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유전자를 넣거나 뺀 후 돼지의 체세포 내에 주입하는 장면. 이를
미니피그의 자궁에 삽입해 형질전환 돼지를 생산한다.
특정 유전자를 넣거나 뺀 후 돼지의 체세포 내에 주입하는 장면. 이를 미니피그의 자궁에 삽입해 형질전환 돼지를 생산한다.
1963년 미국인 토머스 스타츨이 개코원숭이의 신장을 환자에게 이식해 최대 98일 생존했다. 이듬해 미국 툴레인대학의 케이스 림츠마 교수는 침팬지의 신장을 사람에게 이식하여 9개월 생존하는 데 성공하며 한층 개선된 결과를 얻었다.

이런 가운데 1967년에는 절단된 DNA를 접착하는 데 필요한 ‘DNA 리가아제’를, 1970년에는 해밀턴 스미스 연구소에서 DNA를 자를 수 있는 ‘제한효소’를 발견한다. 이를 토대로 1972년에는 폴 버그가 최초의 재조합 DNA를 만들었다.

1981년 프랭크 루들과 프랭크 콘스타니니, 엘리자베스 레이시팀은 유전자 조작 쥐의 형질을 후손까지 전파하는 데 성공한다.

1990년 이후 원숭이로부터 후천성면역결핍 증(AIDS)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장기이식의 공여 동물로 기존 유인원에서 미니돼지로 눈을 돌리게 된다.

동시에 거듭된 실패의 원인이 이종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종간 면역거부반응이 발생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면역억제제인 ‘사이클로스포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지만 이 역시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종간 면역거부반응에 대한 이해가 낮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실험들은 의료 윤리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1990년대 후반에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이종장기 이식 가이드라인이 처음 만들어졌다.

유전공학, 이종장기에 돌파구를 선사하다
정체기를 보내던 이종장기의 재기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다름 아닌 유전공학이었다. 사실 이종장기의 역사는 유전공학 발전사와 맥을 같이한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다.

2000년 전후로 영국과 미국의 몇몇 바이오 기업이 사람의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제거한 형질전환 돼지를 탄생시켰다. 이로써 이종장기 연구가 새 국면을 맞게 된다.

2002년 미국 미주리대 연구진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녹색형광 돼지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돼지의 체세포에 녹색형광 단백질(GFP·Green Fluorescent Protein) 유전자를 삽입하는 일명 형질전환돼지를 생산한다. 이종장기 이식의 원료가 되는 형질전환 동물 개발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제한효소로 유전자를 자르고 그 위치에 동일한 서열을 가진 한 쌍의 DNA가 유전적 교환이 일어나도록하는 상동유전자재조합이 활용됐다. 효율이 높진 않았지만 녹색형광 형질전환 돼지는 유전자 편집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돼지 세포 안에 무작위로 유전자가 삽입된 탓에 몸 여기저기서 형광을 띠는 한계가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종이식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갈락토실 트랜스퍼레이저(Gal·Galactose-alpha-1,3-galactose)’ 유전자를 제거하는 일에 주목했다.

2003년에 초급성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Gal 유전자를 제거한 GTKO(α-Galactosy Transferase KnockOut) 형질 전환 돼지가 만들어졌다. 초급성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면역억제제라는 약물이 아니라 형질전환을 통해 극복하려 한 첫 시도가 성공한 것이다.

그해 인간 유전자 전체를 읽는 휴먼게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주축이 되어 바이오이종장기사업단을 출범하고 이종장기 연구를 본격화한다.

크리스퍼 기술로 인수공통전염병을 돌파하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2000년 대 후반까지 레트로 바이러스와 같은 인수 공통전염병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며 이종장기 이식은 다시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된다.

당시 기술로는 인수공통전염병을 타파할 묘안이 마땅치 않았고 GTKO 형질전환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수천, 수만 번의 실험을 반복하여 특정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은 시간, 자원 등의 부분에서 분명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해준 것이 핵산 분해효소라고 불리는 뉴클레아제(programmable nuclease) 기반의 유전자 가위의 탄생이다. 2003년 징크핑거(ZFNs)를 시작으로 2010년 탈렌(TALENs), 2012년 크리스퍼 카스9(CRISPR-Cas9)이 그 주인공이다.

