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박정민 "종교는 없지만 신은 있다고 믿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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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지옥' 배영재 역 배우 박정민
'지옥' 속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
박정민 "'지옥' 이렇게 좋은 선물 될 거라 예상 못해"
'지옥' 속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
박정민 "'지옥' 이렇게 좋은 선물 될 거라 예상 못해"
* 인터뷰 내용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로 꼽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은 서울 한복판에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지옥행 시연이 일어난 후 벌어지는 혼란을 담은 드라마다. 정의로운 변호사, 혼란을 이용하는 신흥 종교단체 등 극적인 캐릭터 속에서 박정민은 가장 현실적인 인물 방송국 PD 배재영 역을 맡았다.
연출자인 연상호 감독이 그린 동명의 원작 웹툰 추천사를 쓰기도 했던 박정민은 영화 '파수꾼', '동주', '변산', '사바하', '그것만이 내 세상' 등 출연 작품마다 독창적으로 캐릭터를 해석하고 작품에 녹여내 호평받았던 배우다. '지옥'에서는 새진리회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그들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는 배영재를 연기하면서 지옥 시연이 자신의 가족의 일이 됐을 때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몰입도를 끌어 올린다.
"'지옥'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저는 폭발적인 반응을 느끼고 있지 않다"면서 담담하게 출연 소감을 전하던 박정민은 "제가 등장하지 않았던 1, 2, 3회의 워낙 팬이었다"면서 원작 웹툰에 팬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기회가 된다면 '화살촉'을 연기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영화 '사바하'에 이어 '지옥'까지 또다시 종교를 메인으로 내세운 작품에 출연한 박정민이지만 "종교는 없지만, 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지옥'이 종교적인 작품이라 생각하고 출연을 결심한 건 아니다"고 분명히 밝혔다. '지옥'이 일주일 넘게 넷플릭스 전 세계 TV부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세계 1위라고 해서 기분은 좋은데, 체감이 되진 않는다. 폭발적인 반응이 주변에서 있는 게 아니라(웃음) 뭔가 느낌이 오진 않는다. 그래도 전 세계 분들이 많이 봐주시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신 걸 보면서 '지옥'이라는 작품이 전하는 방향성, 반응이 나오는 거 같아 기분은 좋다.
인기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인기가 있는 거죠?(웃음) 보시면서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를 던져주기 때문이 아닐까. 토론 거리를 던져주고, 이 사회,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표현해낸 작품을 보고 싶던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을 좋게 봐주신 거 같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그 의견이 충돌하는 부분들 때문에 '지옥'이라는 작품을 다들 관심 있게 봐주신다 생각한다.
'지옥'을 비롯해서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많은 선배님과 창작자들이 말하듯 한국의 작품은 이전부터 좋았다. 그 길이 넷플릭스로 뚫렸고, 다른 플랫폼으로도 퍼져 나가는 거 같다. 좋은 걸 우리만 즐기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장이 열린 게 고무적인 거 같다. 한국의 창작자는 늘 새로움에 도전하고, 대중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하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창작욕'이 새로운 길을 찾은 결과로 본다. 여기에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과 같이 길을 더 넓게 뚫어준 부분도 있는 거 같다.
'지옥'을 통해 '대한민국 짜증 연기의 지존'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에 '짜증연기 모음' 영상도 등장했다.
너무 짜증을 냈나 반성했다.(웃음) 집에서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짜증일 거 같더라. 현장에선 편했다. 감독님이 제가 준비한 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힘을 풀고, 제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원작 웹툰의 단행본에 직접 추천사를 썼을 만큼 애정이 남다른 듯 하다.
추천사는 출연하기로 한 다음에 쓴 거였다. 안 쓰기도 뭐해서 쓴 거다.(웃음) 그래도 이 만화를 정말 잘봤다. '내가 만약 창작자라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나' 싶었다. 재밌게 봤고, 애정이 갔다. 작품이 실사화가 된다고 해서 다시 보는데, 제가 좋아했던 만화가 크게 훼손되지 않고 영상화가 된 거 같아 더 기분이 좋았다. 감독님뿐 아니라 열연을 해준 배우들에게도 감사하고, 그 사이에 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복인 거 같다.
