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란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후배들, 일희일비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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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 투어 17년 활동한 홍란 은퇴 기념 인터뷰
356개 대회 최다 출전, 287경기 커트 통과, 1043 라운드 플레이
한국여자골프 역사 새로 써
356개 대회 최다 출전, 287경기 커트 통과, 1043 라운드 플레이
한국여자골프 역사 새로 써
17년 동안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를 지키며 여자 골프의 새 역사를 써온 홍란(35·사진)이 투어를 떠난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356개 대회 최다 출전, 287경기 커트 통과, 1043 라운드 플레이 등의 기록이 남았다. 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만난 그는 "시원하고 홀가분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2005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그는 2008년 레이크사이드 여자오픈을 시작으로 통산 4승을 쌓았다. 17년간 시드를 유지해왔지만 올 시즌 상금 순위 78위에 머물자 은퇴를 결심했다.
홍란은 스스로를 "화려하지는 않은 선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초'라는 수식어는 한국 여자골프에서 그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KLPGA 투어 최초로 300 대회 참가, 1000라운드 돌파 기록을 세웠고 정규투어에서 10년 이상 연속으로 활동한 선수들의 모임인 'K-10 클럽'의 첫번째 회원도 바로 그다. 꾸준함이 빚어낸 아름다움이다. 그는 17년간 꾸준한 경기력을 보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으로 "후원사들의 든든한 지원"을 꼽았다. 그는 소속사인 삼천리와 8년, 클럽 후원사 야마하 10년, 의류후원사 엠유와 12년 간 인연을 이어왔다. 성적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프로선수 후원시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례로 꼽힌다. 홍란은 "늘 잘할 수는 없고 성적에 기복도 있었지만 후원사들이 믿고 지원해주셔서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만득 삼천리 회장은 사석에서 홍란을 "우리 넷째딸"이라고 부를 정도로 각별하게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회장님은 처음 후원계약을 맺을 때 '만 35살까지는 활동할 것, 다른 활동에 눈돌리지 말고 운동에만 집중해줄 것, 은퇴 후에는 후배 양성에 도움이 되어줄 것' 세가지를 약속하자고 하셨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 선수생활의 큰 틀을 잡아주신 말씀이었죠."
이갑종 오리엔트골프 회장도 잊을 수 없는 은인이다. 홍란은 "클럽 관련 미팅 때마다 꼭 회장님이 시간을 내어주셨다"며 "클럽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다. 저희의 의견을 클럽 개발에 반영되게끔 귀담아 들어주시고 일본에서 피팅까지 주선해주실 정도로 열정적으로 후원선수들을 챙겨주는 분"이라고 말했다.
17년간 치열한 정규투어에서 살아남은 그에게 골프는 어떤 존재일까. 홍란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답했다. 후원사, 가족, 캐디와 코치 등의 도움이 필수적이지만 필드 위에서는 오롯지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고독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준비하고 나선 대회에선 90%는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준비가 좀 부족하고 불안한 대회에서는 의외로 좋은 성적이 나오곤 해요.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되는데 그 작은 욕심때문에 미스샷이 나고,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은 순간 행운이 와요. 정말 인생과 비슷하지 않나요?"
프로데뷔 4년차였던 2008년 두번째 우승을 거둔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1~3년차때 아버지가 캐디를 해주셨는데 첫승때 공교롭게 아버지가 아닌 다른분이 캐디를 해주셨어요. 우승 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2주 뒤에 열린 대회에서 아버지와 함께 나서서 우승을 거뒀어요. 마지막날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하나하나 기억날 정도입니다." 투어 생활을 마무리하며 홍란은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지난달 30일 열린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올 시즌 첫 신설된 '아름다운 기부상'의 첫 수상자가 된 것. KLPGA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아름다운 기부를 실천한 선수에게 주는 상으로, 지난 6월 '1000라운드 출전'을 기념해 1000만원을 KLPGA에 기부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올 시즌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대회 상금을 투어 비용으로 쓰기도 빠듯했기에 1000만원이 저에게도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면서도 "그래도 제가 만들어낸 기록을 기념해 기부를 할 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정말 행복했는데 이런 귀한 상까지 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어제 집에서 돌아보니 우승 트로피 외에도 다양한 상을 참 많이 받았더군요. 제가 정말 사랑받으며 행복한 투어생활을 했다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KLPGA투어의 '큰 언니' 자리를 내려놓는 지금, 그는 이제 투어에 입문하는 루키들에게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1년만 생각해도 100라운드 정도 뛰게 될 거예요. 그 중에서 몇 경기, 몇 라운드 못하더라도 빨리 털어내고 잘한 순간의 기억에 집중하고 그 감각을 살리려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그는 "분명 많은 실수가 나올 것이고 좌절하는 날이 있을 것"이라며 "그런 날은 기억에서 지우고 한 주, 한 달, 1년으로 길게 보고 달려달라. 그것이 홍란의 롱런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홍란은 내년 4월 은퇴경기를 끝으로 투어를 떠난다. 이후에는 소속사인 삼천리가 여자 골프 꿈나무 육성을 위해 운영하는 '삼천리 골프 아카데미'에서 멘토로 활동하며 인생 2막을 열 예정이다. "올 시즌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에쓰오일 챔피언십에서 안송이(31)프로가 은퇴 결정을 축하해주며 '제가 언니 기록을 꼭 뛰어넘겠다'고 했는데 그 말이 그렇게 고맙고 예뻐보이더라구요. 앞으로 많은 후배들이 제가 만든 기록을 넘어설테고 그때마다 제 이름도 다시 한번 언급될 것이라는 점이 정말 감사하지요."
