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총리로 재직하고 퇴임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퇴임식에서 연주된 곡 중 한 곡을 직접 골라 주목받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독일인들이 메르켈 총리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됐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퇴임식에서 연주된 세 곡 가운데 한 곡을 직접 골랐다. 이 곡은 1974년 동독에서 크게 유행한 노래로 서독으로 탈출해 독일 통일 이전까지 펑크 문화를 주도한 니나 하겐이 불렀다.

"넌 컬러 필름을 잊었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동독의 유명한 휴양지 히덴제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뒤 남자친구가 흑백필름으로만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화를 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노래는 컬러 필름을 구하기 힘들어 회색빛으로 음울하게 그려졌던 독일민주공화국을 비판한 가사를 지녔다. "예전에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대목이 인상깊은 구절로 유명하다.

메르켈 총리가 이 노래를 고르자 많은 독일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메르켈 총리는 16년간 총리로 재임하면서 과거 동독에서 성장한 시절을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타게스슈피겔지는 메르켈 총리가 직접 이 노래를 골랐다는 것이 발표되자 "메르켈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동독 사람임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메르켈은 다음주 후임자 올라프 숄츠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공식 은퇴한다.

메르켈 총리는 자신이 왜 이 노래를 골랐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재치 있는 농담이나 우스꽝스러운 다른 정치인 흉내내기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총리실에서 내 노래를 골랐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았다면서 이 나라의 다른 좋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썼다. 하겐은 노래 가사를 아동성착취로 기소돼 2009년 재판이 열리기 직전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을 맨 쿠르트 데믈러가 썼다는 주장처럼 엉터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92년 메르켈 총리와 하겐은 만난 적이 있다. 여성청소년부 장관이던 메르켈 총리가 약물중독에 관한 TV 토론에서 하겐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토론이 과열되자 하겐이 메르켈 총리에게 소리쳤다. "당신의 거짓말, 당신의 위선에 질려버렸다"고 말이다.

기이한 머리 모양과 화장으로 유명한 하겐은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기 전인 1970년대부터 유명한 팝스타였다. 하겐은 팝 순위에 오르내리면서 1980년대 펑크의 아이콘이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