배영재 역을 맡으며 어떤 부분을 그려내고 싶었나.
기본적으로 배영재라는 인물이 제가 봤을 땐 굉장히 평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4, 5, 6부를 끄는 인물 중 하나인데,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고 집중해서 보실 수 있도록 할지 고민했다. 책임감이 있어서 그렇게 했다기보단, 평범한 사람, 있을 법한 사람, 1, 2, 3부를 보며 사람들이 답답한 걸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배우 유아인이 출연하는 부분과 박정민이 출연하는 부분이 분위기가 극명히 달랐다. (실제로 유아인이 출연하는 1, 2, 3회는 원작 웹툰의 시즌1을, 4, 5, 6회는 시즌2를 기반으로 한다.)
분위기도 다르고,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방식도 다르다 생각했다. 1, 2, 3회에 나오는 인물은 세계관을 만드는 극적인 인물이라면, 4, 5, 6회는 그 세계관 안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1, 2, 3회랑 다르게 가야겠다, 더 재밌게 가야 한다 생각을 안 했다. 원작의 팬이었고, 시즌1을 워낙 좋아한다.
배영재 외에 다른 인물을 연기하고자 한다면 어떤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었나.
김도윤 선배의 '화살촉'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제가 했다면 어떤 역할이었을까 싶었다. '하고 싶다' 말하고 싶었는데, 이미 캐스팅이 끝났다고 하시더라.
종교를 주제로 한 영화 '사바하' 개봉 인터뷰에서, 본인은 종교는 없는데 신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옥'을 계기로 종교, 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
여전히 없다. '지옥'이 종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가 포함될 수 있겠지만 종교적 차원에서 이 작품에 접근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났을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에 대해서 생각하고 연기했다. 여전히 종교는 없지만 신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바하'에서는 사이비 종교의 일원이었는데 이번에는 사이비 종교에 맞서는 인물이었다.
종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배영재로서 새진리회라는 단체에 대해 생각해보긴 했다. 작품에서 표현된 연상호 감독님의 시선에는 동의한다. 추천서를 써서 보내드린 후 감독님도 좋아하셨다. 본인이 '지옥'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걸 제가 봐줬다고 하시더라.
감독님이 박정민 배우님에 대해 계획 하에 연기하는 '기가정민'이라고 말하던데.
이렇게 프레임이 씌워지는 거다. 모든 배우는 준비는 한다. 제가 엄청나게 계획을 해서 하는 건 아닌데, 감독님이 생각했던 것과 제가 만들어간 게 달랐고, 촬영장에서 지켜본 부분은 있으신 거 같다. 그래서 그런 말씀을 주신 거 같다. '기가정민'은 감사하지만 과찬이다.
어떤 부분이 해석이 달랐을까.
감독님은 정말 평범하길 바랐고, 저는 조금은 입체적이길 바랐다. 해석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감독님이 배우들을 모아서 캐릭터 브리핑을 하던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다른 작품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준비한 건데, 그걸 믿어주셨다. 이견을 좁혀나가는 과정은 감독님의 인내심이었다. 배영재PD는 새진리회에 불만과 의문이 많지만 현실에서는 새진리회가 의뢰한 홍보영상을 제작하며 살아간다. 현실의 삶과 자신의 신념 내지는 소신 간 괴리를 품고 살아가는 인물상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것을 고려했을까.
새진리회가 활개를 치지만,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위에서 시키니 그들을 위해 뭔가를 만드는 상황에서 나오는 감정이 '짜증'인 거 같다. 배영재가 신념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태하고, 편하게 자기중심적이고, 가족을 위해 살던 사람이었고, 새진리회에 동의하지 않아도 크게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가족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싶었다. 저 역시 비슷한 상황은 많았다. 소신과 신념을 갖고 일하려 하지만 '어디까지 내가 양보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하고.
