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곤의 행정과 데이터과학] '지방의식' 없애야 '지방소멸' 사라진다
지방분권이 화두가 되면서 수도권이 지방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가 많아졌다. 흔히 서울이 지방보다 형편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저출산 문제는 낙후된 지방의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64명에 불과하다. 전국 평균(0.84)보다 훨씬 낮다. 실업률도 2021년 10월 서울 남성의 실업률이 4.6%에 달할 때 대구 남성의 실업률은 2.2%에 불과했다. 고용률도 서울이 대구보다 낮다. 저출산과 실업률은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지방도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지역 간 차이가 매우 큰 이질적인 존재다. 고령화와 재정자립도를 살펴보자. 전국 평균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2020년 기준 16.4%다. 이 평균과 달리 전국 260개 시·군·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 지역은 49.1%에 달한다. 경북 의성군은 고령화 비율이 41.5%인 반면, 세종시는 9.8%로 나타나는 등 지역 간 고령화 격차가 매우 심하다. 재정자립도를 보면 지난 20년 가까이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시·군·구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25.9%로 심각하다. 2021년 기준으로 자체 수입에 비해 인건비가 더 많은 시·군·구는 63개나 된다. 재정자립도 측면에서도 서울은 80.6%, 세종과 경기는 64% 정도를 보였으나, 경북과 강원 그리고 전북·전남은 불과 20% 수준이다.

이 혼란스러운 통계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의 위험성이다. 저출산·고령화, 높은 실업률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다. 전국 청년 인구의 50% 이상이 거주하는 수도권 지역에서의 실업과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전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발전을 서로 배타적으로 간주하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둘째, 수도권 안에서의 격차, 지방 간 격차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 정도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지방분권의 상징으로 불리는 세종시의 경우 만족도가 58.7%로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반면 서울은 46.4%로 강원도(45.8%), 경상남도(45.9%)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지방에도 세종처럼 젊고 살기 좋은 곳이 있는가 하면, 서울처럼 높은 실업률과 낮은 출산율로 고생하는 지자체가 있는 것이다. 복잡하고 광범위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사회 문제를 경험하는 지역, 사회·경제적 지표가 비슷한 지역 등 기존 행정구역에 얽매이지 않는 초광역적인 지역 개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방은 지방을 벗어나야 한다. 민간 회사는 천하의 인재를 얻기 위해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의 인재를 구하느라 혈안이 돼 있다. 그런데 공공기관은 지방인재 채용의 덫에 빠져 있다. 수도권이나 다른 지방 대학에 진학한 그 지역 태생의 인재는 해당 지역인재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옆 지방에 우수한 인재가 있으면 삼고초려라도 해서 모시러 가야 하는데 지자체나 지방에 내려간 공공기관은 과연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 자생적 경쟁력이 생길 수 있을까? 지방 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지역의 토건사업을 더 많이 하거나 폐쇄적인 지역인재 채용에 의존하는 안일한 사고야말로 지방 소멸을 더 촉진하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1970년대 미국 시애틀과 뉴멕시코에 있는 앨버커키 두 도시의 노동시장 규모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폴 앨런과 빌 게이츠가 자신의 고향인 시애틀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옮기면서 두 도시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지방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혁신 노력이지 ‘우리끼리’와 지역인재를 강조하는 폐쇄성이 아니다. 정보통신기술(ICT), 나노, 녹색기술, 생명공학, 관광, 환경, 마케팅, 금융, 인공지능 등 수많은 영역에 혁신 기회가 있다. 이 혁신의 핵심은 인적 자원이다. 인재가 모이는 지방이라면 그 인적 자원을 보고 기업이 모여들 것이다. 지방 소멸 시대에 지방이 지방 의식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지방 소멸이라는 잔인한 현실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지방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볼 시점이다.