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part 7. STUDY] 크리스퍼 기술과 신개념 바이러스 진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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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성철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 YSF 연구위원
2019년 말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2억5000만 명의 감염자와 5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며 아직까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백신 도입으로 감염률과 중증 환자 및 사망률이 유의미한 감소 추세를 보이긴 하지만 지속적인 변이 바이러스 출현으로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을 비롯해 초기 방역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국가들은 신속한 유전자 증폭(PCR) 검사 체계를 갖추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체계적인 진단 및 감염자 추적 시스템을 통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해왔다.
이렇듯 새로운 진단 및 예방 기술의 신속한 도입은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바이러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한편, 인류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싸움이 한창이었던 2020년 가을,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UC버클리 교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에게 노벨화학상을 수여했다. 크리스퍼(CRISPR) 작동원리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 기법의 개발에 기여한 공로였다.
크리스퍼는 세균 DNA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규칙적·반복적인 염기서열을 일컫는다. 1987년 일본 오사카대의 나카다 교수팀이 우연히 발견하여 보고한 뒤, 2000년대 초반 스페인 알리칸테대 모히카 교수가 명명했다.
이후 여러 생명과학자들이 크리스퍼 부위 주변의 유전자에서 발현되는 카스(Cas) 단백질들이 크리스퍼 RNA와 결합하여 세균에 감염된 박테리오파지라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기억하고 파괴함을 규명했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고등생물에서만 존재한다고 알려졌던 후천성 면역 작용이 세균에도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그 세균에 침입하면 크리스퍼-카스 복합체가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을 인식하여 신속·정확하게 절단해낸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가 효율성과 정확성이 매우 높은 제2형 크리스퍼 Cas9 시스템을 활용해 특정 유전자 부위만을 잘라내는 유전체 교정 기법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크리스퍼 기술 활용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각기 다른 진화적 과정을 거쳐온 세균의 다양성만큼 크리스퍼 시스템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그 특성 또한 매우 특이적이다.
유전자 교정에는 주로 DNA-특이적 크리스퍼 유형이 활용되고 있었으나 최근 작동 원리가 규명된 제3형 및 제6형 RNA-특이적 크리스퍼 타입들은 유전자 교정이 아닌 다른 생명과학 기술로의 활용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표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비롯한 RNA 바이러스들의 검출과 진단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래 과학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개월 내에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한 신개념 바이러스 진단법들을 소개하였다. 대표적인 크리스퍼 RNA 바이러스 진단 기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DETECTR] 제5형 Cas12a 크리스퍼 복합체의 특성을 활용한 기술로, 83개의 코로나-양성 샘플 테스트 결과 95%의 양성 진단율과 100%의 음성 진단율을 보여줬다. 민감도는 마이크로리터당 10~100개의 RNA 분자를 검출할 수 있는 수준이다. 40분 정도 소요되며, 이는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빠른 진단법이다.
[SHERLOCK] 제6형 Cas13a 복합체의 RNA 결합 및 신호 증폭 기전을 활용한 기술이다. Cas12a와는 달리 RNA에 직접 결합하며 PAM이라는 별도의 서열 결합에 의존하지 않아서 자유도가 크다. 정확성에 초점을 맞춘 Two-Step-SHERLOCK 방식과 대용량 처리에 중점을 둔 One-Step-SHERLOCK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단일 분자를 검출할 수 있는, PCR 기법에 버금가는 민감도를 가지며 검사에 1시간 정도 소요된다.
[AIOD-CRISPR] SHERLOCK 기술과 유사한 원리로 작동하며, 청색 LED나 자외선 장치를 활용한다. Cas12a 복합체와 다양한 종류의 DNA 결합 및 합성 단백질을 혼합 조성하여 민감성과 정확성을 높였다. 특히 시료를 이리저리 옮길 필요 없이 한 지점에서 테스트 가능하며 37℃ 단일 온도만 요구되고 거의 단일 분자를 검출할 수 있는 민감도를 달성했다. 하지만 검사 시간은 최소 90분 이상이 소요된다.
[CREST] 제6형 Cas13을 이용하여 특이적으로 DNA로 역전사된 바이러스 RNA를 PCR하는 기법이다. PCR 기법과 크리스퍼 기술의 장점만을 결합한 방식으로 검출에는 청색 LED 장치가 사용된다. 전형적인 PCR 기술과 다르게 손쉽게 이동 가능하며 블루투스 연결이 가능한 포켓형 PCR 장비로 운용된다. 마이크로리터당 10개의 RNA 분자를 검출할 수 있는 민감도와 1~2시간 정도 소요되는 신속성을 갖췄다.