영재와 소현이 죽음을 맞이한 결말에 대한 여러 해석이 나왔다. 개인적인 해석은 어떨까.
'지옥'에서 일어나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이지 신이 인간을 벌하기 위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재난이었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연재해였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화산이 터졌을 때 포옹한 흔적이 나오지 않았나. 그런 것과 같은 상황이라 생각했다. 시즌2에서도 배영재는 전혀 나오지 않을 거 같다. 감독님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셨다.(웃음)
연상호 감독이 '애비상'을 줘야 한다고 할만한 부성애 연기를 펼쳤다.
결혼도 안했고, 아이도 없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제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부모님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난 어떻게 할까.
부부 호흡을 맞춘 원진아와 호흡은 어땠나.
좋았다. 평소에도 예쁘고 좋은 배우라 생각했고, 진아 씨가 힘을 보여줬다. 그래서 감독님과 모니터를 보면서 진아 씨 몰래 좋은 얘기를 많이 했다.
김현주와는 어땠나.
더 자주 만나고 싶었는데, 저는 혼자 있거나, 어디 끌려가거나 그랬다. 더 많이 만나지 못하게 아쉬울 정도로 함께 촬영할 때마다 많이 배웠다. 선배님의 우아한 모습을 보면서 '정말 멋지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또 후배들을 많이 아껴주신다. 먼저 다가와주시고, 털털하셨다.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유아인과는 만나지 못했다. '지옥' 후반부부터 등장하는데 참여하지 않은 전반부를 시청한 소감이 궁금하다.
제가 '지옥'이라는 만화에 매료된 건 1, 2, 3부였다. 완성본을 보고 너무 좋았고, 걱정도 됐다.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봐주시지 않으면 어떡하나' 생각도 들었나. 처음에 캐스팅 기사가 났을 때 저희 둘이 연기한다고 생각하셔서 '기대한다'고 하셨는데, 너무 죄송했다. 댓글도 달 수 없고. 저도 아쉽다. 유아인이란 배우를 좋아하던 한 명의 관객이었다. 나중에 함께 연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배영재의 시선에서 '지옥'은 부모가 아이를 저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무엇이 진정한 '지옥'일까.
인간의 탐욕 아닐까. 인간의 탐욕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 지옥이 되는 거다. 외부 환경 뿐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정이 어떻냐에 따라서 지옥 같을 수 있고.
'지옥'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존중이다. 나는 나로서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만,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서 사회를 만들어 살아간다. 그 안에서 최소한의 존중, 예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너와 나의 인간다움이라 생각한다. 본인에게 실제 고지가 일어난다면 그 시간동안 뭘 하고 싶은가.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였는데, '몇개월 뒤에 죽는다고 하면 어떡할거냐'라고 하는 질문에 '그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말이 나온다. '지옥'에서는 영혼까지 시연한다고 하지만, 전 그때까지 살아야 하나 싶다.
이전까지 필모그라피를 보면 '보통'이 이미지를 그려낼 때 더 빛을 발하는 거 같다.
그렇게 봐주시는 부분은 감사하다. 저도 고민이 많다. '보통' 사람을 연기하면서 2시간 영화를 이끄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거 같다.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하나 싶다. 선배 연기자들이 그런 일을 해내는 걸 보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은데, 이렇게 봐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평범한, 보통의 사람을 연기하는게 더 재밌긴 하다. 그래서 제 주변의 그런 사람들 유심히 보는 편이다.
연기 인생에서 '지옥'은 어떤 의미의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가.
'지옥'이 저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이 될 거라 예상 못했다. 놀러가듯이 가서 촬영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세계에서 1등을 한다고 하니 기분은 좋더라. 제가 참여한 작품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떨까. 해외 러브콜은 없나.
