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의 전 세계 하루 거래액이 처음으로 100만달러를 넘어선 2020년 10월 이후, 지난 1년여간 NFT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줬다. NFT 열풍 초기엔 이 또한 2017년의 가상자산공개(ICO)처럼 곧 사그라질 투기성 거품이 아니겠냐는 비판적 시각이 팽배했으나 (물론 지금도 유효한 시각이다) 그 후 NFT는 원본 인증과 소유권 증명이라는 속성을 필두로 다양한 산업과의 접점에서 개인의 가치 생산, 분배, 확대 방법 등을 재정립하고 있다. 물론 NFT가 극초기 시장인 만큼 일부에선 투기성 거품이 현재 진행형이고, NFT를 둘러싼 법적 지위, 과세 논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상당수다. ‘개혁’과 ‘거품’이라는 대립된 시각 사이에서 NFT에 대한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토큰 경제’의 도래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NFT.NYC
NFT.NYC
2021년 11월 첫째 주, 미국 뉴욕은 NFT 열기로 온 도시가 들썩였다. 2019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는 ‘NFT.NYC’라는 세계 최대의 NFT 콘퍼런스가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열려 창작자부터 프로토콜 개발자, 투자자, 인플루언서 등 5000명이 넘는 NFT 열성 팬들이 이 도시를 찾은 것이다. 콘퍼런스는 3일에 걸쳐 강연, 워크숍, 파티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됐는데 NFT 열혈 옹호자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개리 베이너척, 위키피디아 창립자 지미 웨일스, 레딧 공동창립자 알렉시스 오헤니언 등 무려 600명이 넘는 연사가 참여해 NFT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논했다.

또한 요즘 가장 ‘핫’한 NFT 프로젝트들의 오프라인 밋업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지루한 원숭이 요트 클럽(BAYC·Bored Ape Yacht Club)’은 이름에 걸맞게 거대 요트 선상에서 파티를 열었고, 올초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6930만달러에 NFT 작품이 낙찰돼 세계적인 NFT 돌풍을 일으킨 비플은 자신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상영에 직접 참석해 화제가 됐다. 참가자 수가 채 500명이 되지 않았던 제1회 NFT.NYC와 비교해 보면 NFT 시장이 지난 2년간 얼마나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NFT는 블록체인상에 저장·기록된 디지털 파일이다. 각 NFT는 스마트 계약을 통해 생성된 고유한 ID값을 갖고 있어 상호 교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정 자산에 대한 소유권과 거래 내역을 증명 및 인증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 이때 NFT가 나타낼 수 있는 자산의 형태에는 제한이 없는데 △디지털아트, 음반, 모바일 티켓과 같이 디지털 세상에만 존재하는 자산 △갤러리에 걸린 미술 작품 △금, 빌딩 등 실물로 존재하는 자산 △투표권, 관심, 평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적 자산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체 불가능한 자산들이 NFT로 토큰화될 수 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명목화폐와 같이 1 대 1 교환이 가능한 자산은 극소수일 뿐,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에 NFT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암호화폐로 富 쌓은 ‘크립토 고래’들이 NFT로

NFT가 작년 말부터 미디어에서 집중 조명을 받으며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으나, 사실 이 신기술의 역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하반기 캐나다 밴쿠버에 기반한 엑시엄젠이라는 회사가 론칭한 가상 고양이 게임 ‘크립토키티’가 이더리움상의 NFT 토큰 표준 ERC-721을 따르는 원조 NFT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2017년 이전에도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상에 나타내고자 한 시도들이 있었는데, 그 시초는 요니 아시아의 2012년 기사 ‘비트코인 2.X’에서 처음 언급된 ‘컬러드코인’이다. 컬러드코인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상의 자산 발행 레이어였는데, 물론 지금의 NFT만큼 기술적으로 세련되진 못해도 블록체인 기술을 자동차, 부동산, 디지털 컬렉터블 등의 다양한 자산에 적용해보려 한 의미 있는 최초의 시도였다.