홍란은 "앞으로 더 많은 후배들이 저보다 더 오래 활동해서 한국 여자골프에 풍성한 이야기를 남겨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2005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그는 2008년 레이크사이드 여자오픈을 시작으로 통산 4승을 쌓았다. 17년간 시드를 유지해왔지만 올 시즌 상금 순위 78위에 머물자 은퇴를 결심했다.
홍란은 스스로를 "화려하지는 않은 선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초'라는 수식어는 한국 여자골프에서 그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KLPGA 투어 최초로 300 대회 참가, 1000라운드 돌파 기록을 세웠고 정규투어에서 10년 이상 연속으로 활동한 선수들의 모임인 'K-10 클럽'의 첫번째 회원도 바로 그다. 꾸준함이 빚어낸 아름다움이다. 그는 17년간 꾸준한 경기력을 보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으로 "후원사들의 든든한 지원"을 꼽았다. 그는 소속사인 삼천리와 8년, 클럽 후원사 야마하 10년, 의류후원사 엠유와 12년 간 인연을 이어왔다. 성적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프로선수 후원시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례로 꼽힌다. 홍란은 "늘 잘할 수는 없고 성적에 기복도 있었지만 후원사들이 믿고 지원해주셔서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만득 삼천리 회장은 사석에서 홍란을 "우리 넷째딸"이라고 부를 정도로 각별하게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회장님은 처음 후원계약을 맺을 때 '만 35살까지는 활동할 것, 다른 활동에 눈돌리지 말고 운동에만 집중해줄 것, 은퇴 후에는 후배 양성에 도움이 되어줄 것' 세가지를 약속하자고 하셨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 선수생활의 큰 틀을 잡아주신 말씀이었죠."
이갑종 오리엔트골프 회장도 잊을 수 없는 은인이다. 홍란은 "클럽 관련 미팅 때마다 꼭 회장님이 시간을 내어주셨다"며 "클럽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다. 저희의 의견을 클럽 개발에 반영되게끔 귀담아 들어주시고 일본에서 피팅까지 주선해주실 정도로 열정적으로 후원선수들을 챙겨주는 분"이라고 말했다.
17년간 치열한 정규투어에서 살아남은 그에게 골프는 어떤 존재일까. 홍란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답했다. 후원사, 가족, 캐디와 코치 등의 도움이 필수적이지만 필드 위에서는 오롯지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고독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준비하고 나선 대회에선 90%는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준비가 좀 부족하고 불안한 대회에서는 의외로 좋은 성적이 나오곤 해요.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되는데 그 작은 욕심때문에 미스샷이 나고,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은 순간 행운이 와요. 정말 인생과 비슷하지 않나요?"
프로데뷔 4년차였던 2008년 두번째 우승을 거둔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1~3년차때 아버지가 캐디를 해주셨는데 첫승때 공교롭게 아버지가 아닌 다른분이 캐디를 해주셨어요. 우승 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2주 뒤에 열린 대회에서 아버지와 함께 나서서 우승을 거뒀어요. 마지막날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하나하나 기억날 정도입니다." 투어 생활을 마무리하며 홍란은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지난달 30일 열린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올 시즌 첫 신설된 '아름다운 기부상'의 첫 수상자가 된 것. KLPGA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아름다운 기부를 실천한 선수에게 주는 상으로, 지난 6월 '1000라운드 출전'을 기념해 1000만원을 KLPGA에 기부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올 시즌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대회 상금을 투어 비용으로 쓰기도 빠듯했기에 1000만원이 저에게도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면서도 "그래도 제가 만들어낸 기록을 기념해 기부를 할 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정말 행복했는데 이런 귀한 상까지 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어제 집에서 돌아보니 우승 트로피 외에도 다양한 상을 참 많이 받았더군요. 제가 정말 사랑받으며 행복한 투어생활을 했다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KLPGA투어의 '큰 언니' 자리를 내려놓는 지금, 그는 이제 투어에 입문하는 루키들에게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1년만 생각해도 100라운드 정도 뛰게 될 거예요. 그 중에서 몇 경기, 몇 라운드 못하더라도 빨리 털어내고 잘한 순간의 기억에 집중하고 그 감각을 살리려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그는 "분명 많은 실수가 나올 것이고 좌절하는 날이 있을 것"이라며 "그런 날은 기억에서 지우고 한 주, 한 달, 1년으로 길게 보고 달려달라. 그것이 홍란의 롱런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홍란은 내년 4월 은퇴경기를 끝으로 투어를 떠난다. 이후에는 소속사인 삼천리가 여자 골프 꿈나무 육성을 위해 운영하는 '삼천리 골프 아카데미'에서 멘토로 활동하며 인생 2막을 열 예정이다. "올 시즌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에쓰오일 챔피언십에서 안송이(31)프로가 은퇴 결정을 축하해주며 '제가 언니 기록을 꼭 뛰어넘겠다'고 했는데 그 말이 그렇게 고맙고 예뻐보이더라구요. 앞으로 많은 후배들이 제가 만든 기록을 넘어설테고 그때마다 제 이름도 다시 한번 언급될 것이라는 점이 정말 감사하지요."
홍란은 "앞으로 더 많은 후배들이 저보다 더 오래 활동해서 한국 여자골프에 풍성한 이야기를 남겨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