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동상.
카이사르 동상.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혼란의 시기,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갈림길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로마의 역사에서 해답을 구했다. 로마가 걸었던 길은 후대인에겐 올바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이정표가 됐다. 로마를 이끌었던 리더들은 살피고 따라야 할 모범으로 끊임없이 경배되고 연구됐다. 세계화와 4차 산업혁명 물결이 거센 현대세계에서조차 그들은 리더십의 훌륭한 본보기로 여겨진다.

[책마을] 로마 리더 4人에게 배우는 통치의 지혜
《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등 로마를 일군 네 명의 리더를 통해 로마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를 살핀다. 로마사를 전공한 국내의 현역 권위자가 로마사의 주요 장면을 풀어낸다. 저자가 소개하는 네 리더의 덕목은 로마가 세계제국을 일구고, 1000년을 훌쩍 넘겨 존속할 수 있었으며, 후대에 영원히 지속되는 권위를 남긴 원인을 밝히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장을 연 인물은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는 탁월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였다. 그는 힘의 균형, 권력의 향배에 민감했다. 힘이 없을 때는 정치세력을 끌어모아 제휴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에 비해 경륜이 부족해 불리한 경쟁을 해야 했던 카이사르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며 판을 흔들었다. 위기의 순간에는 과감하게 결단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주사위’를 던진 뒤 루비콘강을 건넜다.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뒤에는 모든 시민을 포용해 국가 발전을 도모했다. 관용이라는 뜻의 라틴어 ‘클레멘티아(clementia)’는 그가 가장 먼저 내건 구호였다. 카이사르를 상대로 싸우지 않은 사람을 적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했던 폼페이우스와 대조적으로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은 사람을 모두 자기편으로 간주했다. 심지어 정적까지 포용했다. 나중에 카이사르 모살의 주모자급이 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에게는 법무관 자리까지 부여했을 정도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가 세운 제국의 기초를 차곡차곡 다진 인물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은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였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꾸준히 한 단계 한 단계 이뤄나가면서 비할 바 없는 업적을 남겼다.

아우구스투스는 전통 공화정파의 본거지인 원로원의 위상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그들을 활용했다. 두 차례에 걸친 ‘원로원 숙청’으로 자신과 호흡이 맞는 원로원을 구성한 뒤 국정 파트너로 삼았다. ‘빵과 서커스’로 로마시민들을 길들였다는 비판도 없지는 않지만, 수도교를 건설해 로마 시민들이 언제든 마음껏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역사에 깊은 흔적을 새겼다. “나는 벽돌의 도시를 보아왔으나 대리석의 도시를 남겼노라”는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중흥 군주라 부를 만한 인물이다. ‘제국의 구원투수’로 등장해 전환기의 혼란을 잠재웠다. 50년간 18명의 황제가 통치한 군인황제 시대에 오늘날 크로아티아 지역의 비천한 해방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능력’을 무기로 황제 자리까지 올랐다. 로마 본토 출신만이 제위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다면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발칸반도 등 어느 제국 출신이라도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시대의 이점을 십분 활용했다. 권좌에 오른 뒤엔 넓은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동·서 로마로 나누고 각각 황제와 부황제를 두는 4제(帝) 통치체제를 창안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제국에 영원한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밀라노 칙령과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주요한 종교로 공인하는 데 이바지했다. 당대 종교적 갈등을 무마했을 뿐 아니라 이후 유럽 문화와 역사의 방향에 지울 수 없는 큰 흔적을 남긴 것이다. 현실 정치가이자 행정가로서도 324년 비잔티움을 새로운 수도로 확정하고 속주 행정과 궁정 조직을 개편했다.

로마제국의 기초를 닦고, 전성기를 화려하게 꽃피웠던 이들 리더 네 명의 업적과 역량을 살피다 보면 한계를 극복하고 시대를 전환하는 통 큰 지도력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살피게 된다. 로마의 역사는 여전히 오늘날 우리 모습을 비추는 ‘현재의 역사’라는 점도 확인하게 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