2021년에 들어서며 제대로 뜨거워지기 시작한 NFT 시장을 견인한 것도 앞서 말한 ‘크립토 부(富)’였다. 올해 초 암호화폐 시장이 강세를 보이며 한층 더 부유해진 크립토 고래들에게 NFT는 부의 상징을 나타내는 사회적 화폐이자 수익성 높은 투자 자산이 됐다. 실제로 ‘억’소리 나는 가격으로 거래된 대부분 NFT가 크립토 고래들의 소유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NFT가 투기성 짙은 디지털 자산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데, 이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현재 가장 유명한 NFT 컬렉터블 중 하나인 ‘크립토펑크’의 최저 거래가가 원화로 4억원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린 NFT를 둘러싼 일시적 사회 현상을 놓고 NFT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기보다 이 신기술이 가져올 사회의 장기적인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NFT의 등장으로 인터넷 역사상 처음으로 디지털 창작물에 희소성의 가치가 부여됐고, 디지털 게임과 같은 가상세계에서의 자산이 현실 세계에서도 통용돼 화폐로 전환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전자는 창작자 경제의 혁신, 후자는 메타버스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먼저 NFT를 통한 창작자 경제의 혁신을 살펴보자. 품질의 저하 없이 무한 복제·공유가 가능한 디지털 세상에서 NFT라는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원본과 희소성의 가치를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은 굉장한 혁신이다. 물론 NFT로 발행된 원본 디지털 파일 또한 얼마든지 복제·공유가 가능하지만, NFT로 원본이 인증되고 소유권이 증명되는 한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이 인터넷에서 유포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이 수익의 흐름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NFT 거래 시 구매자는 NFT에 대한 소유권만을 취득하게 되고 저작권은 원작자에게 남게 되는데, 이러한 권리의 분리는 원작자와 구매자가 창작의 가치사슬에서 ‘윈윈’하는 유기적 환경을 조성해주기도 한다. NFT가 재판매될 때마다 원작자는 재판매 가격의 일정한 부분을 로열티로 받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창작자 경제 혁신과 메타버스의 발전 가져와

인터넷의 역사를 뒤돌아 봤을 때,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를 아우르는 웹(Web) 1.0 시대엔 정보의 창조와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이땐 회사가 콘텐츠를 만들고 돈을 버는 구조였다. 이어 2000년대 중반에 시작된 웹 2.0은 페이스북, 위챗, 인스타그램과 같은 수많은 소셜 플랫폼의 등장으로 웹 1.0에 사회적 요소가 첨가됐고, 창작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유하며 관객과 좀 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창작자 경제의 탄생이었다. 이젠 자신이 무엇을 제작하든 1년에 100달러를 지불할 열성 팬 1000명만 있으면 누구나 창작 활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전문 창작자 시대가 열리면서 1년에 1000달러를 지불할 열성 팬 100명이면 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웹 3.0의 태동과 함께 NFT가 보다 보편화된 지금, 우린 어쩌면 열성 팬 100명도 필요 없는 보다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의 창작자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창작자의 NFT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어차피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이 새로운 NFT를 세상에 내놓고 홍보할 때 이런 작가의 ‘스토리텔링’에 열심히 반응하고 그 스토리를 널리 공유해 줄 충성스런 열성 팬 몇 명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NFT로 발행된 전자책을 구매한 팬들에게 작가와의 1 대 1 만남을 제공한다든지, 음악 앨범 NFT를 구매한 팬들에게 다음 앨범 작업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준다든지 말이다.

[성소라의 NFT] NFT發 '토큰경제 시대'…한국이 주인공 될 수 있다
경험에 대한 접근권과 같은 효용(utility)의 토큰화는 NFT가 앞으로 발전해나갈 방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콘서트 티켓을 예로 들어보자면, NFT로 발행된 티켓은 마켓플레이스에서 거래되며 이를 통해 잠재적 구매자들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양도를 수월하게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 토큰화된 자산을 완전히 다른 용도로, 가령 금융 거래를 하는 데 담보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탈중앙화 네트워크를 통해 NFT를 담보로 잡고 대출을 받는 거래이기에 본인의 신분을 노출할 필요도 없다. 모든 절차가 블록체인에 기록된 스마트 계약에 의해서 집행되는 무신뢰(trustless) 기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렇게 NFT를 이용한 개인 간 P2P NFT 금융 거래는 이미 꽤 활성화돼 있고, 앞으로도 그 시장이 계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신뢰가 필요 없기에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사회 말이다.

다음으로 NFT와 메타버스의 결합에 대해 살펴보자. 가상자산 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은 앞으로 메타버스가 NFT와 맞물려 1조달러 규모의 시장을 창출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는데, 이는 NFT가 메타버스에 있어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자 수익 모델이기 때문이다. 게임 내 아이템이나 디지털 땅과 같은 가상세계에서의 자산이 일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대체가능토큰 및 코인으로 자유롭게 전환될 수 있도록 블록체인상의 연결고리가 돼주는 것이 바로 NFT다. NFT는 또한 메타버스에 있어 문화적 기반이 돼 주는데, NFT를 통해 특정한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커뮤니티는 유연한 개념으로 크립토펑크나 BAYC와 같은 NFT 컬렉터블 수집가들의 모임, 엑시인피니티와 같은 블록체인 기반 게임 유저들의 포럼, 메타버스 플랫폼인 크립토복셀상에 지어진 갤러리 관계자 모임 등 다양한 예가 있을 수 있겠다. 국경의 의미가 사라진 메타버스 세상에선 문화가 ‘우리’와 ‘그들’의 공간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데, NFT를 매개체로 형성된 커뮤니티들이 그 경계선을 이루는 것이다.

