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가입 추진을 또 머뭇거리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이제 시간이 없다. (CPTPP 가입) 결정을 11월 초에는 해야 한다. 결정이 막바지에 와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CPTPP는 현안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정부 안팎에선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CPTPP 가입이 물 건너갔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CPTPP 가입은 결국 강도 높은 대외 개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의장국인 일본은 한국의 가입 조건으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제한을 풀라고 요구할 게 뻔하다. 농어민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여당 일각에선 “선거를 앞두고 CPTPP 가입 추진은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정권 말 농어민 민심 이반을 감수하면서까지 CPTPP 가입을 추진할 동력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CPTPP 가입 신청은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정부 내 통상 담당자들이 “더 이상 가입 신청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하는 데는 중국과 대만의 가입 신청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우선 대만이 CPTPP에 가입해 공급망 동맹을 구성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것은 그야말로 악몽이다.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어서다. 중국이 가입을 신청한 것도 한국엔 기회다. 중국의 최종 가입 여부를 떠나 일본 중심 체제를 뒤흔들 가능성이 커서다. 이 틈을 이용하면 한국은 뒤늦은 가입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이 추후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만약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면 중국을 제외한 CPTPP 참여를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가입 신청만큼은 지금 해둬야 한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내년 1월 중국, 대만과 함께 협상 테이블에 동참하지 못하면 향후 한국이 치러야 할 가입비용은 훨씬 더 높아지게 된다.

노무현 정부가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수출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낙농업계가 망한다고 했지만 한우 소비량은 오히려 늘었다. 한·미 FTA의 성공 요인에 대해 당시 협상 참가자는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은 이미 대선판에 가 있는 정치인들이 한·미 FTA 협상의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