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담합 행위에 대해 대표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을 인정한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표가 회사에서 일어난 불법 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해도, 감시·감독 의무를 게을리했다면 주주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大法 "대표가 담합 몰랐어도…감시의무 소홀로 배상 책임"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민사 제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달 11일 동국제강의 소액주주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을 상대로 “회사에 손해 배상을 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철강제조·가공업체인 유니온스틸은 다른 기업들과 2005~2010년 아연도강판, 내연강판 등의 가격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320억원의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았다. 유니온스틸은 동국제강의 계열사였고 장 회장은 2004~2011년 유니온스틸 대표로 재직했다. 유니온스틸은 이후 2015년 1월 동국제강으로 흡수합병됐다.

유니온스틸 소액주주였던 A씨는 회사 감사위원들에게 “감시 의무를 위반한 장 회장에게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자 2014년 12월 직접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법원은 장 회장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장 회장이 의도적으로 임직원의 불법 행위를 방치하거나 내부통제를 통한 감시·감독 의무를 외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재판부는 “기업에서 이사들이 각자 전문 분야를 맡고 있다고 해도, 대표는 다른 이사의 업무 집행이 위법하지 않은지 감시할 의무를 가진다”며 “담당 임원의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담합 행위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가 이를 인지하지 못해 견제 혹은 제지하지 못했다면 결국 내부통제시스템을 외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표가 감시 의무를 게을리한 결과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선 최근 법원에서 대표 등 임원에게 준법경영 의무를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이번 판결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지난 9월 서울고등법원은 대우건설 소액주주들이 서종욱 전 대표 등 임원을 상대로 “4대강 입찰 담합을 막지 못해 공정위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 280억원에 대해 손해 배상하라”며 청구한 소송에서 1심을 깨고 서 전 대표와 사내·외 등기이사 책임을 인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담합뿐만 아니라 산업재해와 중대재해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감시 의무는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시스템이 적절하게 작동했음을 보여줘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