특히 ‘공간’이라는 개념을 주축으로 하는 디지털 부동산은 NFT와 메타버스의 성장과 발전에 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대표적인 디지털 부동산 앱인 디센트럴랜드 경우를 보면, 사용자는 MANA라는 ERC-20 기반의 대체가능토큰을 이용해 LAND라고 하는 ERC-721기반의 NFT 디지털 땅을 구매한다. 구매자는 소유한 땅 위에 원하는 건물을 올리고, 행사를 개최하고, 또 이 땅을 다른 사용자들과 거래할 수도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MANA 토큰을 가진 사용자들에겐 디센트럴랜드를 공동 통치할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디센트럴랜드가 사용자 ‘누구나’가 소유하는 개념의 DAO, 즉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NFT가 한 명의 열성 팬이 디지털 자산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개념이라면, 커뮤니티 토큰은 많은 열성 팬들이 커뮤니티를 공동으로 소유하게 하는 개념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수백 개의 DAO가 존재하고, 자산 순위 상위 10위의 DAO가 소유하고 있는 자산만 해도 160억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토큰 경제가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는 것이다. NFT가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 대한 종착역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에 지금 그 누구도 더 빠르지도, 더 느리지도 않다. NFT가 기반이 되는 토큰 경제, 그리고 그것을 담아줄 메타버스에서 다같이 한번 ‘놀아 보면’ 되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NFT의 법적 지위 확보

세상 사람들이 한때 인터넷의 필요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NFT가 인터넷처럼 보편화된 기반 기술이 돼 더 이상 ‘NFT’라는 단어 자체가 이슈화되지 않을 때까지 적어도 몇 년, 아니 몇십 년은 걸릴지 모른다. NFT가 가시적이고 직관적이기에 블록체인을 둘러싼 진입 장벽을 낮추고는 있으나, NFT에 기반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상용화가 마찰 없이 이뤄지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대다수 NFT가 부분적으로 블록체인이 아니라 중앙화된 서버에 저장돼 있어, 서버를 운영하는 회사가 사라질 경우 NFT의 고유 아이디가 나타내는 내용물 자체가 영원히 사라져버릴 위험이 있다(현재 P2P 파일 저장 시스템인 IPFS, 아르위브와 같은 탈중앙화된 데이터 스토리지 프로토콜이 그 대안으로 등장했다). 또한 소수의 크립토 고래나 인플루언서들이 크립토펑크와 같은 고가의 NFT 컬렉터블을 대량 소유하면서 시세를 형성하는 패턴을 보여, 탈중앙화를 표방하는 NFT에 대한 위협이라는 인식도 상당하다. 무엇보다도 NFT의 법적 지위는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NFT가 단순히 고유한 특성을 인증하기 위해 소수로 발행될 때는 가상자산이 아니지만, 지불 또는 투자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 특금법상 가상자산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관한 체계적인 법적 프레임워크가 시급하다.

얼마 전 세계적 영어사전 출판사인 영국 콜린스가 올해의 단어로 NFT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콜린스에 따르면 NFT 단어 사용량은 올해 들어 1만1000% 증가했다고 하는데, 이는 전례없는 수치라고 한다. NFT가 하나의 흥미로운 담론을 넘어 안정된 시장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제도권과의 스마트한 융합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시장은 끊임없이 분화되고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 이 피할 수 없는 과정 안에서 우린 시대 흐름을 현명하게 읽고, 매 순간 ‘넥스트 스텝(next step)’을 능동적으로 준비했으면 좋겠다. 정부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발맞춰 블록체인에 기반한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길 바란다. 결국 NFT를 통한 문화-기술의 르네상스가 온전히 구현되기 위해선 기술력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과 문화적 감수성 그리고 타이밍이 필수인데, 특히 ‘콘텐츠 강국’으로 급부상한 우리나라가 토큰 경제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확신한다.

■ 성소라는

[성소라의 NFT] NFT發 '토큰경제 시대'…한국이 주인공 될 수 있다
《NFT 레볼루션》의 저자다. 미국 워싱턴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과 같은 신기술 기반 시장의 형성 및 스타트업 생태계의 다이내믹을 연구했다. 포이츠앤드퀀츠(Poets & Quants) 선정 ‘세계 50대 경영대학 교수’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웹 3.0 시대의 일선을 꿈꾸며 현재 학계를 떠나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이며, 국내외 스타트업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