[FELUDA] 제2형 FnCas9이라는 DNA-특이적 복합체에 기반한 방식으로 DNA로 역전사된 바이러스 RNA를 PCR이나 RPA 방식으로 검출한다. 앞선 방식과 다르게 증폭적인 절단 효과에 의존적이지 않으며 대신에 결합력-의존성을 채택했다. FnCas9은 변이에 매우 민감하게 결합성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매우 높은 변이 진단 정확성과 민감도를 갖췄다. 소요 시간은 1~2시간 정도다.
[MORIARTY] 제3형 LICsm 크리스퍼 단백질을 이용한 최초의 진단기법이다. 역전사 과정 없이 바이러스 RNA에 직접 결합하여 마이크로리터당 2000개의 바이러스 RNA를 검출할 수 있다. 30분 이내의 별도 증폭 과정을 거치면 RNA 분자 60개 정도가 검출되는 민감도를 갖췄다. 검사에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넥스트 팬데믹’을 위한 준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팬데믹은 각국 정부의 지속적인 억제 노력과 mRNA 백신 기술 및 신개념 진단 기술의 발전으로 언젠가는 잠잠해질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인류는 지속적으로 신종 및 변종 바이러스의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높은 인구밀도와 기후변화로 인한 전염원 동물과 인간 간 접촉증가로 바이러스의 위협이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PCR 기술이 20세기 말 이후 생명과학의 혁신을 이끌어오면서 최근 신속정확한 코로나19 진단에도 큰 공헌을 했다. 21세기 초 생명과학의 또 다른 변혁을 일으키고 있는 크리스퍼 기술도 PCR 기술에 버금 가거나 더욱 뛰어난 성능의 진단기법으로 개선될 것이다.
게다가 신개념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도 크리스퍼 기술이 연구 수단으로서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인류가 미래에 새로운 바이러스 팬데믹에 직면하게 될 때, 크리스퍼 기술에 기반한 수많은 혁신적 진단 및 치료 기술의 혜택으로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저자 소개>
김성철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인간거대세포바이러스(HCMV)와 마이크로RNA를 연구하며 박사 과정을 마치고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에서 크리스퍼 면역 기억 과정에 대한 연구로 박사 후 연수 과정을 밟았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 소속 YSF 연구위원으로 분자생물학 및 단일분자 생물물리학, 세포바이러스학 기술을 활용하여 크리스퍼 후천성 면역 과정의 근본적 작용원리 및 바이러스와 인간 숙주 간 분자적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초기 방역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국가들은 신속한 유전자 증폭(PCR) 검사 체계를 갖추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체계적인 진단 및 감염자 추적 시스템을 통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해왔다.
이렇듯 새로운 진단 및 예방 기술의 신속한 도입은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바이러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한편, 인류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싸움이 한창이었던 2020년 가을,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UC버클리 교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에게 노벨화학상을 수여했다. 크리스퍼(CRISPR) 작동원리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 기법의 개발에 기여한 공로였다.
크리스퍼는 세균 DNA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규칙적·반복적인 염기서열을 일컫는다. 1987년 일본 오사카대의 나카다 교수팀이 우연히 발견하여 보고한 뒤, 2000년대 초반 스페인 알리칸테대 모히카 교수가 명명했다.
이후 여러 생명과학자들이 크리스퍼 부위 주변의 유전자에서 발현되는 카스(Cas) 단백질들이 크리스퍼 RNA와 결합하여 세균에 감염된 박테리오파지라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기억하고 파괴함을 규명했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고등생물에서만 존재한다고 알려졌던 후천성 면역 작용이 세균에도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그 세균에 침입하면 크리스퍼-카스 복합체가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을 인식하여 신속·정확하게 절단해낸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가 효율성과 정확성이 매우 높은 제2형 크리스퍼 Cas9 시스템을 활용해 특정 유전자 부위만을 잘라내는 유전체 교정 기법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크리스퍼 기술 활용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각기 다른 진화적 과정을 거쳐온 세균의 다양성만큼 크리스퍼 시스템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그 특성 또한 매우 특이적이다.
유전자 교정에는 주로 DNA-특이적 크리스퍼 유형이 활용되고 있었으나 최근 작동 원리가 규명된 제3형 및 제6형 RNA-특이적 크리스퍼 타입들은 유전자 교정이 아닌 다른 생명과학 기술로의 활용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표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비롯한 RNA 바이러스들의 검출과 진단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래 과학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개월 내에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한 신개념 바이러스 진단법들을 소개하였다. 대표적인 크리스퍼 RNA 바이러스 진단 기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DETECTR] 제5형 Cas12a 크리스퍼 복합체의 특성을 활용한 기술로, 83개의 코로나-양성 샘플 테스트 결과 95%의 양성 진단율과 100%의 음성 진단율을 보여줬다. 민감도는 마이크로리터당 10~100개의 RNA 분자를 검출할 수 있는 수준이다. 40분 정도 소요되며, 이는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빠른 진단법이다.
