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금융심화과정2'가 필요한 지금
금융연관비율이라는 것이 있다. 실물자산에 대한 금융자산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인데, 국민총소득(GNI) 대비 금융자산 규모로 측정한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금융자산이 많이 축적된 것이고 금융이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금융심화’라는 멋진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필자가 공무원을 시작한 199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의 금융연관비율은 4~5 수준이었다. 당시 미국이 8, 일본은 10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금융자산 축적은 미미했고 금융시스템은 낙후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런 만큼 금융 발전에 대한 사명감으로 일했고 그 덕분인지 2010년에는 이 비율이 8.5, 작년에는 10을 넘었다. 그야말로 우리 금융도 꽤 심화한 것이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특혜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돈이 풍부해졌다. 얼마 전까지 현관문에 붙은 대출안내 팸플릿을 떼며 격세지감을 느끼곤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금융산업이 발전했다고만 보기에는 어딘지 불안하다. 가계를 중심으로 부채가 너무 늘어났다. 가계부채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어버린 것이다. 기업부채도 만만치 않게 증가했고, 증가 속도도 빠르다고 한다.

금융자산이 늘어났다고 좋아했더니 저축보다는 부채를 통해 증가한 셈이다. 부채의 크기만큼 취약점도 커진 것이다. 정부를 떠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동안 무엇을 위해 일을 했던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혹시 지금까지 우리 금융정책의 중심이 부채를 조달하기 쉬운 시스템을 조성하는 데 너무 치중된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부채는 자금이 부족한 사람에게 성공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나친 부채는 버블을 초래해 국가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지난 금융위기의 교훈이기도 하다. 적절한 관리와 심화한 금융에 맞는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이제 금융 여건이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았다. 어려운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맞춤형 생활금융을 원하는 MZ세대의 갈증부터 고령화에 따른 안정적 자산 증식 목소리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예대 위주의 전통 금융으로는 이런 문제를 모두 풀 수 없다. 은행 증권 보험이라는 업권의 경계를 넘어, 개인의 삶에 녹아들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는 금융이 요구되는 이유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유니버설뱅킹 지원 계획이나 곧 시행될 금융 마이데이터는 이런 금융의 진화 과정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원활한 정보 흐름은 기존 금융을 이용자 중심의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로 변화시키며 우리 금융생활에 가치를 더할 것이다. 부채의 크기를 마냥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산을 건전하게 키워주는 환경으로 바뀌는 것이다. 기존의 금융심화를 넘은 ‘금융심화과정 Ⅱ’가 불러올 변화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