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추수감사절과 김옥길 선생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은미 이화여대 총장 president@ewha.ac.kr
매년 11월 넷째주 목요일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다른 나라도 추수감사절을 이때쯤 지낸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에는 여러 기원이 있지만 1620년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착해서 한 해 동안 새로운 땅에서 고생하며 일군 추수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바치고, 신대륙 정착을 도와준 원주민들과 음식을 나눴다는 플리머스의 기록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1621년의 일이니 벌써 올해로 400주년을 맞은 셈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풍경은 나라 전역에 흩어져 있던 가족이 대이동을 하면서 오랜만에 모여 특별한 식사를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큰 칠면조가 식탁 한가운데 놓이고 크랜베리, 감자, 고구마, 그린피와 칠면조를 구우면서 나온 즙으로 만드는 그레이비소스가 풍성히 차려진 가운데 무엇보다 펌킨파이가 빠질 수 없다. 가족과 친지가 한자리에 모여 한 해를 감사하면서 특별한 요리를 나누는 것이다.
유학 시절, 추수감사절 시즌이 되면 조금 다른 의미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이화여대의 큰 스승 중 한 분인 김옥길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다. 선생님은 《열린 대문과 냉면 한 그릇》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대신동 자택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많은 사람에게 냉면과 빈대떡을 대접했다. 선생님은 이화와 관계가 있든 없든 간에, 누구에게든지 이 냉면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셨다.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이던 때, 문교부의 모든 직원을 불러 냉면을 내어주신 것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그날 초대된 사람들은 문교부 공무원뿐만이 아니라 경비를 보거나 청소를 하는 분들을 비롯해 선생님 대문을 열고 들어온 모든 사람이었고, 이들 모두 똑같은 음식을 함께 나눴다.
미국 추수감사절의 풍요로운 정찬이 가족과 지인, 곧 내가 속한 공동체의 테두리 안에서 나누는 감사라고 한다면, 김옥길 선생님이 대접한 냉면이라는 소박한 한 그릇의 음식은 조금 더 넓은 의미를 지닌다. 선생님은 활짝 열린 대문을 통해 누구에게든 한 그릇의 음식을 내어주셨다. 어떤 이유나 조건 없이 그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게 대접하고픈 마음이셨을 것이다.
어느새 연말이다. 올 한 해 어려운 일이 너무나 많았지만, 여러 도움을 준 분들 덕분에 또 한 해가 마무리돼 가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내게 도움 준 사람들에게만 감사하기에는 어째 마음 한쪽이 부족한 것 같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선생님의 냉면 한 그릇처럼 조금 더 너르게 우리 이웃을 돌아보며 ‘감사’하면서 ‘대접’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풍경은 나라 전역에 흩어져 있던 가족이 대이동을 하면서 오랜만에 모여 특별한 식사를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큰 칠면조가 식탁 한가운데 놓이고 크랜베리, 감자, 고구마, 그린피와 칠면조를 구우면서 나온 즙으로 만드는 그레이비소스가 풍성히 차려진 가운데 무엇보다 펌킨파이가 빠질 수 없다. 가족과 친지가 한자리에 모여 한 해를 감사하면서 특별한 요리를 나누는 것이다.
유학 시절, 추수감사절 시즌이 되면 조금 다른 의미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이화여대의 큰 스승 중 한 분인 김옥길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다. 선생님은 《열린 대문과 냉면 한 그릇》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대신동 자택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많은 사람에게 냉면과 빈대떡을 대접했다. 선생님은 이화와 관계가 있든 없든 간에, 누구에게든지 이 냉면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셨다.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이던 때, 문교부의 모든 직원을 불러 냉면을 내어주신 것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그날 초대된 사람들은 문교부 공무원뿐만이 아니라 경비를 보거나 청소를 하는 분들을 비롯해 선생님 대문을 열고 들어온 모든 사람이었고, 이들 모두 똑같은 음식을 함께 나눴다.
미국 추수감사절의 풍요로운 정찬이 가족과 지인, 곧 내가 속한 공동체의 테두리 안에서 나누는 감사라고 한다면, 김옥길 선생님이 대접한 냉면이라는 소박한 한 그릇의 음식은 조금 더 넓은 의미를 지닌다. 선생님은 활짝 열린 대문을 통해 누구에게든 한 그릇의 음식을 내어주셨다. 어떤 이유나 조건 없이 그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게 대접하고픈 마음이셨을 것이다.
어느새 연말이다. 올 한 해 어려운 일이 너무나 많았지만, 여러 도움을 준 분들 덕분에 또 한 해가 마무리돼 가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내게 도움 준 사람들에게만 감사하기에는 어째 마음 한쪽이 부족한 것 같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선생님의 냉면 한 그릇처럼 조금 더 너르게 우리 이웃을 돌아보며 ‘감사’하면서 ‘대접’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