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시점을 2050년 이전으로 앞당기고,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정점 대비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로 약 200개국이 참여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는 사실상 빈손으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나마 성과로 꼽히는 ‘국제 메탄 서약’에는 메탄 배출 1, 2, 3위인 중국, 러시아, 인도가 모두 빠졌고, 2040년대까지 석탄 발전의 단계적 폐지를 골자로 하는 ‘글로벌 탈석탄 선언’에도 석탄 소비 대국인 중국, 인도와 같은 개발 도상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마저도 모두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이해충돌을 넘지 못했다. 온실가스 배출 3위국인 인도가 탄소중립 시점을 당초 목표보다 20년 늦은 2070년으로 제시하며 선진국에 각을 세웠다. 하지만 어깃장을 놓는다고 무작정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당장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빈곤국에 수십 년 후에 닥칠지 모르는 위험은 한낱 배부른 자의 흉몽 정도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1인당 전기 소비는 세계 평균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세계 인구 중 약 3억 명은 전기 구경도 못하고 있고, 30억 명가량은 여전히 숯, 석탄, 동물의 배설물에 의지하고 있을 정도로 에너지 빈곤은 심각하다. 에너지 빈곤의 원인은 에너지 부족이 아니라 가난에 있다. 이들에게 가난보다 시급한 극복 대상은 없다. 가난 극복에 몸부림치는 빈곤국에 값비싼 에너지 사용을 강요하는 것은 가난 탈출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어디에서 배출되든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똑같다. 따라서 현시점에서도 개도국의 이산화탄소 배출 비중이 60%를 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진국이 아무리 탄소중립을 조기에 달성하더라도 개도국 협력 없이는 기후변화 방지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개도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선진국의 재정적·기술적 지원이 필수다. 실제로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등은 2009년 코펜하겐 합의에서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 지원을 위해 2020년부터 연간 1000억달러 규모의 기금 조성을 약속했다. 하지만 모금 실적은 800억달러 정도로 미달됐을 뿐 아니라 이 중 순수 원조는 200억달러 내외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COP26에서도 기후재정을 5000억달러로 증액할 것을 합의했지만 실현 여부는 속단하기 어렵다. 선진국이 기술 지원은 고사하고 재정 지원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결코 원치 않는 시나리오지만, 탄소중립에 실패해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는 기후위기 상황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작년 우리나라의 장마는 역대 최장기간 기록을 세웠다. 최대 강수량도 2011년에 기록했다. 역대 풍속 7위까지의 태풍이 모두 2000년 이후 발생했고, 2010년대의 폭염 일수도 과거보다 5일이나 많은 15.5회를 기록했다.

탄소중립을 위한 이산화탄소 감축 노력과는 별도로 기후변화 적응력 제고에 힘써야 한다. 예를 들어 기온 상승에 따라 빈도와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뭄과 홍수에 대비해 관개시설을 확충하고, 해수면 상승에 대비한 방조제의 안전성을 점검해야 한다. 작물·어종 변화에 따른 농어촌 대책도 세우는 것이 기후변화 방지보다 오히려 시급할 수 있다.

인류는 기후변화에 맞서기보다 적응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소빙하기에 창문이 큰 고딕 양식에서 창문이 작은 바로크 양식으로 바뀐 것은 기후변화의 적응 사례다. 물론 기후변화 방지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상황 전개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력 향상도 병행돼야 한다. 막연하게 기술적 낙관론에 기대어 탄소중립 성공을 전제로 국가 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