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예약제 베이비카페
놀면서 또래 만나 사회성 키울 시기
두뇌발달 위해 오감 자극도 필요
2021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처음엔 마냥 예뻐해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먹고 자는 게 다가 아니고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을 하려면 '놀이'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육아에 지친 아내를 위해 체력이 조금이라도 좋은 아빠가 나서야겠다 싶었습니다. 아빠는 처음이라 정답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편집자주]매주 금요일이 되면 휴일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곤 합니다. 혼자 지내던 시절에야 나에게 재미있는 일을 쉽게 골라서 하면 됐지만, 이제는 가족 모두가 즐거울 일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무엇이 좋고 싫은지 말하지 못하는 아이의 취향을 맞추기는 더 까다롭게 느껴집니다.
그러던 중 육아 커뮤니티에서 '베이비카페'라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놀거리가 가득 마련됐다는 점은 키즈카페와 같지만, 더 어린 유아만을 위한 장소라네요. 간혹 쇼핑몰에 가면 지나쳤던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이 흥분한 모습을 봤던지라 베이비카페가 왜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됐습니다. 걸음마도 못하는 유아에게는 위험천만한 장소로 보였죠. 딸아이가 베이비카페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장난감을 찾고 또래 친구도 만나며 안전하게 놀 수 있겠다는 생각에 휴일을 이용해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찾아보니 인근에 3곳이 있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20곳 가까이 있는 키즈카페에 비해 적긴 하더군요. 베이비카페는 예약이 필요했습니다. 예약을 하고 방문하니 아담한 공간에 여러 놀거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기저귀를 교체나 식사를 위한 장소는 놀잇감과 분리되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먼저 아이를 안고 탈 수 있는 미끄럼틀에 도전했습니다. 낯선 장소에 와서 긴장했을 아이를 위해 스킨십을 유지하면서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미끄럼틀 아래는 볼풀장처럼 꾸며져 있었기에 부담없이 타봤습니다. 두어번 반복하니 딸아이도 싫어하진 않는 눈치였습니다. 아이가 꺄르르 웃진 않았지만 아내가 "좋대. 웃는다"며 알려줬거든요.
아이를 장난감 집에 앉히고 밖에 숨었다가 벨을 누르고 나타나니 아이가 씨익 웃으며 좋아합니다. 마침 한 아이가 걸음마보조기를 밀며 지나가기에 "저기 친구있다! 친구! 와, 엄청 잘 민다!"라고 딸아이에게 알려줬습니다. 딸아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그 아이가 걷는 모습을 관찰하더군요.
아직까지 딸아이는 예방접종을 맞으러 병원에 가는 때 외에 또래 아이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작년부터 태어난 아이들은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또래의 다른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이 시가 유아들은 사회성이 발달하면서 부모 이외의 대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적은 수의 사람을 보여줘 점차 다양한 사람을 마주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이 점에서 소수 예약제 베이비카페는 좋은 대안이 됩니다. 눈썰미가 좋은걸까요. 딸아이는 처음 보는 걸음마보조기를 손에 쥐어주자 제법 잘 밀었습니다. 물론 느리고 걸음이 꼬이기도 했습니다만 첫 시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는 "어떻게 한 번 보고 저렇게 잘 하지? 우리 딸 천재다!"라며 감탄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 아닌가 약간 걱정도 됩니다.
다만 그 외의 장난감들에는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예정됐던 1시간이 끝났습니다. 비용은 아이와 보호자 2인 입장료에 보호자 식사까지 더해 약 2만6000원이 나왔습니다. 미끄럼틀과 장난감 집, 걸음마 보조기 정도를 이용한 것 치고는 제법 비싼 느낌입니다. 적어도 걸음마는 떼고 방문해야 더 가성비 좋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그랬을까요? 아이들이 물고 빤 장난감이 즉시 세척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고 저녁에는 간단한 촉감놀이를 했습니다. 바닥에 깨끗한 김장용 비닐을 깔고 쌀튀밥을 뿌려 아이가 기어다니며 집어먹을 수 있도록 해봤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늘에서 과자가 쏟아지는 상상을 해보기 마련입니다.
상상이 현실로 이뤄진다면 더 즐겁겠죠. 쌀튀밥을 찾아 손에 쥐고 먹는 과정들이 오감을 자극해 뇌를 발달시킬 수도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만에 하나 아이가 놀이를 싫어할 가능성도 생각해 쌀튀밥은 종이컵 3컵 정도의 양만 사용했습니다. 아이가 좋아할꺼라 생각했는데, 딸아이는 먹을 것들이 바닥에 있으니 어리둥절했던 모양입니다. 쌀튀밥을 바라보면서도 먹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몇개 집어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딸아이 입에도 두어개 넣어줬습니다. 입에 들어온 쌀튀밥은 꿀떡꿀떡 잘 먹으면서도 직접 집어먹진 않더군요.
딸아이는 손에 쥐었던 쌀튀밥도 뭉개거나 던지고는 비닐 밖으로 휘적휘적 기어갔습니다. '베이비카페도 그냥 그랬고…오늘 놀이는 죄다 실패인가', '아예 안 먹는 것도 아니고 먹여주는 것만 먹는건 뭐지' 등의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스칩니다.
쌀튀밥을 정리하는 모습을 아내가 보고는 "기왕 비닐을 깔았으니 이것도 해보자"며 스테인리스 그릇을 가져옵니다. 물에 불린 미역이 들어있네요. 요리에 쓰려던 것 보다 많이 꺼내서 남았다고 합니다. 쌀튀밥을 모두 치운 뒤 따듯한 물기를 머금은 미역을 아이 앞에 펼쳤습니다.
눈썹에 붙이고 손목에도 올려주니 신기한듯 조물조물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촉감이 신기했던걸까요. 앞에 널브러진 미역을 양 손으로 박수치듯 때리고 당겨도 보며 가지고 놉니다. 적어도 쌀튀밥보단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놀이를 하고 아이 목욕을 준비했습니다. 딸아이는 욕조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자기 얼굴만한 미역줄기를 양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뺏으려 하니 턱을 부들부들 떨면서 버티더군요. 딸아이 놀이나 장난감 취향이 단순한 듯 하면서도 난해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베이비카페보다는 집안 놀이가 가성비는 나은 것 같습니다. 치우는 건 아빠의 몫이지만요.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