2010년 징크핑거를 이용해 GTKO 형질전환 돼지 생산을 위한 기간은 기존 3년에서 5개월로 단축됐다. 2012년에는 두 개의 유전자를 뺀 형질전환 돼지를 만드는 데도 성공한다. 탈렌은 징크핑거보다 원하지 않는 위치를 절단하는 오프타깃 비율(off-target ratio)을 상대적으로 낮추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3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활용해 인간 세포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성공하며 그동안 움츠려 있던 이종장기 산업에 다시 봄이 찾아왔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사용 방법이 어렵지 않아 이종장기 분야에도 곧바로 적용이 가능했다. 성과는 획기적이었다. 그동안 골치를 앓던 돼지 내인성 레트로 바이러스(PERV·Porcine Endogenous RetroVirus)의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15년 하버드 의대 소속의 조지 처치와 루한 양 연구진은 돼지 유래 세포 염색체 내에 존재하는 PERV 62개를 모두 제거해낸다. PERV는 돼지를 아무리 깨끗이 키워도 장기 이식 시 돼지에서 사람으로 전이돼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PERV는 돼지 유래 세포주(PK-15 cell line) 염색체 내에 산재되어 있었는데 이를 모두 불활화시킴으로써 이종장기 이식 실현의 길목을 막고 있던 초급성 면역거부반응에 이어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돌파했다.


크리스퍼 기술의 진보, 이종장기에 적극 활용될 것
이종장기 개발은 이처럼 염색체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특정 유전자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를 찾아내 제거한 형질전환동물을 생산하고 영장류 임상을 통해 생존율을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크리스퍼 Cas9이 징크핑거와 탈렌을 대체해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편리성과 정확도에서 우위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복수의 유전자를 동 시에 정확하게 편집하게 돼 이종장기 연구개발 과정에서 겪을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줄여 상업화를 앞당길 수 있다.

또한 이종장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의 질병을 연구하는 형질전환 동물모델을 만드는 데도 확장해 활용되고 있다. 인간 질병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를 돼지에 발현시켜 이를 토대로 백신이나 치료제 등의 효용성을 검토할 수 있는 중대 동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시도다.

돼지는 인간과 유전자학적으로 가까운 포유류다. 또한, 영장류보다 생식력이 높고 장기 기관의 크기가 사람과 유사하며 윤리적인 문제 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이종장기 이식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보편화되면서 특정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적인 난관은 상당 부분 진일보했다.

그리고 지금도 프라임 에디터 등 유전자가위의 효율과 정확성을 높이는 노력들이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만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정교함은 꾸준히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기술 진보의 성과물은 앞으로의 이종장기 연구개발에서도 십분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
최근에는 특정 유전자를 넣거나 뺀 형질전환 돼지가 개발되고 있다. 돼지의 유전자를 빼거나 사람의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몇 세대를 내려가도 유전적 형질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최근에는 특정 유전자를 넣거나 뺀 형질전환 돼지가 개발되고 있다. 돼지의 유전자를 빼거나 사람의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몇 세대를 내려가도 유전적 형질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올해 美 FDA, GAL 유전자 제거 돼지 안전성 입증
이종장기 이식 연구개발은 사람과 동물의 종간 면역체계에 대한 이해를 수반하고 있다. 인체 유전자는 다른 어떤 동식물에 비해 복잡하고 치료제로 쓰려면 고도의 안전성을 요구한다.

어디까지나 유전자가위는 편집도구여서 인간의 유전자 정보가 제각기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등에 대한 일정 수준의 선행 연구를 수반해야 활용도가 높아진다.

Alpha Gal이 초급성 면역거부반응에 가장 크게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구조가 간단해 제거가 용이했지만 다른 유전자도 적지 않게 이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고 관련 유전자가 얼마나 우리 몸에 존재하는지 아직까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심장, 각막, 췌도, 신장은 영 장류 실험에서 이미 적게는 500일에서 945일까지 생존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이 중 각막과 췌도는 우리나라의 이종장기사업단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종장기 이식 시 영장류 한 마리가 아니라 과반을 넘는 수준에서 결과값을 얻어야 한다고 세계이종장기학회가 권고하고 있어 이를 충족하기 위한 연구개발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미국 FDA는 연어에 이어 GAL-SAFE 돼지를 식용 및 의학용으로 활용하도록 허용했다. 일부 유전자를 제거한 형질 전환 돼지의 안정성을 입증한 것이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월 미국에서는 뇌사자를 대상으로 형질전환 돼지 신장을 이식한 결과 면역거부반응 없이 즉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며 세간의 조명을 받았다. 이제 이종장기 이식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임상을 거쳐 사업화되는 산업화 시점이 우리 눈앞에 왔음을 시사한다.

그동안 유전공학의 발전은 고스란히 이종이식 분야로 전해졌다. 특히 크리스퍼 Cas9이 이종장기 분야에 선사한 혁신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종간 면역체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진화된 유전자가위가 만나 어떠한 결과를 일궈낼지 기대된다.
<저자 소개>
[Cover Story - part 5. TECHNOLOGY] 이종장기 개발에 혁신 선사한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
김현일
서울대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일바이오 연구소와 경기도 가축위생연구소를 거쳐 옵티팜에 2006년 합류했다. 2011년부터 대표직을 맡고 있다. 한국양돈수의사회 부회장과 서울대 수의대 비전임 교수를 맡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