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종사자 근로자로 추정"...유럽연합, 급진적 지침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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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이 '플랫폼 노동에 관한 입법지침 초안'에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자로 추정하는 원칙을 담아 눈길을 끌고 있다.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내용인만큼, 플랫폼 종사자의 사회적 권리를 확대할 것이라는 목소리와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플랫폼 일자리를 오히려 위협할 것이라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지난 9일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자로 추정하는 '고용관계 추정 원칙'의 내용 등이 담긴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지침에 따르면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실태가 5개 요소 중 2개 요소에 해당하면 고용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내용으로는 △플랫폼 기업이 보수나 보수 상한선 결정 △플랫폼 기업이 복장, 서비스, 작업 등에 관한 구속력 있는 규정 마련 △플랫폼기업이 업무를 감독하거나 업무수행의 질을 평가(알고리즘 등 전자적 평가 포함) △플랫폼 종사자들이 노동시간 또는 작업 대체자를 고용하는 등 '업무상 조직'하는 것이 제한됨 △고객기반 확대 또는 제3자를 위한 작업이 제한됨 등 5가지다.
지침은 '사실 우선'의 원칙도 확인했다. 즉 플랫폼 종사자의 계약관계가 표준계약서 등에서 자영업자처럼 규정돼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독립적 지위로 볼 수 없다면 문제제기를 하고 재분류를 주장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플랫폼 종사자들은 계약서에 상관 없이 플랫폼 노동자의 업무가 고용관계로 볼 수 있는 경우 근로자로 재분류될 수 있게 된다.
이미 EU국가 중 스페인은 플랫폼 종사자 중 라이더를 근로자로 보고 있지만, 이번 지침은 디지털 플랫폼 노동 전체를 포괄하는 내용이라 상당히 큰 파급효가 예상된다. 플랫폼을 베이스로 한다면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는 교통, 음식 배달, 가사노동은 물론 온라인 노동까지 전체를 포괄한다는 의미다. 일부 전문가들은 "플랫폼 노동 분야의 게임체인저가 될 규정"이라고 전망했다.
EU국가들이 초안을 채택한다면, 초안의 '법안 영향평가'에서 예상하고 있는 약 410만명에 달하는 플랫폼 종사자들이 근로자로 재분류 되는 등 영향을 받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유럽연합은 현재 플랫폼 종사자가 2800만명에 달하며 2025년까지 43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유럽 플랫폼 노동 전문가들은 "법원 단계에서 근로자성 판단을 입증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플랫폼 종사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반증 책임'을 플랫폼 기업에게 부담시키는 방식이라, 현재 영국이나 네덜란드 법정에서 정한 입증책임 규정 등과 배치될 가능성도 높다는 평가도 나온다. 추정원칙인만큼 반증도 가능하지만, 플랫폼 종사자에게 상당히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것으로 보인다.
우버 등 다른 회사들이 법안 통과 전 반대 로비를 펼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우버는 유럽 전역에서 25만명이 배달기사와 13만5000명의 운전기사가 일자리를 잃게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반면 유럽에서 가장 큰 음식 배달 서비스업체인 저스트이트는 "종사자들의 사회적 보호를 강화할 것"이라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이영주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유럽 각국 법원의 판결과 입법에 이어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플랫폼 기업 규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며 "우리나라의 플랫폼 노동 입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