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패키징기판 관련주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패키징기판 쇼티지(공급 부족)로 주요 제품의 가격이 연일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패키징기판 업체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데 이어 내년과 내후년까지 실적이 좋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패키징기판 업황이 슈퍼 사이클에 올라탔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까지 공급난 계속”

26일 패키징기판 대장주인 심텍은 4만7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 달 새 34.71% 상승했다. 올 들어 상승률은 78.34%에 달한다. 올해 패키징기판 관련주인 코리아써키트(54.03%), 대덕전자(71.83%), 해성디에스(96.52%) 모두 강세를 보였다.

패키징기판은 반도체와 메인보드 사이에 전기 신호를 연결하는 부품이다. 그간 패키징기판 관련주는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반도체 업체들의 가격 압박으로 마진율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증설 투자가 적었고 소수의 업체만 살아남아 공급을 전담했다.

최근 살아남은 업체들에 기회가 찾아왔다. 서버·인공지능(AI)·5세대(5G) 통신장비용 패키징기판 수요가 급증하면서 쇼티지가 발생했다. 서버용 패키징기판은 다른 기판보다 크고 구조가 복잡해 기존 라인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물량에 한계가 있다. 제품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고객사들이 앞다퉈 주문을 늘렸고, 이 과정에서 값이 올랐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기업들이 기판 업체를 찾아가 웃돈을 주면서까지 제품을 공급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박형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 비메모리 반도체 제품군의 판매가 인상을 시작으로 올 들어선 모든 제품군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반도체 고객사가 패키징기판 업체에 장기공급 계약을 요청하고 심지어 공장 증설 투자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공장 증설에 1년이 걸리고 가동 시작 후 생산성 개선에 6개월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생산량 증가는 2023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판매가 인상과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적 전망치 줄줄이 상향

패키징기판 업체의 실적 전망치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심텍의 내년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2069억원이다. 올해 영업이익보다 37.5% 늘 것으로 전망된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추정치 상향 정도다. 1개월 전 추정치(1678억원)보다 23.3% 늘었고, 6개월 전(1342억원)에 비해선 54.2% 급증했다.

영업이익률도 높아지는 추세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심텍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7.5%에서 올해 11.2%로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내년에는 13.1%, 2023년에는 13.4%를 기록할 전망이다. 고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영업이익률 피크아웃(정점 통과) 구간에서 사이클이 종료되고 주가도 꺾였다”며 “시장에서는 최소한 2023년까지 패키징기판 업체들의 이익 개선을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주가가 많이 올랐지만 실적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높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심텍의 내년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7.6배에 불과하다. 코리아써키트 6.8배, 대덕전자 10.2배, 해성디에스 9.4배로 모두 낮다. 박 연구원은 “국내 업체들은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역량을 강화하면서 글로벌 톱티어 업체와 포트폴리오가 비슷해졌다”며 “내년 성장 가시성이 명확해지는 만큼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