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당장 적용받게 되는 직원들의 동의를 별도로 받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촉진법이나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이숙연)는 지난 19일 강모씨 등 19명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들은 공단 입사 후 1, 2급으로 재직하고 있거나 퇴직한 직원이다.

공단은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전 직원 정년을 60세로 올리는 대신 2급 이상 직원들에게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공단 직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을 변경했다.

이에 대해 2급 이상 근로자들은 반발하며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에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은 “임금피크제에 동의해 준 공단노조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지 않는 3급 이하 직원들로만 조직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2급 이상 직원들은 연봉제가 적용되는 등 3급 이하 직원들과 임금체계가 다른 별개 집단”이라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면 2급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별도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피크제 탓에 먼저 승진한 근로자가 낮은 임금을 받게 되는 것도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에 위반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 10억원을 공단 측에 청구했다.

법원은 공단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3급 이하 근로자들도 앞으로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게 된다”며 “잠재적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로서 동의해 줄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승진이 빠른 직원이 높은 가치의 노동을 제공한다거나 먼저 승진한 근로자가 항상 더 많은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은 건보공단 외에 다른 공공기관에도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도 인천국제공항공사 전·현직 직원 12명이 공사를 상대로 낸 11억7970만원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원고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전·현직 1, 2급 전문위원들로 구성돼 있어 이번 건보공단 소송과 비슷하다. 공단을 대리한 조병기 변호사는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아닌 3급 이하 직원들의 동의만으로도 절차적 적법성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