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바나나가 달콤해질수록…산림은 죽어간다
오늘날 바나나는 가장 흔한 과일 가운데 하나다. 슈퍼마켓에 가면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든 살 수 있고, 편의점에도 있다. 껍질을 벗기기 쉽고 씨가 없으며 손을 더럽히지 않고 먹을 수 있으니 편리하고 고마운 ‘국민 과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바나나가 재배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어디서 자라고 오는지도 잘 모른다. 《달콤한 바나나의 씁쓸한 현실》은 일본의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하는 실무자와 연구자들이 필리핀에서 생산된 바나나가 일본으로 수출돼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쓴 책이다. 저자들은 거대 자본을 가진 다국적 기업에 의해 생산·수출되는 바나나를 통해 필리핀 생산자들의 열악한 상황과 환경 파괴의 현실을 지적한다. 일본과 동일한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과 원재료를 많이 수입하는 한국 소비자들도 곱씹어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필리핀에서 수출하는 바나나의 98%는 남부의 민다나오 섬에서 생산된다. 민다나오는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 섬에 이어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데, 태풍의 영역 밖에 있어 피해를 입지 않는다. 바나나는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큰 것은 5m까지 자란다. 키가 커서 나무라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다년생 풀이다. 나무 줄기처럼 보이는 것은 엽초가 겹친 헛줄기인데 연해서 강한 바람에 쉽게 꺾인다. 민다나오 섬이 바나나 대량 생산에 적합한 이유다.

수출용 바나나는 캐번디시라는 품종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먹던 바나나와 다르다. 필리핀 사람들은 과육뿐만 아니라 잎과 껍질까지 식용 가능한 라카탄 품종을 즐겨 먹는다. 헛줄기에서 섬유를 추출하면 필리핀 남성 정장인 바롱 타갈로그의 재료가 된다.

바나나는 생산 고도가 높아지면 가격이 더 비싸진다. 고지에서 재배할수록 당도가 높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수출용 바나나는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낮은 해안지대에서 재배했다. 한국과 일본의 소비자들이 더 달콤한 바나나를 찾을수록 바나나 재배지는 더 깊은 산속으로 확대된다. 저자들은 대규모 농약을 살포하는 바나나 농장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생생히 꼬집는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