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란 듯이 대출받아 집 샀다가 3년 만에 '두배'
"가족 간에 손실에 대한 원망 보다는, 자산관리 방향 맞춰가야"
부동산은 주식 못지 않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한번 마음에 드는 물건을 놓치면 다시 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시장 분위기에 따라 매물이 넘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매물의 씨가 마르기도 한다. 같은 아파트의 같은 면적이라고 하더라도 층향 혹은 인테리어 상태에 따라 매매가가 차이나기도 한다. 주식이나 가상자산과 같이 언제든 살 수 있고 뭘 사도 자산이 일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인 사이나 부부간에 '자산관리 궁합'이 맞지 않을 때에는 다툼이 파경으로 치닫기도 한다. 부동산 관련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는 '부동산 때문에 다퉜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식이나 가상자산 등과 같이 공격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남성과 안정적인 성향이 강한 여성이 충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국가대표 와이프>에서도 부동산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주인공들의 이름부터 부동산을 빗댄 모습이다. 여주인공은 서초희(한다감 분)이고 남편은 강남구(한상진 분)다. 드라마는 남편이 전재산을 올인한 펀드가 반토막나면서 탈강남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기획의도는 집 자체보다는 '행복'을 중시한다는 가족 드라마다. 하지만 가족문제의 시발점이 최근 불거지고 있는 '벼락거지'와도 유사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드라마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일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가 진행하는 '고준석TV'는 자산관리 방향이 맞지 않아 헤어진 연인의 사례를 조명했다. 이 사례는 단순히 다툼과 이별로 끝나지 않았다. 헤어진 후에도 자신의 자산관리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최근에 이르게 된 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다.
A씨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하면서 '재테크'나 '돈 관리' 등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자산을 묶어두기 보다는 주식투자를 통해 굴리자는 쪽이었다. 실제 주식계좌에는 투자한 흔적이 고스란히 있었다. 반면 A씨는 '내 집 마련'을 먼저 하자는 쪽이었다. 이미 결혼자금을 위해 6000만원까지 차곡차곡 모아놓은 상태였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탓에 매번 이사다니기 지친데다, 매번 오르는 보증금이나 월세를 감당하느니 대출이 낫다고 판단했다.
남자친구는 집을 사고 매달 꼬박 빠져나가는 대출금을 감당하는 것 보다는, 전월세로 살면서 여유자금을 주식으로 불려나가자는 쪽이었다. A씨는 내 집 마련이 먼저라고 설득했지만, 남자친구는 대출에 전혀 뜻이 없었다. 그렇게 다투던 끝에 결국 이별을 맞았다. A씨는 이별의 슬픔에 빠지기 보다는 '보란듯이 잘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2018년 4월 회사에서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선배의 추천을 받아 노원구 중계동에 아파트를 보러갔다. A씨는 거칠 것이 없었다. 월요일에 부동산을 보러가서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했다. 전용면적 49㎡의 당시 매매가는 3억15000만원이었고, 전셋값은 1억8000만원이었다. 전세를 끼고 결혼준비자금 6000만원에 신용대출 7000만원을 받았다.
지방에 사는 어머니는 호통을 쳤다. 남자친구랑 헤어진 것도 안타까운 와중에 빚까지 지고 집을 샀다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별의 후유증을 겪고 있던 A씨는 "엄마, 나 당분간 결혼할 일 없고, 이제 결혼자금도 묶여 있어서 결혼할 수도 없어"라며 철벽을 쳤다.
이후 A씨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일에 매진하다가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는 지난달 6억7700만~6억7900만원에 거래됐다. 나와있는 매물의 호가는 6억후반~7억원대다. 전세시세는 3억원가량이다. 3년 8개월 만에 집값이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A씨는 집값이 얼마 올랐다는 것도 기분이 좋지만,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내가 맞다'는 모습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고 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비록 사연자는 홧김에 저지른 일이 약이 됐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가족 간에 자산관리 방향이나 의견이 맞는 게 중요하다"면서 "다양한 상황에 따라 손실이 나거나 문제가 닥쳤을 때, 서로를 원망하기 보다는 철저히 공부하고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