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거래 전용 반도체 '아이온'
1위 인텔 제품보다 30% 빨라
아마존·TSMC 앞다퉈 러브콜
직원 절반, 삼성·SK 출신 개발자
박 대표 "절대 자율이 기업문화"
창업 1년 만에 AI 반도체 ‘정상’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37·사진)는 6일 “모건스탠리, JP모간이 아이온을 테스트하고 싶다고 연락해와 조만간 전달할 예정”이라며 “고객사 의견을 반영해 내년에 정식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외 주요 금융투자사들은 각종 거래 시스템에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A100을 쓰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두루 쓸 수 있는 제품이다. 리벨리온의 아이온은 맞춤형 반도체로 파이낸스 분야에서는 A100보다 처리 속도가 열 배 이상 빠르다. 신속한 정보 분석과 거래가 생명인 글로벌 투자업계가 아이온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설립된 지 1년3개월 된 새싹기업이다. 세계적으로도 팹리스 업체가 설립 후 1년여 만에 첫 제품을 출시한 사례는 없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회사) 기업인 대만의 TSMC가 아이온 제작을 맡은 것도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 반도체 쇼티지(공급 부족) 상황에서 TSMC가 신생 기업의 일감을 맡았기 때문이다.
“놀아도 좋다, 국가대표 다 모여라”
핵심 경쟁력은 인력이다. 설립 초기부터 ‘국가대표급’ 반도체 개발자가 다 모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대표는 인텔, 삼성, 스페이스X를 거쳐 모건스탠리에서 퀀트(계량 분석) 개발자로 근무했다. 오진욱 최고기술책임자(CTO)는 IBM 왓슨연구소에서 AI 반도체 수석설계자로 근무했다.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에서 딥러닝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한 김효은 최고제품책임자(CPO)도 리벨리온에 합류했다.세계 최대 팹리스 ARM,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박사급 베테랑 개발자도 리벨리온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첫 제품이 나오지도 않은 창업 1년여 만에 300억원 이상을 투자받을 만큼 ‘특별한’ 이력서가 그득했다.
박 대표는 그러나 “삼성과 SK하이닉스 등이 수년 동안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룬 세계 최고의 반도체 산업 환경에서 리벨리온은 단지 깃발을 꽂았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리벨리온의 직원 절반 정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이다. 이들의 경험이 리벨리온의 핵심 자산이라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최근 리벨리온에 먼저 연락했다. 리벨리온의 다음 AI 반도체 ‘아톰’을 5나노 공정으로 함께 만들기로 했다.
모든 직원이 오너십 갖고 업무처리
리벨리온에는 중간 관리자, 인사 평가가 없다. 박 대표는 “모든 직원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오너십을 갖고 중간보고 없이 업무를 알아서 처리한다”며 “‘프리 라이더’(무임승차자) 한 명 잡겠다고 나머지 직원의 자율성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빠른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주어진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근무 환경도 조성했다. 회의보다는 토론과 발표가 더 많다. 그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특유의 비효율 상황인 연구를 위한 연구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업무 속도를 높이기 위해 코로나19 확산에도 재택근무를 하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관련 직원들이 회사에서 바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리벨리온은 올해 아이온, 내년 아톰, 2023년 ‘리벨’ 등 맞춤형 AI 반도체를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데이터센터용 반도체인 아톰은 아직 시제품이 나오지도 않았지만 세계 1위 클라우드업체인 아마존이 리벨리온에 먼저 협업 요청을 해왔다. 박 대표는 “리벨리온을 제2의 삼성전자, 제2의 엔비디아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