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원 간부·직원 소속된 교육학회들에 자문…"이상 없다" 의견 제출
평가원 "대표·전문학회에 의뢰한 것…중립성 위해 자문위 구성 협조요청"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법정 다툼이 벌어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생명과학II 문항 이의신청을 처리하면서, 평가원 간부·직원들이 직책을 맡은 교육학회들을 '자문학회'로 선정한 것으로 드러나 이해충돌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 학회는 평가원이 '자문학회'로 고른 3곳 중 과반수인 2곳(한국과학교육학회, 한국생물교육학회)으로, 이들 교육학회 2곳은 평가원 공문을 받은 지 단 이틀 만에 평가원에 해당 문항이 '이상 없다'는 의견을 냈다.

평가원은 그간 공식적으로 어떤 학회들에 자문했는지 공개를 거부해 왔으나,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정답 처분 취소 행정소송의 재판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수능 출제오류 법정공방 속 평가원 이의검증 과정 '공정성' 논란
◇ 평가원 보직자·직원 소속된 두 학회 "이상·오류 없다"
13일 연합뉴스 취재 결과 한국유전학회를 포함한 자문학회 3곳 모두 평가원으로부터 지난달 22일 공문을 받고 이틀 만인 지난달 24일 의견을 회신했다.

이 중 한국과학교육학회는 지난달 24일 "전혀 이상 없으며, 따라서 이 문항의 기존 정답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서를 냈다.

이 학회는 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장(수능본부장) A씨가 올해 초까지 부회장을 지냈고 여전히 현직 이사를 맡고 있는 곳이다.

A 본부장은 현재 진행중인 이번 출제 오류 관련 소송에서 평가원측 소송수행자 8명 중 첫번째로 지정돼 있다.

또한 한국생물교육학회는 "문제 해결을 위한 지문 설정에는 학문적 오류가 없다"며 "기존의 정답이 유지되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 학회는 평가원 수능출제연구실 소속 B씨와 C씨가 각각 교육과정위원과 학술위원으로 있는 곳이다.

이 중 B씨는 평가원의 소송수행자에도 포함돼 있다.

또 평가원 선행교육 예방연구센터 소속 D씨는 이 학회에서 운영위원과 교육과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평가원의 '자문학회' 3곳 중 교육학회가 아닌 과학 전문학회로는 유일하게 포함된 한국유전학회는 출제 오류로 정답이 없다는 점은 명확히 인정했다.

그러나 '기존 정답 유지 처리'와 '전원 정답 처리'를 놓고 내부 의견이 엇갈려 처리 방안에 대한 최종 의견을 '유보(혹은 의견없음)'로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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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원 "대표·전문학회에 의뢰…중립성 위해 자문위 구성 협조요청"
평가원은 이런 자문 의견을 이의심사실무위원회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이의심사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심의한 결과 이 문항의 정답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그러나 자문 학회 3곳 중 2곳이 평가원의 수능출제 관련 업무 관계자들이 임원과 위원 등을 맡고 있는 교육학회들이었던 점을 놓고 이해충돌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류 논란이 빚어진 문항에 대해 평가원이 외부 학회에 의견을 구하는 것은 엄격한 검증을 위한 독립적인 의견 수렴을 위한 절차인데도, 평가원에서 수능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본부장이 주요 구성원인 학회에 의견을 자문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교육학회와 한국생물교육학회는 초중교 과학교육 연구·개발 활동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국내 교육대학교, 사범대학 소속 교수들이 주축이 돼 활동하는 단체들이다.

자문학회 3곳 중에 해당 분야인 집단유전학을 다루는 과학 분야 전문 학회는 단 하나만 포함됐다.

이에 대해 평가원 관계자는 "(한국)과학교육학회는 가장 큰 대표학회고, 보다 전문적인 자문을 위해 (한국)생물교육학회를 추가했으며 내용적인 자문도 함께 받기 위해 유전학계 대표학회인 (한국)유전학회에 자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자문할 내용과 관련해 전문성과 대표성이 인정되는 학회에 의뢰하고 있으며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문위원을 구성해 자문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