없다. 집에 있을 예정이다. 해외 활동에 관심도 없고, 저를 강제로 해외진출 시켜줄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잘하고 싶다. 한국에서 잘하다 보면 지금처럼, 지금 전 세계에서 한국 콘텐츠를 사랑해주시니 한국적인 걸 잘 만들어 잘 소개해 드리고 싶다. 만약 해외 러브콜이 온다면 말씀드리겠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현재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로 꼽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은 서울 한복판에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지옥행 시연이 일어난 후 벌어지는 혼란을 담은 드라마다. 정의로운 변호사, 혼란을 이용하는 신흥 종교단체 등 극적인 캐릭터 속에서 박정민은 가장 현실적인 인물 방송국 PD 배재영 역을 맡았다.
연출자인 연상호 감독이 그린 동명의 원작 웹툰 추천사를 쓰기도 했던 박정민은 영화 '파수꾼', '동주', '변산', '사바하', '그것만이 내 세상' 등 출연 작품마다 독창적으로 캐릭터를 해석하고 작품에 녹여내 호평받았던 배우다. '지옥'에서는 새진리회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그들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는 배영재를 연기하면서 지옥 시연이 자신의 가족의 일이 됐을 때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몰입도를 끌어 올린다.
"'지옥'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저는 폭발적인 반응을 느끼고 있지 않다"면서 담담하게 출연 소감을 전하던 박정민은 "제가 등장하지 않았던 1, 2, 3회의 워낙 팬이었다"면서 원작 웹툰에 팬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기회가 된다면 '화살촉'을 연기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영화 '사바하'에 이어 '지옥'까지 또다시 종교를 메인으로 내세운 작품에 출연한 박정민이지만 "종교는 없지만, 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지옥'이 종교적인 작품이라 생각하고 출연을 결심한 건 아니다"고 분명히 밝혔다. '지옥'이 일주일 넘게 넷플릭스 전 세계 TV부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세계 1위라고 해서 기분은 좋은데, 체감이 되진 않는다. 폭발적인 반응이 주변에서 있는 게 아니라(웃음) 뭔가 느낌이 오진 않는다. 그래도 전 세계 분들이 많이 봐주시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신 걸 보면서 '지옥'이라는 작품이 전하는 방향성, 반응이 나오는 거 같아 기분은 좋다.
인기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인기가 있는 거죠?(웃음) 보시면서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를 던져주기 때문이 아닐까. 토론 거리를 던져주고, 이 사회,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표현해낸 작품을 보고 싶던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을 좋게 봐주신 거 같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그 의견이 충돌하는 부분들 때문에 '지옥'이라는 작품을 다들 관심 있게 봐주신다 생각한다.
'지옥'을 비롯해서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많은 선배님과 창작자들이 말하듯 한국의 작품은 이전부터 좋았다. 그 길이 넷플릭스로 뚫렸고, 다른 플랫폼으로도 퍼져 나가는 거 같다. 좋은 걸 우리만 즐기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장이 열린 게 고무적인 거 같다. 한국의 창작자는 늘 새로움에 도전하고, 대중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하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창작욕'이 새로운 길을 찾은 결과로 본다. 여기에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과 같이 길을 더 넓게 뚫어준 부분도 있는 거 같다.
'지옥'을 통해 '대한민국 짜증 연기의 지존'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에 '짜증연기 모음' 영상도 등장했다.
너무 짜증을 냈나 반성했다.(웃음) 집에서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짜증일 거 같더라. 현장에선 편했다. 감독님이 제가 준비한 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힘을 풀고, 제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원작 웹툰의 단행본에 직접 추천사를 썼을 만큼 애정이 남다른 듯 하다.
추천사는 출연하기로 한 다음에 쓴 거였다. 안 쓰기도 뭐해서 쓴 거다.(웃음) 그래도 이 만화를 정말 잘봤다. '내가 만약 창작자라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나' 싶었다. 재밌게 봤고, 애정이 갔다. 작품이 실사화가 된다고 해서 다시 보는데, 제가 좋아했던 만화가 크게 훼손되지 않고 영상화가 된 거 같아 더 기분이 좋았다. 감독님뿐 아니라 열연을 해준 배우들에게도 감사하고, 그 사이에 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복인 거 같다.
