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공동 창업자이자 최장 CTO, 버려지던 배터리로 37억달러 기업 일궈
전기자동차(EV)는 친환경적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주행 과정에서 배기가스 배출량은 0에 수렴하지만 전기차의 동력인 배터리를 놓고 보면 사정이 다르다. 원료를 채굴하고 제조·폐기하는 과정은 친환경적이지 않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업가가 있었다. J B 스트라우벨(사진·45)이다. 그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를 공동 창업한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15년간 테슬라 최고기술책임자(CTO)로도 일했다. 테슬라가 지금의 위치로 올라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로 꼽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그가 없었으면 테슬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할 정도다. 2019년 그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친환경적으로 만들겠다”며 테슬라를 박차고 나왔다.

머스크와의 인연

스트라우벨은 ‘천생 엔지니어’다. 그의 증조부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보트 엔진을 생산하는 회사를 세웠다. 그 자신도 무언가를 만드는 걸 즐겼다.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10대 때부터 시작됐다. 망가진 전기 골프 카트를 발견한 스트라우벨은 카트가 다시 작동할 수 있게 고쳤다. 스탠퍼드대에 들어가서도 관심은 이어졌다. 포르쉐를 폐차장에서 구입해 전기차로 개조했다.

테슬라 공동 창업자이자 최장 CTO, 버려지던 배터리로 37억달러 기업 일궈
스탠퍼드를 졸업한 뒤 하이브리드 차량 제작 회사 로젠모터스와 우주항공회사 볼라컴을 거쳤다. 엔지니어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그는 2003년 머스크와 점심을 먹게 된다. 당시 머스크는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을 매각해 큰 수익을 올린 실리콘밸리의 백만장자였다.

스트라우벨은 전기항공기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머스크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배터리’다. 스트라우벨은 노트북과 가전제품에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 기술이 충분히 발전했다고 봤다. 스트라우벨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나는 그에게 1000마일을 갈 수 있는 리튬이온배터리 팩을 사용하는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은 나를 미쳤다고 생각했겠지만 머스크는 내 아이디어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열정을 공유하던 두 사람은 그때부터 연을 맺게 된다. 테슬라에 투자한 머스크는 2004년 그를 회사의 CTO로 영입했다. 테슬라가 2016년 미국 네바다주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할 때까지 스트라우벨은 트레일러에서 살다시피 하며 기틀을 닦았다.

2008년 출시된 테슬라의 전기차 로드스터에 들어간 배터리 팩과 전기모터 디자인부터 모델S, X, 3, Y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전기차를 향한 스트라우벨의 지식과 열정은 머스크의 장점과 맞물려 숱한 위기에서도 테슬라를 지켜냈다.

하지만 그는 2019년 테슬라를 떠났다. 그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발명하고 창조하는 것을 좋아하고, 삶을 바꿔내고 싶은 사람”이라고 했다. 스트라우벨은 2017년 설립한 배터리 재활용 기업 레드우드 머티리얼즈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만 볼 수 있는 것

레드우드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운 기업이다. 일견 친환경처럼 보이는 전기차가 배터리 생산과 폐기 과정에선 그렇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테슬라에서의 경험이 스트라우벨을 일깨웠다. 배터리에 대해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EV 산업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테슬라에서 이런 점이 거슬렸고 사업이 커지면서 문제는 더 분명해졌다”고 고백했다. CNBC는 스트라우벨을 두고 “자동차가 더 친환경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에 열정을 쏟아부은 유일한 테슬라 설립자”라고 평가했다.

레드우드는 수명이 다한 리튬이온배터리를 분해해 원재료를 회수한다. 공정을 거치면 폐배터리에서 기존에 사용된 리튬 80%, 니켈, 구리, 코발트 95~98% 이상을 회수할 수 있다. FT에 따르면 레드우드는 이미 4만5000개분의 배터리를 새로 만들 수 있는 규모의 자재를 회수했다.

레드우드의 성장 가능성도 높다는 전망이다. 전기차 시장이 커질수록 수혜를 보는 구조여서다. 블룸버그NEF는 세계 자동차 판매량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뒤에는 70%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친환경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국, 유럽 정부와 방향성을 같이한다.

성장 궤도 오른 배터리 재활용 사업

레드우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7월 7억달러 상당의 자금을 조달했다. 과거에 있었던 여섯 번의 투자 유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다. 기업가치는 37억달러(약 4조3800억원)로 추산된다. 북미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배터리 재활용 업체가 됐다.

스트라우벨은 2025년까지 연간 100GWh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네바다주에 3개의 가동시설을 갖추고 있는 레드우드는 동부 쪽 부지를 물색 중이다. 2023년까지 유럽에도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 일본 전자업체 파나소닉 등과도 제휴를 맺었다. 레드우드는 전기 폐기물을 분말 형태로 분해해 다시 공급하고 있다.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FT는 레드우드가 리튬이온배터리를 1분 안에 분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