한 것으로, 전씨는 화선지에 다리 이름을 써 교각 머리에 새겨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전씨 내외의 백담사 은둔 생활은 1990년 12월 30일 연희동 자택으로 복귀할 때까지 2년 1개월간 이어졌다.
백담사 입구인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약 7㎞, 왕복 14㎞ 거리다.
전 씨 내외는 이 짧은 거리를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정확하게 7백69일간 귀향 생활을 한 셈이다. 특히 전씨는 백담사 은거 기간 중인 1990년 11월 4일 23명이 사망한 인제 군축교 버스 추락사고를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백담사에서의 전 씨 내외 흔적과 인연은 2019년 12월 지워졌다.
이른바 2019년 전씨의 골프장 나들이에 이어 '12·12 호화 오찬'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자 인제 백담사가 30여 년간 보존해온 전씨의 물건 등을 철거한 것이다.
백담사 화엄실에는 전씨 내외가 쓴 물건들이 30년간 보존되다가 철거됐다.
보존됐던 물품은 의류, 목욕용품, 거울, 이불. 화장대, 촛대, 세숫대야 등이다.
지병을 앓아 오던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한편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 동창으로서 학창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으며, 1979년 12·12 사태로 정권을 잡은 뒤 차례로 대통령까지 지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이른바 '5공 청산'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서 귀양살이하게 되면서 둘 사이가 벌어졌다.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 때에는 양측 모두 내란죄 등의 혐의로 나란히 감옥 생활을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