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엄마와 만난 딸·연애시절로 돌아간 노부부…예능 맞나요? [연계소문]
내 나이 때 엄마, 아빠는 어땠을까.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부모님의 젊은 시절과 마주하는 일이 벌어졌다.

앳된 얼굴을 한 스물세 살의 엄마는 친구가 되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수줍게 웃으며 시골을 떠나는 건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스물아홉의 엄마는 아이를 낳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가족이 전부인 듯했다. 어느새 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찼다. 딸은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누구세탁소' /사진=EBS 방송화면 캡처
'누구세탁소' /사진=EBS 방송화면 캡처
30대 아들은 캠핑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 주된 화제는 육아휴직이라고 했다. 반면 서른두 살 동갑내기로 구현된 화면 속 아빠는 일에 대한 중압감에 잠도 설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빠는 친구가 된 아들을 향해 "부럽다"고 했다. 동시에 자신의 삶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최근 종영한 EBS 4부작 예능 '누구세탁소'에 나온 장면이다. 과학기술을 동원해 나이, 성별, 직급, 외모를 뛰어넘는 소통을 이끌어낸다는 콘셉트 하에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이다. 위 장면은 메타휴먼과 페이셜 캡처 기술을 활용, 부모의 현재 모습과 과거 사진을 토대로 젊은 시절의 얼굴을 3D로 구현해 완성됐다.
스무살 엄마와 만난 딸·연애시절로 돌아간 노부부…예능 맞나요? [연계소문]
같은 방식으로 60대 노부부가 동시에 20, 30대로 돌아가 과거를 재현해 보기도 했다. 어색했던 첫 만남, 가족으로 인연을 맺는 순간을 지나 힘들었던 시절까지 다시 경험한 두 사람은 화면 밖으로 나와 서로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소통의 따뜻함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한 '누구세탁소'는 신선한 소재와 콘셉트 설정으로 온라인 상에서 입소문을 탔다. 네티즌들은 "예능인데 눈물을 쏙 뺐다"며 자극만을 좇는 프로그램들이 난무하는 요즘, 재미와 감동을 다 잡은 '착한 예능'이라고 칭찬했다.

지난해 초 MBC는 당시 VR 신기술을 이용해 엄마가 세상을 떠난 딸과 다시 만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이 강화되고, 가상과 현실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각종 과학 기술들이 급속도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여러 K팝 아티스트들이 VR, XR, 3D 그래픽 영상 효과들이 더해진 온라인 콘서트를 열었다. 이에 힘입어 올해는 메타버스가 최대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AI음악프로젝트 다시 한 번', 하이브 레이블 공연 /사진=Mnet 방송화면 캡처, 하이브 제공
'AI음악프로젝트 다시 한 번', 하이브 레이블 공연 /사진=Mnet 방송화면 캡처, 하이브 제공
기술력을 내세운 새로운 시도들은 신선함을 무기로 큰 관심을 받았다. Mnet은 'AI음악프로젝트 다시 한 번'을 통해 고(故) 김현식, 터틀맨 등을 AI 기술로 부활시켜 디지털 휴먼과 함께하는 무대를 만들어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MAMA'에서는 부상으로 공연에 불참한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를 '볼류매트릭(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으로 입체 콘텐츠를 만드는 기술)'을 사용해 무대 위에 등장시켰고, 하이브 레이블 합동 공연에서는 AI 기술로 제작된 홀로그램을 통해 고 신해철이 무대에 올랐다.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신기술들이 방송, 공연 등에 활용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영역은 이질감을 좁혀야 한다는 숙제를 지니고 있어 음악이나 소통 등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소재를 매개로 한 시도들이 먼저 시작됐다.

최근에는 티빙 '가상세계지만 스타가 되고 싶어', 넷플릭스 '신세계로부터', TV조선 '부캐전성시대' 등 여러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메타버스, 가상 공간, 홀로그램, 페이스 에디팅 등 각종 신기술 접목을 특색으로 강조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여러 과학기술들이 '예능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분위기에 편승해 맹목적으로 기술력을 키워드로 내세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예능적인 재미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각종 기술에 대한 정의가 정립되지 않은 시청자들에게는 가상 세계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 전개가 단순한 콩트에 그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기획 단계부터 기술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명확하게 설정하고, 이질감을 줄여 자연스럽게 흥미를 극대화하는 방향에 대한 다각적인 고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