배영재 역을 맡으며 어떤 부분을 그려내고 싶었나.
기본적으로 배영재라는 인물이 제가 봤을 땐 굉장히 평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4, 5, 6부를 끄는 인물 중 하나인데,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고 집중해서 보실 수 있도록 할지 고민했다. 책임감이 있어서 그렇게 했다기보단, 평범한 사람, 있을 법한 사람, 1, 2, 3부를 보며 사람들이 답답한 걸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배우 유아인이 출연하는 부분과 박정민이 출연하는 부분이 분위기가 극명히 달랐다. (실제로 유아인이 출연하는 1, 2, 3회는 원작 웹툰의 시즌1을, 4, 5, 6회는 시즌2를 기반으로 한다.)
분위기도 다르고,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방식도 다르다 생각했다. 1, 2, 3회에 나오는 인물은 세계관을 만드는 극적인 인물이라면, 4, 5, 6회는 그 세계관 안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1, 2, 3회랑 다르게 가야겠다, 더 재밌게 가야 한다 생각을 안 했다. 원작의 팬이었고, 시즌1을 워낙 좋아한다.
배영재 외에 다른 인물을 연기하고자 한다면 어떤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었나.
김도윤 선배의 '화살촉'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제가 했다면 어떤 역할이었을까 싶었다. '하고 싶다' 말하고 싶었는데, 이미 캐스팅이 끝났다고 하시더라.
종교를 주제로 한 영화 '사바하' 개봉 인터뷰에서, 본인은 종교는 없는데 신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옥'을 계기로 종교, 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
여전히 없다. '지옥'이 종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가 포함될 수 있겠지만 종교적 차원에서 이 작품에 접근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났을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에 대해서 생각하고 연기했다. 여전히 종교는 없지만 신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바하'에서는 사이비 종교의 일원이었는데 이번에는 사이비 종교에 맞서는 인물이었다.
종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배영재로서 새진리회라는 단체에 대해 생각해보긴 했다. 작품에서 표현된 연상호 감독님의 시선에는 동의한다. 추천서를 써서 보내드린 후 감독님도 좋아하셨다. 본인이 '지옥'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걸 제가 봐줬다고 하시더라.
감독님이 박정민 배우님에 대해 계획 하에 연기하는 '기가정민'이라고 말하던데.
이렇게 프레임이 씌워지는 거다. 모든 배우는 준비는 한다. 제가 엄청나게 계획을 해서 하는 건 아닌데, 감독님이 생각했던 것과 제가 만들어간 게 달랐고, 촬영장에서 지켜본 부분은 있으신 거 같다. 그래서 그런 말씀을 주신 거 같다. '기가정민'은 감사하지만 과찬이다.
어떤 부분이 해석이 달랐을까.
감독님은 정말 평범하길 바랐고, 저는 조금은 입체적이길 바랐다. 해석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감독님이 배우들을 모아서 캐릭터 브리핑을 하던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다른 작품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준비한 건데, 그걸 믿어주셨다. 이견을 좁혀나가는 과정은 감독님의 인내심이었다. 배영재PD는 새진리회에 불만과 의문이 많지만 현실에서는 새진리회가 의뢰한 홍보영상을 제작하며 살아간다. 현실의 삶과 자신의 신념 내지는 소신 간 괴리를 품고 살아가는 인물상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것을 고려했을까.
새진리회가 활개를 치지만,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위에서 시키니 그들을 위해 뭔가를 만드는 상황에서 나오는 감정이 '짜증'인 거 같다. 배영재가 신념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태하고, 편하게 자기중심적이고, 가족을 위해 살던 사람이었고, 새진리회에 동의하지 않아도 크게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가족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싶었다. 저 역시 비슷한 상황은 많았다. 소신과 신념을 갖고 일하려 하지만 '어디까지 내가 양보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하고.
영재와 소현이 죽음을 맞이한 결말에 대한 여러 해석이 나왔다. 개인적인 해석은 어떨까.
