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우버’로 불리는 싱가포르의 차량 공유·호출 서비스 업체 그랩이 상장 첫날 20% 이상 급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에서 그랩 주가는 13.06달러에 거래를 시작해 장 초반 상승했지만 이후 다시 20% 넘게 급락해 8.75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그랩은 투자회사 알티미터캐피털이 세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인 알티미터그로스와의 합병을 통해 이날 처음 주식 거래가 시작됐다.

딜로직에 따르면 스팩 합병을 통해 인정받은 그랩의 기업가치는 370억달러(약 43조6200억원)에 달했다. 자금 조달 규모도 45억달러가량 됐다. 이는 스팩 합병 역사상 최대 규모다. 알티미터캐피털이 부족한 그랩 인수 자금을 모으기 위해 주도한 상장 지분 사모투자(PIPE)에는 블랙록, 티로프라이스, 모건스탠리 산하 자산운용사 카운터포인트 등 내로라하는 큰손이 대거 포진했다. 그러나 시장 주목도에 비해 상장 직후 주가 흐름이 시원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랩의 주가가 폭락하기 전까지 싱가포르에선 잠시 동안 새로운 억만장자가 탄생했었다’는 제목으로 그랩의 초라한 상장 성적표를 전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그랩 주가 하락으로 당초 10억달러를 가뿐히 넘어섰던 앤서니 탠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의 지분가치가 7억2500만달러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랩의 기업공개 시점이 좋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이후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차량 공유 서비스 사업이 크게 흔들린 가운데 최근 들어선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세계 이동 및 여행에 대한 또 다른 봉쇄 조치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싱가포르에 설립된 그랩은 현재 동남아 400여 개 도시에서 차량 호출, 배달,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국 최대 차량 호출업체 디디추싱과 일본 도요타자동차, 소프트뱅크그룹의 비전펀드 등이 상장 전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