[SHERLOCK] 제6형 Cas13a 복합체의 RNA 결합 및 신호 증폭 기전을 활용한 기술이다. Cas12a와는 달리 RNA에 직접 결합하며 PAM이라는 별도의 서열 결합에 의존하지 않아서 자유도가 크다. 정확성에 초점을 맞춘 Two-Step-SHERLOCK 방식과 대용량 처리에 중점을 둔 One-Step-SHERLOCK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단일 분자를 검출할 수 있는, PCR 기법에 버금가는 민감도를 가지며 검사에 1시간 정도 소요된다.
[AIOD-CRISPR] SHERLOCK 기술과 유사한 원리로 작동하며, 청색 LED나 자외선 장치를 활용한다. Cas12a 복합체와 다양한 종류의 DNA 결합 및 합성 단백질을 혼합 조성하여 민감성과 정확성을 높였다. 특히 시료를 이리저리 옮길 필요 없이 한 지점에서 테스트 가능하며 37℃ 단일 온도만 요구되고 거의 단일 분자를 검출할 수 있는 민감도를 달성했다. 하지만 검사 시간은 최소 90분 이상이 소요된다.
[CREST] 제6형 Cas13을 이용하여 특이적으로 DNA로 역전사된 바이러스 RNA를 PCR하는 기법이다. PCR 기법과 크리스퍼 기술의 장점만을 결합한 방식으로 검출에는 청색 LED 장치가 사용된다. 전형적인 PCR 기술과 다르게 손쉽게 이동 가능하며 블루투스 연결이 가능한 포켓형 PCR 장비로 운용된다. 마이크로리터당 10개의 RNA 분자를 검출할 수 있는 민감도와 1~2시간 정도 소요되는 신속성을 갖췄다.
[FELUDA] 제2형 FnCas9이라는 DNA-특이적 복합체에 기반한 방식으로 DNA로 역전사된 바이러스 RNA를 PCR이나 RPA 방식으로 검출한다. 앞선 방식과 다르게 증폭적인 절단 효과에 의존적이지 않으며 대신에 결합력-의존성을 채택했다. FnCas9은 변이에 매우 민감하게 결합성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매우 높은 변이 진단 정확성과 민감도를 갖췄다. 소요 시간은 1~2시간 정도다.
[MORIARTY] 제3형 LICsm 크리스퍼 단백질을 이용한 최초의 진단기법이다. 역전사 과정 없이 바이러스 RNA에 직접 결합하여 마이크로리터당 2000개의 바이러스 RNA를 검출할 수 있다. 30분 이내의 별도 증폭 과정을 거치면 RNA 분자 60개 정도가 검출되는 민감도를 갖췄다. 검사에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넥스트 팬데믹’을 위한 준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팬데믹은 각국 정부의 지속적인 억제 노력과 mRNA 백신 기술 및 신개념 진단 기술의 발전으로 언젠가는 잠잠해질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인류는 지속적으로 신종 및 변종 바이러스의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높은 인구밀도와 기후변화로 인한 전염원 동물과 인간 간 접촉증가로 바이러스의 위협이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PCR 기술이 20세기 말 이후 생명과학의 혁신을 이끌어오면서 최근 신속정확한 코로나19 진단에도 큰 공헌을 했다. 21세기 초 생명과학의 또 다른 변혁을 일으키고 있는 크리스퍼 기술도 PCR 기술에 버금 가거나 더욱 뛰어난 성능의 진단기법으로 개선될 것이다.
게다가 신개념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도 크리스퍼 기술이 연구 수단으로서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인류가 미래에 새로운 바이러스 팬데믹에 직면하게 될 때, 크리스퍼 기술에 기반한 수많은 혁신적 진단 및 치료 기술의 혜택으로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저자 소개>
김성철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인간거대세포바이러스(HCMV)와 마이크로RNA를 연구하며 박사 과정을 마치고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에서 크리스퍼 면역 기억 과정에 대한 연구로 박사 후 연수 과정을 밟았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 소속 YSF 연구위원으로 분자생물학 및 단일분자 생물물리학, 세포바이러스학 기술을 활용하여 크리스퍼 후천성 면역 과정의 근본적 작용원리 및 바이러스와 인간 숙주 간 분자적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