'지옥'에서 일어나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이지 신이 인간을 벌하기 위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재난이었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연재해였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화산이 터졌을 때 포옹한 흔적이 나오지 않았나. 그런 것과 같은 상황이라 생각했다. 시즌2에서도 배영재는 전혀 나오지 않을 거 같다. 감독님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셨다.(웃음)
연상호 감독이 '애비상'을 줘야 한다고 할만한 부성애 연기를 펼쳤다.
결혼도 안했고, 아이도 없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제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부모님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난 어떻게 할까.
부부 호흡을 맞춘 원진아와 호흡은 어땠나.
좋았다. 평소에도 예쁘고 좋은 배우라 생각했고, 진아 씨가 힘을 보여줬다. 그래서 감독님과 모니터를 보면서 진아 씨 몰래 좋은 얘기를 많이 했다.
김현주와는 어땠나.
더 자주 만나고 싶었는데, 저는 혼자 있거나, 어디 끌려가거나 그랬다. 더 많이 만나지 못하게 아쉬울 정도로 함께 촬영할 때마다 많이 배웠다. 선배님의 우아한 모습을 보면서 '정말 멋지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또 후배들을 많이 아껴주신다. 먼저 다가와주시고, 털털하셨다.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유아인과는 만나지 못했다. '지옥' 후반부부터 등장하는데 참여하지 않은 전반부를 시청한 소감이 궁금하다.
제가 '지옥'이라는 만화에 매료된 건 1, 2, 3부였다. 완성본을 보고 너무 좋았고, 걱정도 됐다.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봐주시지 않으면 어떡하나' 생각도 들었나. 처음에 캐스팅 기사가 났을 때 저희 둘이 연기한다고 생각하셔서 '기대한다'고 하셨는데, 너무 죄송했다. 댓글도 달 수 없고. 저도 아쉽다. 유아인이란 배우를 좋아하던 한 명의 관객이었다. 나중에 함께 연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배영재의 시선에서 '지옥'은 부모가 아이를 저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무엇이 진정한 '지옥'일까.
인간의 탐욕 아닐까. 인간의 탐욕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 지옥이 되는 거다. 외부 환경 뿐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정이 어떻냐에 따라서 지옥 같을 수 있고.
'지옥'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존중이다. 나는 나로서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만,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서 사회를 만들어 살아간다. 그 안에서 최소한의 존중, 예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너와 나의 인간다움이라 생각한다. 본인에게 실제 고지가 일어난다면 그 시간동안 뭘 하고 싶은가.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였는데, '몇개월 뒤에 죽는다고 하면 어떡할거냐'라고 하는 질문에 '그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말이 나온다. '지옥'에서는 영혼까지 시연한다고 하지만, 전 그때까지 살아야 하나 싶다.
이전까지 필모그라피를 보면 '보통'이 이미지를 그려낼 때 더 빛을 발하는 거 같다.
그렇게 봐주시는 부분은 감사하다. 저도 고민이 많다. '보통' 사람을 연기하면서 2시간 영화를 이끄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거 같다.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하나 싶다. 선배 연기자들이 그런 일을 해내는 걸 보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은데, 이렇게 봐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평범한, 보통의 사람을 연기하는게 더 재밌긴 하다. 그래서 제 주변의 그런 사람들 유심히 보는 편이다.
연기 인생에서 '지옥'은 어떤 의미의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가.
'지옥'이 저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이 될 거라 예상 못했다. 놀러가듯이 가서 촬영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세계에서 1등을 한다고 하니 기분은 좋더라. 제가 참여한 작품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떨까. 해외 러브콜은 없나.
없다. 집에 있을 예정이다. 해외 활동에 관심도 없고, 저를 강제로 해외진출 시켜줄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잘하고 싶다. 한국에서 잘하다 보면 지금처럼, 지금 전 세계에서 한국 콘텐츠를 사랑해주시니 한국적인 걸 잘 만들어 잘 소개해 드리고 싶다. 만약 해외 러브콜이 온다면 말씀드리겠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