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홍콩 인권문제 비판해와…대중 강경노선 예고
"독일 새 연정이 강경노선 택하면 유럽도 따라갈 것"

독일 최초의 여성 외무장관으로 안나레나 배어복(40) 녹색당 공동대표가 내정되자 중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슈 In] 독일 녹색당 출신 새 외무장관에 긴장하는 중국
환경과 인권을 중시하는 독일 녹색당은 그동안 유럽의 주요 정당 중 중국에 가장 강경한 노선을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대(對)중국 외교가 지나치게 유화적이라고 비판해온 배어복 외무장관 내정자는 특히 신장 위구르와 홍콩에서의 인권 탄압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인물이어서 향후 독일의 대중국 외교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 트램펄린 선수 출신 골수 녹색당원…대중 강경노선 예고
12월 초 공식 출범할 예정인 독일의 새 연립정부는 '신호등 연정'이라 불린다.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빨강), 자유민주당(노랑), 녹색당(초록)의 상징색이 신호등 색상과 같기 때문이다.

각 정당 간 각료 배분 합의에 따라 총리는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가 맡게 됐고, 녹색당은 외무장관과 환경장관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은 외무장관으로 내정된 배어복 녹색당 공동대표다.

그는 독일 최초의 여성 외무장관이자 16년 만의 녹색당 출신 외무장관으로 취임하게 된다.

10대 때 트램펄린 선수로 활동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인 배어복은 함부르크대에서 정치학과 공법을 공부한 뒤 런던정경대(LSE)에서 공공국제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언론계에 잠시 몸담았던 배어복 대표는 2005년 녹색당에 입당했고, 2009년 당의 브란덴부르크 지역 지부장이 됐다.

2013년 총선에서 녹색당 국회의원으로 하원에 입성한 뒤 2018년 로베르트 하벡과 함께 녹색당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독일 녹색당은 전통적으로 환경과 인권을 중시하는 정당이다.

배어복은 야당이던 시절부터 메르켈 총리의 대중국 정책이 법치나 민주주의 같은 서구의 가치보다 독일의 상업적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비판해 왔다.

[이슈 In] 독일 녹색당 출신 새 외무장관에 긴장하는 중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녹색당은 메르켈의 대중국 정책이 너무 유약하다고 여겼으며, 신장 위구르나 홍콩에서의 인권 탄압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데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카 브란트너 녹색당 대변인은 최근 열린 외교정책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독일의 이익을 독일의 경제적 이익과 동일시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며 "우리는 방향을 바꿔야 하며, 만약 바꾸지 않는다면 매우 막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의 대중국 외교정책 변화 기조는 새 연정이 발표한 협약안에서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유럽 전체와 세계에 있어 독일의 책임을 명시한 7번째 장의 여러 부분에서 중국과 대만을 언급하면서 평화로운 방식으로 양안이 모두 동의하는 정황에서만 해협의 현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중국'이라는 유럽연합(EU)의 프레임 안에서 독일은 민주국가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독일 새 연정의 양안 정책은 미국과 거의 흡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의 중국 전문가 노아 바킨은 FT에 "중국과 관련한 가장 강력한 표현이 독일 새 연정 협약안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대만, 신장, 홍콩 등 중국의 레드라인에 대해 기꺼이 언급하려는 자세는 최근 수년간 독일 내 논쟁이 얼마나 많이 진전됐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 유럽의회서도 녹색당 입김 세져…"독일 강경노선 유럽도 따라갈 것"
유럽 최대 경제국으로 EU를 사실상 주도하는 독일에서 녹색당의 부상은 상징적이다.

독일은 유럽의회에서 EU 회원국 중 가장 많은 96석의 의석을 갖고 있어 독일의 정치지형 변화는 EU의 외교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그 중심에 녹색당이 있기 때문이다.

2019년 5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은 74석의 의석(전체 의석의 9.9%)을 확보하며 대약진했다.

이 선거에서 독일 녹색당은 20.5%를 얻어 지난 선거 때(10.7%)의 두 배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난달 초 유럽의회 의원 7명이 사상 처음으로 대만을 방문해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런 지형 변화와 무관치 않다.

유럽의회는 지난 10월 대만과의 관계를 심화하고 대만과의 투자협정을 위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채택했다.

EU 의원들은 대만에 있는 EU의 '타이베이 대표부'를 '대만 대표부'로 변경할 것도 요구했다.

유럽의회에서 대중국 강경노선을 이끄는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의원은 독일 녹색당 출신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서방 8개국과 EU 의회 의원들이 중국 공산당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한 '대중국 의회간 연합체'(IPAC) 공동 의장도 맡고 있다.

유럽에서 화웨이 퇴출에도 앞장섰던 뷔티코퍼는 지난달 25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중국을 자극하는 글과 사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이슈 In] 독일 녹색당 출신 새 외무장관에 긴장하는 중국
그는 2장의 달걀 볶음밥 사진과 함께 "오늘은 중국에서 달걀 볶음밥의 날이다.

중국은 달걀 볶음밥에 큰 신세를 졌다.

달걀 볶음밥은 중국이 북한처럼 되는 것을 막아줬다"는 글을 올렸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1950년 11월 25일 중공군 사령부가 있던 평안북도 대유동에서 달걀 볶음밥을 만들어 먹다가 미군의 공습을 받아 사망한 것을 비꼬는 내용이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마오안잉이 전장에서 경솔하게 달걀 볶음밥을 만들어 먹다가 폭사하지 않았더라면 중국도 북한처럼 세습체제가 됐을 것이란 얘기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금기시하는 사안을 건드리는 것을 서슴지 않는 뷔티코퍼의 이런 거침없는 태도는 향후 EU와 중국, 독일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라 할 수 있다.

중국 전문가 노아 바킨은 "메르켈의 퇴임과 녹색당 출신 각료의 정부 입성에 대해 중국 외교관들은 많은 조바심을 느끼고 있다"며 "그들은 독일 새연정이 강경노선을 선택하면 유럽도 뒤따를 것이란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과 유럽의 이런 변화에 대해 대만과 중국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대만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독일 신연정이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와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에 대한 지지를 피력했다며 향후 양측의 우호 협력이 증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남중국해, 신장, 홍콩 등은 모두 중국 내부의 업무라고 강조하면서 "역대 독일 정부는 모두 하나의 중국 정책을 준수해왔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