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사와 기술보증기금이 1일 서울 신도림동 라마다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기술평가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태 동의대 경영학과 교수,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철용 부산대 경영학과 교수, 이종학 기보 기술평가부장.   /기보 제공
한국경제신문사와 기술보증기금이 1일 서울 신도림동 라마다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기술평가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태 동의대 경영학과 교수,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철용 부산대 경영학과 교수, 이종학 기보 기술평가부장. /기보 제공
수도권 한 중소 자동차부품업체는 전기차용 인버터 관련 국내 최초 기술을 개발해 이를 사업화하기 위해 은행 대출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기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아직 관련 매출이 없고 기존 대출과 보증 한도가 찼다는 이유에서다. 중소제조업체들은 대부분 정부 지원을 받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도 이를 사업화로 연결하지 못하고 사장되는 사례가 많았다. 기술보증기금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정부 연구개발(R&D) 과제에 대한 사업화 지원 제도를 마련했다. 현재 688만 개에 이르는 중소기업의 기술 사업화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개발부터 사업화까지 한번에 지원

1일 기보와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주관한 기술평가세미나가 서울 신도림동 라마다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기보는 ‘R&D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을 이달부터 시범 실시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기업이 정부 R&D 과제를 따내 개발에 성공할 경우 추가 보증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생산, 제품 출시, 판로 확대 등 사업화에 필요한 보증을 최대 5년에 걸쳐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엔 기업이 기술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보증 한도가 차거나 관련 매출이 없으면 지원이 불가능했다. 은행과 정책금융기관들이 R&D의 사업화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부족해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 지원 R&D사업의 성공률은 90% 이상이지만 사업화 성공률은 40~50%에 그친다. 70% 이상인 영국과 미국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R&D 사업화 지원 정책도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R&D 사업화 금융 지원 예산은 819억원으로 연간 중소기업 R&D 예산(3조2000억원)의 2.5% 수준이다.

국내 유일 기술평가전문기관인 기보는 영국 정부 산하 R&D지원기구(이노베이트 UK)를 벤치마킹한 신규 평가모형을 개발했다. 기존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도입했던 9단계(R&D와 제품화 단계) ‘기술성숙도(TRL)’ 모형을 썼지만 여기에 양산과 상업화 단계를 더한 13단계의 ‘기술혁신성숙도(TiRL)’ 모형을 새로 도입한 것이다. 이종배 기보 상임이사는 “담보여력이 부족하고 매출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기업들도 기술력과 아이템만 좋으면 이 제도를 통해 은행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PO·M&A 등 회수가능성 산출

기보는 유망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투자유치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투자용 평가모형도 개발하기로 했다. 벤처캐피털(VC), 사모펀드(PEF), 기관투자가 등이 투자처를 찾아 헤매지 않고도 이 모형을 통해 투자처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보는 올해 말까지 개발을 완료해 내년 하반기 시범사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수익성 유동성 등을 예측해 일정 기간 후 기업공개(IPO), 매각(M&A) 등으로 자금 회수가 가능한지 여부를 알려주는 모형이다. 투자 성공 등급도 AAA급에서 D급까지 14등급으로 나눠 보여준다.
기보 "중소기업 혁신기술, 사업화 도울 것"
기보는 현재 보유한 국내 3만여 건 기업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별·업종별 기술력 수준을 지수화한 ‘기술혁신역량지수(테크인덱스)’도 별도로 산출해 내년부터 활용하기로 했다. 또 세분화되는 산업 구조에 맞춰 기존 통계청이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준 분류가 아닌 혁신기술분류체계를 새로 구축할 예정이다. 김종호 기보 이사장(사진)은 “모형 고도화를 통해 기보의 기술평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며 “효율적인 평가정보시스템 구축과 맞춤형 R&D 기술사업화 전략으로 중소·벤처기업의 혁신성장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