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 초석' 1세대 엔지니어들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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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T모티브, 도미기사 초청 행사
첫 국산 M16소총 생산 주역
첫 국산 M16소총 생산 주역
K2 소총 등 화기를 제조하는 SNT모티브가 29일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초석을 놓은 1세대 엔지니어인 ‘도미(渡美) 기사’를 초청해 회사를 소개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영웅들의 귀환’ 행사를 열었다.
도미 기사는 처음으로 국산 소총 M16을 제작한 이들이다. 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과 국방부는 ‘우리 손으로 우리 무기를 만들자’는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조병창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후 1971년 국내 주요 언론을 통해 ‘M16 소총 제조공장 도미 훈련 기사 모집’을 공고했다. 공대 기계과 졸업, 군필자, 기계 관련 분야 경력 5년, 미국인 기술자와 30분 이상 영어로 대화 가능 등 엄격한 자격요건을 내걸었지만 전국에서 1800여 명의 공학도가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 27명이 도미 기사로 선정됐다. 이들은 미국 총기 제작사 콜트에서 기술연수를 받고 조병창에서 M16 소총 생산을 비롯해 국산 K시리즈 화기를 개발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국방부 조병창으로 출발한 SNT모티브의 초청으로 한자리에 모인 도미 기사 10명과 가족 6명은 방산공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기념촬영, 핸드프린팅 등을 했다. 또 공장을 돌아보며 소총 생산 초기 공장 설립 및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소장하고 있는 당시 사진과 노트, 서적 등을 회사에 기증했고 SNT모티브는 소장품을 사내 ‘명예의 전당’에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도미 기사 대표로 참석한 강흥림 씨(83)는 “국산 무기가 전무했던 1970년대 초반 돈도 기술도 없던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기술을 배워 올 수밖에 없었다”며 “그 기술이 모태가 된 국방부 조병창은 유사 이래 첫 국산 소총을 생산하며 자주국방의 전진기지가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SNT모티브도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개인화기 제조 강국이 되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박문선 SNT모티브 특수사업본부장은 “회사가 소총, 권총, 기관총, 저격용 소총 등 소구경 화기 전 분야를 망라하는 제조업체가 된 근간에는 조병창 시절 도미 기사들의 땀과 노력으로 쌓은 숭고한 기술이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김해연 기자 haykim@hankyung.com
도미 기사는 처음으로 국산 소총 M16을 제작한 이들이다. 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과 국방부는 ‘우리 손으로 우리 무기를 만들자’는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조병창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후 1971년 국내 주요 언론을 통해 ‘M16 소총 제조공장 도미 훈련 기사 모집’을 공고했다. 공대 기계과 졸업, 군필자, 기계 관련 분야 경력 5년, 미국인 기술자와 30분 이상 영어로 대화 가능 등 엄격한 자격요건을 내걸었지만 전국에서 1800여 명의 공학도가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 27명이 도미 기사로 선정됐다. 이들은 미국 총기 제작사 콜트에서 기술연수를 받고 조병창에서 M16 소총 생산을 비롯해 국산 K시리즈 화기를 개발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국방부 조병창으로 출발한 SNT모티브의 초청으로 한자리에 모인 도미 기사 10명과 가족 6명은 방산공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기념촬영, 핸드프린팅 등을 했다. 또 공장을 돌아보며 소총 생산 초기 공장 설립 및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소장하고 있는 당시 사진과 노트, 서적 등을 회사에 기증했고 SNT모티브는 소장품을 사내 ‘명예의 전당’에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도미 기사 대표로 참석한 강흥림 씨(83)는 “국산 무기가 전무했던 1970년대 초반 돈도 기술도 없던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기술을 배워 올 수밖에 없었다”며 “그 기술이 모태가 된 국방부 조병창은 유사 이래 첫 국산 소총을 생산하며 자주국방의 전진기지가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SNT모티브도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개인화기 제조 강국이 되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박문선 SNT모티브 특수사업본부장은 “회사가 소총, 권총, 기관총, 저격용 소총 등 소구경 화기 전 분야를 망라하는 제조업체가 된 근간에는 조병창 시절 도미 기사들의 땀과 노력으로 쌓은 숭고한 기술이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김해연 기자 ha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