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넘친 욕실에 슬리퍼 둥둥'…LH 매입임대주택의 실상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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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4만5000가구 공급대책
물량 떠맡은 LH는 관리 '난국'
물량 떠맡은 LH는 관리 '난국'
"입주 직후부터 화장실 배수구가 막혀 LH에 보수를 요청했습니다. 매입임대 담당자와 관리실은 수리업체가 갈거라고 했지만 매번 아무도 안 왔어요. 나중엔 전화도 안 받더군요. 한 달이 넘도록 아무 조치가 없었습니다." -경기 군포시 LH 매입임대주택 임차인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운영하는 매입임대 주택 임차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새 건물에 하자가 발생해 보수를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사후조치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일각에선 LH가 매입임대주택을 급격하게 늘리는 바람에 관리체계 준비에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지난 10월 LH가 군포시에 내놓은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했지만 최근까지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화장실 배수관이 막혀 물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하자보수 요청에 LH 직원이 방문해 문제를 확인했지만 수리가 좀처럼 안 됐다.
A씨는 "방문한 LH 관리실 직원이 '뭐 이런 집이 있느냐'며 수리업체에 연락하겠다고 해 믿고 기다렸지만 아무도 안 왔다"며 "기다리다 못해 주거복지지사 담당자에게도 문제를 알렸는데 이후로는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갓난아기 씻기려고 매일 저녁마다 차로 20분 거리 친척집을 다녀야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의 불편은 하자접수 전담센터인 LH바로처리센터가 개입해 한 달이 넘어서야 해결됐다. 이 과정도 매끄럽진 못했다. A씨는 "센터가 나서자 관리실에서 한 말은 '아직도 처리가 안 됐느냐'는 물음이었다. 여러차례 보수를 요청했지만 관심도 없었던 것"이라며 "이후로도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몇 차례 어긴 뒤에야 수리됐다"고 지적했다.
배관이 막혔던 것은 "공사 중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배수관을 막고 있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후에도 각종 하자가 남아있다. A씨가 거주하는 매입임대주택은 공용현관문과 집 안 인터폰이 연결되지 않아 현관에서 방문객 호출을 받지 못한다. 현관 초인종도 작동하지 않는다. 지하주차장은 차량 하부가 진입로에 걸리는 탓에 세단형 승용차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 주택은 지난해 준공한 건물을 올해 2월 LH가 사들인 것으로, A씨가 첫 입주자인 신축 건물이다. 주택을 관리하는 LH 경기지역본부 안양권주거복지지사도 이러한 하자들을 인식하고 있지만, 수리에 적극 나서진 않는 상황이다.
업계는 이같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정부의 공급정책으로 꼽는다. 매입임대주택 공급 목표치를 과도하게 늘리면서 LH의 주택매입 절차가 부실해져 질 떨어지는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매입한 주택이 크게 늘었는데 질까지 떨어지면서 관리는 더욱 어려워진다.
특히 신축 건물의 경우 시공사가 하자를 책임지는 하자보증기간(2년) LH가 아닌 시공사가 수리해야 하는데, 주택 증가로 업무량이 늘어난 탓에 수리를 강제할 만큼의 밀착관리가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실제 임대주택 커뮤니티에서는 신축 매입임대주택에서 하자보수가 어렵다는 호소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법무법인 화담의 정홍철 변호사는 "매입임대주택이 단기간 내 과도하게 늘어난 탓에 LH가 관리를 못하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실제 정부는 올 2월 매입임대 4만5000가구를 공급하는 내용을 담은 2·4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지난해 대비 60% 이상 늘어난 규모로 정부가 2004년 매입임대주택 사업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다.
LH가 정부의 할당량 채우기에 급급하면서 매입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정황도 포착된다. 국회에 따르면 LH는 최근 감사위원회를 열고 한 지역 매입업무 담당자 징계를 요구했다. 이 직원들이 실태조사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심의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채 주택을 매입했다는 이유다.
이에 감사위원회는 주거복지사업처장에게 해당 직원들 징계 처분을 요구하면서도 "해당본부의 매입물량이 전년도에 비해 대폭 증가했고, 매입 유형이 다양화되면서 정부 매입물량을 달성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점은 참작된다"며 정부의 매입물량이 과도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LH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는 직원 1인당 매입물량이 2~3배 증가하면서 질 좋은 주택을 찾고 검토할 시간이 부족해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직원은 "정부의 공급물량을 건설 임대로 대응하려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필요해 한계가 있다. 결국 매입 임대로 채우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직원도 "직원 수는 그대로인데 물량만 늘었다. 물량을 채우지 못하면 경영평가 점수가 떨어져서 무리를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무리한 매입이 이뤄지며 매입임대주택 질이 떨어지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실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6개월 이상 빈 집으로 방치된 장기 공가 매입임대주택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1822채에서 2021년 6월말 5785채로 3배 늘었다. 권역별로는 수도권 장기 공가 매입임대주택이 483채에서 2496채로 5배, 비수도권은 1339채에서 3289채로 2배 늘었다.
정 변호사는 "신축 건물의 경우 하자보증기간은 LH가 소송 등으로 시공사를 압박해 수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라며 "관리해야 하는 주택이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개별 하자에 적극 대응하기도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LH는 "하자보증기간 내 하자가 발생한 신축 매입임대주택은 시공사에 보수를 요청하고, 시공사가 보수하지 않을 경우 LH가 직접 보수한 뒤 하자이행보증금을 인출하거나 구상권을 청구한다"며 "하자 접수후 15일 이내 보수를 마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공사 외에도 관리소와 유지보수업체를 통해 하자 처리를.진행하고 있다. 향후 지속적으로 입주민의 불편사항 최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